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한배 탄다” 자신감에 전자투표 주장
경영권 방어 시급한 한진그룹 ‘묵묵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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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경영권의 향방은 결국 5% 미만 주식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에 달렸다. 조원태 회장과 KCGI의 성패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주주들이 얼마나 많이 주주총회에 참여하는가’에 따라 엇갈리게 된다.
‘주가상승’과 ‘차익실현’이라는 목표가 뚜렷한 KCGI와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는 정확히 부합한다. 이에 KCGI는 최대한 많은 소액주주들을 주총에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전자투표를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한진그룹은 소액주주들의 참여가 늘어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전제투표는 주주가 주총에 참석하지 않고 PC와 모바일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이다. 2009년 5월 상법(상법 제368조)에 전자투표 도입이 가능한 조항이 신설됐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도입을 확산하는 추세다.
가장 최근엔 삼성전자가 전자투표 도입을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만해도 경영권 위협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했으나 올해는 예년의 외풍이 사라졌다. 외부 세력의 감시가 덜한 상황에서 우호적인 업황은 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당연히 주주들의 불만도 덜 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배경은 삼성전자가 전자투표를 도입한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진칼의 상황은 정반대다.
업황 전망은 부정적이고 최근 실적도 좋지 못하다. 조원태 회장과 KCGI의 우호지분 격차는 1%포인트 남짓. 경영권의 향방은 소액주주들의 손에 달려있다.
소액주주들은 주총에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쪽에 투표한다. 한진그룹이 7일 내놓은 재무경영전략은 KCGI가 과거 제시했던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소액주주들의 표심은 조원태 회장과 KCGI 중 ‘주가부양’에 더 신경써야 하는 쪽에 몰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자투표의 도입은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석률이 높아짐을 의미하는데,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전자투표를 통해 KCGI의 손을 들어준다면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 유지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사실 KCGI가 주가를 유지 또는 부양해야 하는 원인은 명확하다. 투자금 회수는 물론,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주가부양은 필수적이다.
한진칼의 현재 주가는 경영권 분쟁에 따른 양 측의 지분 매입 기대감으로 펀더멘털 대비 상당히 높게 형성돼있다. KCGI는 최초 펀드자금만을 활용해 지분을 매입했으나, 지분을 약 18%까지 늘리는 과정에서 대규모 주식담보대출을 받았고 꾸준히 주가가 상승한 탓에 평균 매입단가도 그만큼 올라갔다. 만약 주주총회 이후 지분 매입 경쟁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져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면 금융기관의 ‘반대매매’ 등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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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반도그룹도 마찬가지다. 반도그룹의 한진칼 지분 매입단가는 최소 3만5000원~최대 4만6000원 수준이다. 물론 KCGI와 같이 차입을 통해 지분을 사들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덜 하지만, 현재 주가가 4만원 초반대에 형성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손실도 배제할 수 없는 구조다.
KCGI는 2년 연속 한진그룹에 전자투표 도입을 제안했으나, 한진그룹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한진칼이 과거엔 오너일가의 부정적인 여론 등이 전자투표를 꺼린 원인이었다면, KCGI에 동조하는 세력을 더 늘지 않게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사실 전자투표 도입을 위한 기한은 아직 여유가 있다. 상법상 주총 소집은 주총일 2주전까지 통지 하게 돼있고 전자투표 또한 소집통지와 함께 주주들에게 알리면 된다. 위탁기관과의 실무협의 기간을 고려해도 그리 빠듯한 상황은 아니란 평가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양측이 명분을 앞세워 지분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개인 주주들의 표심을 잡는 것은 결국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하는 것이 핵심이다”며 “회사가 내놓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방안보다 KCGI 측이 내놓을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에 소액주주들이 동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KCGI가 소액주주들의 힘을 얻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면, 조원태 회장은 임직원들의 지지와 나름의 재무구조개선 전략으로 투자자들을 설득할 전망이다.
결국 조 회장은 장기간 한진그룹과 동행 할 수 있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투자자 그리고 외국인투자자 등의 표심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 됐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엘리엇과의 표대결에서 외국인 사외이사 선임, 배당성향 강화 등 주주들의 눈높이에 부합한 안건으로 승리한 바 있다. 그 당시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은 엘리엇의 파격적인 고배당 제안 등에 반대하며 다소 현실적인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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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2월 07일 17:5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