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영향력 저하...중징계에도 금융사 CEO '체제 유지'
주주들도 금감원에 반발...'금소원' 독립 이슈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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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에 쌓인 불만이 이번 사태로 분출한 거죠.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도, 감독대상인 금융회사들도 금감원에 (불만이) 쌓일대로 쌓였습니다. 21년 금감원 역사상 가장 완고한 '실세' 윤석헌 원장 취임 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한 대형 금융회사 고위 임원)
파생결합증권(DLF) 중징계 결정 이후 대형 금융회사 지배구조(거버넌스)가 눈에 띄게 흔들리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엇박자도 다시 수면위로 드러나며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태에 대한 금감원의 책임이 부각되며 '금감원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번 사태는 결국 10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한 금융감독체제 개편 논의 급물살로 이어질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1년간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한 손에 쥐고 존재감을 과시했던 금감원의 위세가 이번 사태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금융권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금감원, DLF 사태 중징계로 '선' 넘었다...체면구긴 금융위
지난달 말 금감원의 DLF 사태 관련 중징계안 공개 이후, 상급기관이자 감독업무위탁자인 금융위원회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을 통해 금감원장 전결로 확정해버리고, 금융위에게는 법인에 대한 과태료 결정 정도만 넘긴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해임권고ㆍ문책경고 등 임원에 대한 중징계 권한은 금융위가, 주의적경고 등 경징계 권한은 금감원이 가지고 있다. 다만 지배구조법의 경우 중징계인 문책경고까지 금감원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금감원이 이를 악용해 금융위의 징계 권한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DLF 사태 징계 논의 관련, 초기에는 핵심 사안이 불완전판매인만큼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거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를 '내부통제 시스템 미비'로 보고 지배구조법을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징계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관리자'로 정의한 정황도 드러났다.
금융위는 앞서 분산된 징계 결정구조 일원화를 위해 중징계 권한을 금융위로 통일시키는 법률 개정안을 준비했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틈을 금감원이 파고든 것이다. 금융위는 이를 '선을 넘었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말 손태승 회장 연임 결정에 대해서도 금융위과 금감원의 결이 많이 달랐다"며 "금융위 입장에선 지난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감리 명령 관련, 금감원이 재감리를 거부한 사태도 떠올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힘 빠진 관치ㆍ금융위와의 엇박자에 영(令)이 안선다
금감원의 독주는 결국 금감원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조차 반발하는 조치에 대해 '지나치게 엎드릴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이런 공감대는 지난 2018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금감원은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을 접촉해 김정태 회장의 연임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했다. 금감원은 당시 관치 논란에 대해 '정상적인 감독 활동'이라고 치부했다. 이에 반발한 하나금융 이사회는 김 회장의 3연임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신한금융 이사회 역시 금감원에서 사외이사 접견을 통해 하나금융과 마찬가지로 압박했지만, 조용병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및 이사회가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조차에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금융당국이 자초한 부분이 크다. 주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상장된 민간 금융사 경영에 직간접적인 관여를 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커졌다. 사사건건 금융사와 날을 세우다 보니, 정작 ‘영(令)’이 서야 할 때 서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들도 금감원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금감원이 CEO 교체에까지 간섭하는 데 대한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사 밸류에이션 저평가도 금감원탓? 현장선 '볼멘 소리'
주주와 이사회조차 무시하는 금감원의 처사는 증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0년간 이익 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금융회사들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이 타국 증시 대비 저평가된 배경 중 하나로 금감원이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요 대형 금융회사(은행 및 보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배 안팎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ㆍ일본 등 글로벌 선진시장은 물론, 중국과 비교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저평가의 대표적인 배경으로는 배당이 꼽힌다. 금감원은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주요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이 공공연하게 배당에 간섭한다는 불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과거 외환은행 등 국부유출 논란이 시끄러울때 외국인 주주들에게 과도한 배당이 가면 안된다며 금감원이 배당 상한선을 암묵적으로 정해놨는데, 아직도 이런 기준으로 금융회사들을 재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조차 헛돈 쓰지 말라면서 암묵적으로 압력을 주기도 한다"며 "성장성은 꺾여가는데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쓰지 못하니 주가가 힘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내 대형금융지주 배당성향 목표치는 30%다. 이 때문에 30%선이 금감원이 인정한 배당 상한선이라는 인식이 국내 운용역들 사이에 팽배하다. 가장 강력한 배당주여야할 금융주가 국내증시에선 하락장에서도 힘을 못 쓰는 배경이 바로 이것이라는 평가다.
금감원 기능 분할 등 금융감독 재편 논의 '재점화'
DLF 사태를 계기로 금감원에 대한 비우호적인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는만큼, 올해 금융위가 추진 중인 금융감독체계개편방안이 좀 더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핵심 개편방안은 금감원으로부터 금융소비자기능을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독립시키는 안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제기됐다. 2012년 정부(기획재정부)가 금소원을 신설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었고, 2014년에도 금융위가 비슷한 개편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법 개정이 필요한데다,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의식한 금감원의 반발에 부딪혀 현실화하지 못했다. 선진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감독체계를 개편했지만, 국내는 이런 추이를 뒤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달 초 감사원이 금융위에 전달한 감사결과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금융위의 '금융소비자 보호시책'을 점검한 후, 그 결과를 이달 초 통보했다.
감사원은 통보를 통해 현 금감원만으로는 금융소비자 보호기능에 한계가 있다며 개편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을 확대했다고는 하지만, 민원 검사와 제재 실적이 오히려 감소하는 등 민원처리 기능이 약해졌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었다.
감사원이 해당 방안을 검토한 지난해 7월은 라임사태와 DLF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이었다. 대규모 금융사고를 앞두고 시스템에 결함이 있음을 감사원이 먼저 감지했던 셈이다.
금융위는 감사원의 지적에 '의견의 지속적으로 수렴해 향후 국회 입법과정을 지원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금융상품 사고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금융시장 핵심 이슈로 부각한만큼, 공론화는 물론 입법 과정이 이전보다 수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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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2월 10일 16:3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