2019년 자본시장 주름잡은 범(汎)현대…내년에도 '거래' 쏟아진다
입력 2019.12.19 07:00|수정 2019.12.19 10:02
    현대차-앱티브 JV, 현대重-대우조선 합병
    HDC-아시아나항공, KCC-모멘티브 인수
    汎현대그룹, M&A로 생존전략 짜는 모습
    현대차·현대百 확장전략 이어질 듯
    HDC·KCC M&A 성과 증명이 과제
    • 정부의 대기업 규제 속에서도 범(汎)현대그룹의 올 한해 활약은 눈에 띄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고, HDC현대산업개발은 투자자들의 우려 속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눈앞에 뒀다. 한화와 두산그룹이 면세점 사업을 포기한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사업의 확장 전략을 펼쳤다.

      올 한해 숨가쁘게 범 현대그룹 계열사들에는 아직도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첫번째 과제고, HDC와 KCC는 빅딜 이후 투자자들에게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끊임 없는 투자를 통해 미래차 시장의 성장전략을 마련함과 동시에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도 마무리져야한다. 범현대그룹에서 촉발될 크고 작은 자본시장 거래는 국내외 투자은행(IB)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변화의 RPM 높이는 현대차그룹…60조 투자에 기대와 의구심이 공존

      미래차 시장에서 뒤늦게 뛰어든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 부회장 체제 전환과 체질 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1~2년 사이 미국과 유럽에 위치한 미래차·차량공유·인공지능(AI) 등 업체들에 지분을 투자했다. 올 하반기에는 미국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 앱티브(Aptiv)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며 미래차 시장에 대한 투자 의지를 다시 한번 나타냈다.

      앱티브와의 JV 설립 규모는 약 20억달러(한화 약 2조4000억원)로 현대차그룹의 역대 M&A 가운데 가장 컸다. 삼성그룹처럼 자체 법인을 통해 해외 투자와 M&A를 진행해 온 현대차그룹은 이번 JV설립 과정에선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자문사로 선정하며 눈길을 끌었다.

      정의선 부회장은 올해 직접 그룹을 ‘모빌리티 서비스업체’로 변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대차는 오는2025년까지 향후 61조원을 투자해 영업이익률을 지금보다 2배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과 미래차 시장에서 입지를 비춰볼 때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M&A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앱티브와의 JV 설립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대차그룹이 앞으로도 자본시장을 활용할 여지는 충분하다. 향후 투자처 물색과 협의, M&A 이후 경영 안정화 등 국내외 회계법인 및 로펌·IB들과 접점을 늘려갈 가능성을 의미한다.

      글로벌 IB 대표급 관계자는 “현대차의 이번 JV설립은 대규모 투자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며 “현대차그룹이 미래차 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해외 기업들을 물색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한 IB들의 거래 참여 기회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6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현대차의 전략적 방향성엔 이견을 다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이 제시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3% 초반에 머물러 있는 영업이익률을 당장 내년까지 5%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2025년엔 8%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에 공감하는 투자자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업적인 측면을 차치하고 현대차그룹은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이란 가장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다시 공론화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내외 증권사들의 역할도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 인수…현대重 수주 파고도 넘어야

      거래과정에서 다소 찝찝함을 남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현재진행형이다. 글로벌 ‘빅1’ 조선사로 도약한다는 전략을 내놨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전제조건은 각 국가의 기업결합 승인이다. 현대중공업은 한국과 중국·일본·유럽연합(EU)·싱가포르·카자흐스탄 등 6개국에 기업결합 심사 신청을 냈다. 신청을 낸 모든 국가에서 승인을 받아야 인수가 완료되는데 현재까진 카자흐스탄에서만 승인이 난 상태다. 중국과 일본 등 경쟁 국가들이 글로벌 선두 자리를 다투는 한국 조선사에 결합 승인을 수월하게 내 줄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수개월째 갈등을 빚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의 반대도 부담이다. 각국의 승인 절차가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은 신용도와 투자심리에 긍정적이지 않다.

      다행인 점은 침체했던 선박 수주가 회복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을 기점 국내 조선 3사는 세계 조선 수주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현재와 같은 수주의 회복세가 꾸준히 이어질 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전히 조선 3사에 대한 투자심리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주식담당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수주의 확대와 실적 회복이 오롯이 주가에 반영되기 위해선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아직까지 인수 성공을 낙관하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자본시장의 큰손 역할을 해 온 그룹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의 인수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계열사 정리를 통한 지배구조개 편 및 이와 맞물려 경영권 승계 작업 등 후속 작업도 예상된다.

      수년 째 지연해 온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공개(IPO)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지난 4월 아람코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17%를 1조4000억원에 사들였다. 이를 고려한 기업가치는 8조원 규모가 넘는다. 이같은 초대형 IPO가 성사되기 위해선 해외 기관투자가들과 상당수의 국내 금융기관들이 거래에 참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두산도 발 뺀 면세사업…롯데·신라 아성에 도전장 내민 현대百

      한화그룹과 두산그룹 등 대기업이 떠나는 면세사업에 현대백화점그룹은 오히려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거듭되는 실적부진에 유통업계에서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기도 하다.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특허권을 반납한 두산그룹과 두타면세점 매장 임대 및 자산양수도 등 상호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시내면세점 신규 사업자 입찰에 단독 참여, 과거 동대문에 위치한 두타면세점에 입점하게 됐다.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사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현대백화점의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는 M&A가 기반이 되기도 했다. 2012년 가구업체 리바트와 패션전문기업 한섬을 2017년에 SK네트웍스 패션부문, 지난해엔 한화L&C를 편입했다. 현대렌탈케어 설립과 면세점 진출은 최근의 일이다.

      이 같은 확장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면세사업 확대와 오프라인 유통업 강화를 위한 자본조달의 가능성도 언제든 열려있다. 다만 올해 초 주주총회 시즌에 홍역을 치렀듯이 배당성향 강화 등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목소리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수 받는 빅딜로 기록 되려면…”아시아나·모멘티브 성과 증명이 관건”

      KCC와 HDC현대산업개발은 인수 회사의 실적과 모회사와의 시너지 효과로 과거 M&A를 증명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올해 모멘티브 인수를 완료한 KCC는 최근 국제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KCC의 신용등급을 Ba1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자체회사의 수익성 부진, 연결기준 모멘티브의 실적 하락세 등을 언급했다. 또한 무디스는 ▲환경리스크 ▲오너일가의 높은 지분율 ▲공격적인 재무정책 등 ESG와 관련한 요인을 신용도에 반영했다.

      과거 KCC가 모멘티브 인수를 추진할 당시부터 재무적 부담에 대한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결국 인수를 완료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모회사의 신용도에 타격을 입힌 꼴이 됐다. 모멘티브 자체 실적도 꺾이기 시작하면서 과거 성과보단 앞으로의 과제가 더 많이 남은 거래로 기록되고 있다.

      수십 년에 한번 나오기 힘든 대형 국적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의 새주인은 HDC로 낙점됐다. HDC는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2조5000억원의 가격을 써내며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1조원이 넘는 현금이 쌓아 뒀지만 이번 M&A에 자금 지출과 앞으로 남은 사업들을 고려하면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건설업황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서 HDC는 종합개발회사(디벨로퍼)로서 전략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정몽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히며 투자자들은 HDC의 모호한 정체성에 혼란을 빚었다.

      KCC와 마찬가지로 무리한 지출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크다. 이미 신용평가업계에선 HDC의 신용등급을 하향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HDC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기존 기업들과 사업적인 시너지를 나타 낼 수 있는가 또는 시장의 우려와 달리 재무적 부담을 얼마나 덜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M&A 성적표의 희비도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에어부산 및 아시아나IDT를 비롯한 자회사와 자산의 정리 등의 과정에서 추가 M&A 가능성도 열려있기 때문에 IB업계의 관심도도 높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서 범현대그룹 계열사들이 대거 참여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백화점·KCC를 막론하고 모빌리티와 및 소재, 유통, 마일리지 분야에서 다각적인 협력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친족인 각 그룹 오너일가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