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대본' 들고 나온 삼성전자, 속도조절 시사에 반도체시황 '안갯속'
입력 2020.02.03 07:00|수정 2020.02.04 09:27
    수요회복 기대 선 그으며 '속도조절' 시사
    회복론 베팅해온 시장 '너무 보수적' 반응
    '천천히' 가겠다는 전략..."쪽대본" 평가도
    • "반도체시장이 본격적인 수요반등 사이클에 들어갔다고 보기엔 신중한 입장이다. 회복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질지도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중략...) 수요가 다시 둔화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에 선을 그으며 향후 투자전략에서도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삼성전자의 보수적 전망에 따라 최근 자본시장 초유의 관심사로 떠오른 반도체 시황도 한치 앞을 보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다.

      시장은 삼성전자의 1월 초 잠정실적 발표 이후 반도체시장 회복론에 베팅해왔다. 삼성전자가 향후 전략을 두고 "상황 봐가며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자 시장에선 지나치게 보수적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경쟁사에 다소 숨통을 트게 해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30일 2019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1분기 "D램 빗그로스(bit growth)가 한 자릿수 후반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빗그로스는 메모리 용량을 1비트 단위로 환산한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량 증가율을 가리킨다. 이어 기존 계획대로 상반기 내 메모리반도체 재고를 정산하고 투자를 통한 증설보다는 공정전환을 통한 기술리더십 강화에 주력할 예정이라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왜 이렇게 보수적으로 나오느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회복세를 이어가길 바라던 시장의 기대감과는 정반대의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삼성전자가 업황에 대한 보수적 전망을 전제로 재고 처리부터 향후 투자까지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통상적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선 1분기가 비수기로 수요 하락이 예상되지만, 시장에선 하락한다고 하더라도 2~3%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빗그로스를 보수적으로 내놓고 재고는 좀 천천히 팔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D램 생산라인을 이미지센서로 전환하며 생산량도 줄고 가격은 어차피 오를 테니 속도조절을 통해 판매량과 가격을 점진적으로 올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맞은 편에선 삼성전자가 일부러 보수적 전망을 내놨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회복세가 데이터센터와 같은 큰 손들의 재고조정에서 시작 됐기 떄문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말부터 클라우드 업체 등이 사재기를 시작해 이에 따른 반동으로 향후 수요가 둔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시장이 회복세를 점치는 건 데이터센터향 수요 외에도 올해부터 본격화할 5G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발표회 전반에서 부정적 변수를 언급하며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는 실적발표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5G 스마트폰 출시가 본격화하며 메모리 수요가 큰 폭으로 성장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올해로 한정해서 보자면 추가 어플리케이션 적용 없이 5G 지원 자체가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지난해 OEM들이 메모리를 늘린 데 대한 기저효과도 있어 사용량 증가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의응답 때엔 향후 증설계획에 대한 질문도 수차례 이어졌지만 삼성전자가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한 참석자가 시황변화로 D램 라인의 전환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느냐고 묻자 "수요에 긍정적 요인이 있지만 전환 계획은 기존대로 간다", "고정적 수치를 가지고 움직이기보다는 시장 환경에 맞춰 탄력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일각에선 현재 반도체 시장이 공급자 중심으로 바뀌며 삼성전자가 원하는 속도대로 흘러가는 형국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과거 업황이 급격하게 꺾이며 실적이 반토막 난 적이 있다 보니 사실상 쪽대본을 들고 나온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최상위 사업자인 삼성전자의 신중한 태도로 인해 경쟁사 입장에서는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업황을 이렇게 보는 이상 무리할 필요가 없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컨퍼런스콜에서 확인된 삼성전자의 시장전망과 대응전략은 올들어 연일 역사적 고점을 갱신해 온 삼성전자 주가를 두고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지' 고민하던 투자자들의 논쟁에 찬물을 부은 격이 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 대비 3.21% 하락한 57200원으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