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문제 만든 금융위는 뒷짐
제2의 DLF·라임 사태 막기 위한 감독체제 개편 논의해야
-
DLF와 라임사태로 금융권에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금융위원회의 역할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제를 일으킨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데다 금융감독원마저 비난의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만 빗겨 서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지난 16일 열린 하나·우리은행 DLF 1차 제재심은 예상대로 긴 공방 끝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금감원장까지 나서서 해당 금융사의 CEO 징계에 대한 시그널을 준 상황이다. 금감원의 초강수에 ‘관치 논란’까지 다시 벌어질 정도다.
해당 금융사들은 제재수위를 낮추는 데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내부통제 이슈로 발생한 문제를 가지고 CEO 중징계는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금감원이 회사의 인사권까지 침해한 전형적인 관치라며 반기를 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임사태까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금감원도 수세에 몰리고 있다. 비난의 화살이 집중된 금감원도 물렁물렁하게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원회가 눈에 띄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위는 금융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금융감독의 주무기관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금융 사건사고에서 ‘검찰’ 역할이 금감원이라면 ‘법원’은 금융위인 셈이다. 금감원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금융사 검사 기능이 있다면, 실질적인 정책을 만들고 금감원이 가져온 검사 결과를 기반으로 제재 등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기관이 금융위다.
DLF, 라임사태 문제는 일차적으로 해당 금융기관의 책임이다, 금감원의 감독 소홀로 일조를 했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면 결국 금융정책과 맥이 닿아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지난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과정에서 시행령을 통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적격투자자 투자 기준액을 1억원으로 낮췄다. 사모펀드에 규제 문턱이 확 낮아지면서 개인투자자 자금이 파생상품을 담은 전문형 사모펀드에 쏠렸다. 문턱이 낮아지니 은행들은 서로 달려들어 해당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사후적인 감독소홀의 책임을 금감원에 물을 수 있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부작용을 고려치 않은 사모펀드 규제 완화라는 지적이다.
라임사태도 마찬가지다. 라임운용사의 펀드 판매에 나섰던 판매사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선 판매사들은 펀드 운용에 관여할 수 없으며, 정보교류가 차단되어 있다. 운용사와의 이해상충 문제로 펀드의 구성내역과 운용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판매사 입장에선 해당 운용사나 상품에 대한 실사가 법으로 차단되어 있는 셈이다. 라임자산운용에선 이 법을 근거로 판매사의 실사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다 보니 판매사들이 제대로된 실사를 할 수 없었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판매사와 운용사 사이의 절차와 규칙을 만드는 기관이 바로 금융위다.
금융권에선 금감원보다 금융위가 로비에 취악한 조직이라고 지적한다. 행정고시 출신들이 모이는 금융위는 기수문화가 존재하고 순혈주의가 강하다. ‘금융권의 모피아(MOFIA;자신들의 사익에 집중하는 재정부 출신 엘리트 공무원 집단)’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업계와 부딪칠 일이 없고, 정책적인 문제가 생겨도 순환보직으로 부서를 옮기면 그만이라는 평가다.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예고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연임 추천된 것을 두고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연임에 동의한 예금보험공사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뒷말이 나온다. 금감원과 거리를 두며 마치 이해당사자가 아닌 것 같은 평가를 내놨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금융위의 안이한 인식은 정부 재정에 피해를 주게 됐다. DLF 사태가 터진 이후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1만4000원대에서 1만원대 초반으로 수직 하락했다. 지난해 연초 1만6000원대과 비교하면 40%에 가까운 낙폭이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금융지주 잔여 지분 17.25%의 가치는 2조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1년새 7000억여원 증발했다. 예보의 우리금융지주 지분은 시장에 매각해 회수해야 할 공적자금 투입 자산이다.
금융위에 대한 국회 차원의 감독체제 개편은 번번히 무산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내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위가 산업정책과 감독정책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금융위의 산업정책을 기획재정부 등에 넘기고 독립적인 금융감독 기관 설립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DLF 라임사태에서 보듯 산업정책과 감독을 모두 금융위가 관장하다 보니 제대로 된 감독이 이뤄지지 않는 폐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금융위의 완강한 반대에 막혀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시장을 생각하면 가급적 빠르게 결론을 내줘야 할 게 이번 사태(DLF라임)인데, 고령(1948년생)의 윤석헌 금감원장은 좌고우면없이 몰아치기만하고 모피아 출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고 있다”며 “금감원을 앞에 세우고 사실상 모든 금융 정책, 감독을 총괄하는 것은 금융위다”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19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