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힌드라 쌍용차 증자요구…'총선'에 빌미 잡힌 정부ㆍ산은
입력 2020.01.28 07:00|수정 2020.01.27 19:09
    쌍용차 모기업 마힌드라, 산은에 자금지원 요구
    정치권 움직임 가세하면 산은 추가지원 불가피
    '제2의 GM'이란 꼬리표 따라다닐 전망
    • 쌍용차 모기업 마힌드라그룹이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에 사실상 추가 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자 권리’를 볼모로 거액의 투자를 받아냈던 GM 사태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쌍용차 지분도 없는 산은으로선 명분도 없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게 된 격이라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직접 움직이면 산은도 마땅한 선택지 없이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산업은행은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마힌드라 요청으로 면담을 진행해 쌍용차 경영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산은 관계자에 따르면 파완 쿠마르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은 쌍용차 회생을 위한 직접 투자 계획을 밝히며 간접적으로 산은의 금융 지원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구체적인 투자 요청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황상 산은 측에 요구한 투자금은 2000억원대 수준으로 추산된다. 고엔카 사장은 쌍용차 임직원들에 앞으로 3년간 쌍용차가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선 5000억원이 필요한데 이중 2300억원은 마힌드라가 증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나머지 액수는 외부로부터 끌어와야 하는데, 금융투자업계는 산은을 주축으로 금융사들이 이 정도 수준의 금액을 요구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었지만, 쌍용차는 지난 10년간 유독 큰 부침을 겪어왔다. 최근 영업적자도 2017년 658억원, 2018년 642억원, 2019년 3분기 누적 기준 1821억원으로 적자 폭을 키워왔다. 흑자를 낸 2016년(280억원)을 제외하곤 지난 10년간 제대로 된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쌍용차에 자금 투입이 절실한 건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산은이 이 적자기업에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해줘야 할 명분은 무엇인지 시장에 설득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쌍용차에 지분을 들고 있는 주주도 아니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지 않는 사기업, 심지어 모기업이 인도 그룹인 기업에 국책은행이 경영정상화에 나설 의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쌍용차는 산은으로부터 1900억원, 우리은행과 JP모건으로부터 각각 400억원, 국민은행으로부터 140억원 등 3000여억원의 채무를 지고 있다. 특히 산은은 지난해 12월 이미 만기가 임박한 300억원 중 200억원은 쌍용차의 요청에 따라 상환을 연장해줬다. 그간 쌍용차의 채무상환능력을 확인하지 못한 산은 입장에선 이미 들어가 있는 돈도 돌려 받는다는 보장이 어려운데 추가로 수천억원을 더 수혈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셈이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의 쌍용차 지원에 대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지원 계획도 현재는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산은에겐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을 ‘일자리’ 내지는 ‘노동자의 권리’라는 명분 때문이다. 지난 대출금도 정부가 직접 나서 지원 빌미를 제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인도 방문 중 쌍용차 해고자 119명 복직 문제를 마힌드라 회장에 언급했고,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개입해 이들을 전원 복직시켰다. 복직자를 받을 여력이 없었던 쌍용차에 정부는 지원 방안 마련을 약속했고, 결국 산은이 1000억원을 5년 만기로 대출해줬다.

      당시 마힌드라그룹은 대주주로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산은의 요청에 500억원을 유상증자했다. 이번에 5000억원의 금액 중 2300억원은 마힌드라가 직접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가져온 것도 과거 선례를 바탕으로 산은이 거절할 퇴로를 막으려는 의도란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호의(?)를 확인한 마힌드라 입장에선 당시와 같은 명분을 앞세워 한국 정부를 움직이게 하면 산은의 추가 지원까지는 어렵지 않을 걸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공교롭게도 고엔카 사장은 지난 16~17일 방한해 이목희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을 만났다. 지방선거도 몇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쌍용차 해고자 46명의 복직도 연기해 노동계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정치권이 움직여 ‘노동자 권리’를 앞세우면 산은 입장에서도 이미 비슷한 논리의 과거 선례에 기여한 만큼 거절이 쉽지만은 않다.

      흐름상 과거 ‘GM 사태’가 재현되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자동차 회사 GM(제너럴 모터스)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한국GM 군산 공장을 폐쇄해 고용 불안 위기감을 조성했다. 정치권의 힘을 얻은 GM은 산은으로부터 7억5000만달러(약 8700억원)의 지분 투자를 받아냈다. 정황상 마힌드라가 GM식 해법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이미 ‘제2의 GM’ 꼬리표가 붙은 상황에서 금융투자업계는 자금 지원하는 산은과 지원받는 쌍용차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5000억원만으로는 쌍용차 흑자전환이 사실상 어렵고, 산은도 '다시 돌아오기 힘든 돈'이란 걸 알면서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산은이 자금 지원을 지분 투자 방식으로 한다면 그 때는 부실기업 운영 책임 꼬리표가 본격적으로 따라다닐 것”이라면서 “당장은 2000억원대 수준이지만 추후 정상화에 실패하면 더 많은 자금을 또 요구하는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은 자금을 등에 업고 생색 내는 정부, 대규모 지원에도 정상화는 요원할 쌍용차, 자금을 지원하고도 욕을 먹을 산은.’ 결말이 불 보듯 빤하게 예견되는 상황에서 해당 사례는 ‘제 2의 GM’이라는 불명예로 계속 회자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