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닮아가는 롯데그룹 인사…지배구조 단순화와 CEO 책임·경쟁 유도
입력 2019.12.23 07:00|수정 2019.12.24 09:28
    호텔롯데 상장 의지…향후 지주와 합병 가능성
    각 BU장 권한 강화 통한 상호 경쟁 구도
    황각규 독주체제에 송용덕 출연으로 제동
    그룹 지주사와 사업형 지주사 SK그룹과 닮은꼴
    • 롯데그룹이 핵심 경영진에 대한 대대적 인적쇄신을 발표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호텔롯데 상장을 앞세운 지배구조 개선, 각 사업부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뉴롯데’ 완성에 있다. 신동빈 회장과 두 명의 지주사 부회장, 각각의 비즈니스유닛(BU)장의 구도를 통해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을 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BU장에 주어진 권한 강화, 그리고 각각의 경쟁 유도를 꾀하는 방식이 SK그룹과 닮았다. 황각규 부회장 독주체제로 여겨졌던 롯데그룹에 송 부회장이 출연으로 견제와 균형을 꾀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롯데그룹 컨트롤타워인 롯데지주는 ‘삼각체제’로 바뀌었다. 기존 신동빈 회장-황각규 부회장 2인 체제에서 호텔&서비스 BU장을 맡고 있던 송용덕 부회장이 공동대표로 새로 선임됐다.

      신동빈 회장의 ‘복심’인 황각규 부회장은 이전처럼 M&A, 해외사업, 커뮤니케이션 등 대외 업무에 주력할 전망이다. 송용덕 부회장은 롯데호텔이 처음 문을 연 1979년 호텔리어로 입사해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컴플라이언스, 감사 등을 총괄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상 호텔롯데 상장이 송 부회장의 책임 하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주창한 ‘뉴롯데’는 롯데그룹이 일본기업 꼬리표를 떼는 것에서 시작하고 일본 주주의 지분율을 대폭 낮출 수 있는 방안은 결국 호텔롯데 상장”이라며 “황각규 부회장 혼자 호텔롯데 상장까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에 호텔롯데를 잘 알고 그룹 내부적 이슈들을 잘 관리한 송 부회장이 중용됐다”고 설명했다.

      금융업계에선 호텔롯데의 상장 작업이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처음 상장을 추진하던 2016년에 비해 기업가치도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텔롯데 상장의 목적은 단순히 자금 조달이 아니고 하루 빨리 롯데그룹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루기도 어렵다. 롯데 지주사 체제 전환을 이끈 장본인인 이봉철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이 호텔&서비스BU장에 선임된 만큼 송 부회장을 도와 호텔롯데 상장을 과감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선 조직개편 초기엔 부회장 2인체제의 무게 추가 송용덕 부회장 쪽에 쏠릴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일본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은 롯데그룹은 주요 계열사 주가가 20~30%대 하락율을 보였다. 이번 인사에서 전체 계열사의 40%가 넘는 22개사의 대표 또는 사업부장을 교체했는데 상당 수가 황각규 부회장 측근으로 알려졌다. 송 부회장이 인사와 감사 파트를 쥐게 됐고 호텔롯데 상장이 최대 현안인 만큼 신동빈 회장도 송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평가다.

      주력 사업부문인 유통과 화학부문 BU장의 권한이 강화된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유통 부문은 사업부간 시너지를 최대화하기 위해 롯데쇼핑 통합법인으로 재편됐다. 기존 백화점, 마트, 슈퍼 등 각사 대표체제로 운영되던 롯데쇼핑은 강희태 신임 유통BU장의 단일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강 BU장은 1987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한 이후 본점장과 상품본부장, 중국사업부문장, 2017년 롯데백화점 대표 등 현장 경험이 많은 '유통 전문가'로 통한다. 유통 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쇼핑 시장으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각 사업부 수장들이 전무급으로 교체돼 BU장의 존재감도 한층 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각 사업부별로 이견이 많아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며 “이번 조직 개편으로 강 BU장의 권한이 강화돼 유통업 혁신 측면에서 이전보다 변화 속도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고 전했다.

      화학 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롯데케미칼은 내년 1월1일 롯데첨단소재와 합병돼 기초소재사업 대표와 첨단소재사업 대표의 양 체제로 개편된다. 통합 케미칼 대표이사는 김교현 화학BU장이 겸임한다. 기초소재사업 대표는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가 유임됐고 첨단소재사업 대표는 롯데첨단소재 이영준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내정됐다.

      정리하자면 신동빈 회장과 두 명의 부회장, 주력사업의 BU장으로 조직 체계가 단순화하면서 이전보다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유통은 롯데쇼핑이, 화학은 롯데케미칼이 대표하고 각 사업부 수장은 BU장이 맡는다. 예를 들면 한 사업부에서 M&A를 추진하려고 하면 BU장과 황각규 부회장, 신동빈 회장 이렇게 세 명만 결정하면 된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의 이번 인사와 조직 개편의 궁극적 모델이 SK그룹이라는 평가도 있다. SK그룹의 경우 지주사 SK㈜ 산하에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이라는 주력 계열사가 있고 각각 ICT 사업과 에너지 사업의 사업형 지주회사 역할도 맡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롯데지주와 호텔롯데가 상장해 단일 지주회사가 되고 그 아래 롯데쇼핑(유통), 롯데케미칼(화학)이 각 사업부 전략을 주도하는 구조를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계 컨설팅사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롯데그룹의 외형이 극적으로 커졌는데 이는 한 명의 오너 경영인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결정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기도 하다”며 “그룹 지배구조 단순화는 오너 경영인에게 경영권 강화뿐만 아니라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롯데그룹도 SK그룹과 비슷한 구도를 짤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BU장의 권한 강화는 그만큼 책임도 커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각 BU장, 더 나아가 사업부 수장들간의 경쟁을 촉진시켜 향후 BU장 후보, 또는 부회장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평가 요소가 된다. 황각규 부회장과 송용덕 부회장 모두 1955년생으로 60대 중반이다. 각 사업부 수장에 50대들이 전면 배치되면서 차기 그룹 2인자로 가기 위한 경험과 경쟁의 장이 열렸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의 경우를 보면 최태원 회장의 결단이 중요하지만 그만큼 각 사업부 수장의 전략적 판단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는 결국 수장들간의 경쟁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이 두 부회장 간의 경쟁을 통해 롯데도 과거와 달리 본격적인 내부 경쟁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고, 그룹을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질로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