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경영' 신봉하는 강성부펀드…남은 선택지는 인력 구조조정?
입력 2020.02.19 07:00|수정 2020.02.20 10:06
    KCGI, JAL 회생 아메바경영 항공업계에 접목 의지
    국내 현실과는 달라…구조조정도 이미 놓친 화두
    한진칼 지분경쟁 안갯속…KCGI 명분은 점점 약해져
    •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Kyocera)그룹 창업자는 ‘아메바경영’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펼치며 ‘경영의 신’으로 불렸다. 이름처럼 아메바라는 소집단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이다.

      아메바경영은 일본항공(JAL) 재건에서 빛을 발했다. 2010년 일본항공이 파산하자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구원투수로 투입됐고, 1년여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본사의 권한을 흩었고 노선별 독립채산제를 도입했다. ‘매출은 최대, 경비는 최소’라는 아메바경영의 대원칙이 사내 전반에 확립됐다.

      한진칼 지분경쟁의 중심에 선 강성부 KCGI 대표가 이 아메바경영에 심취한 인사로 꼽힌다. 평소 주변에 아메바경영을 접목해 한국 항공산업의 대전환을 이루겠다는 뜻을 드러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메바경영의 본산인 일본항공 측과 접촉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부 대표는 작년말 한 국책은행의 투자전략 강연자로 초빙된 자리에서도 아메바경영 도입의 필요성을 수 차례 언급했다. 대형 항공사의 취약한 재무구조를 지적했고, 저가항공사(LCC)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아메바경영을 펼치는 국내 모범 사례를 꼽기도 했는데, 그 대상은 2005년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된 메리츠금융그룹이었다.

      일본항공의 부활은 극적이었지만 한진그룹에서도 아메바경영이 펼쳐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아메바경영은 부서별 독립채산제·리더십 개발·모두에 의한 경영 등을 핵심 목표로 한다. 국내 기업 경영 환경에서 온전히 접목시키기 어려운 이론이란 평가가 나온다. 주주가 다변화한 일본 기업과 달리 경직된 재벌 중심의 우리나라에선 사내 소조직이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한진그룹은 아메바경영 모범사례라는 메리츠금융그룹과도 상황이 다르다. 팀별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강력한 보상을 안기는 시스템은 금융업 외 일반 기업에선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항공담당 연구원은 “일본항공 파산은 ‘주인 없는 회사’가 된 시기가 길어지면서 임직원들이 방만해진 영향이 컸다”며 “경영 구조가 다른 한진그룹에 아메바경영 철학이 접목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아메바경영의 근간엔 ‘CEO가 모든 것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 깔려 있지만, 수십 년간 항공업을 이끈 경험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스카이팀 출범 사례에서도 항공사 오너의 영향력이 드러났다. 국내선 시장이 큰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해외 시장 개척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는 평가다.

      일본항공만 해도 아메바경영 도입의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조직이 아메바처럼 움직이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이름 뿐인 팀이 생겨났다. 명목상 팀 100개 중 실제로 직원이 활동하는 팀은 50개에 불과하지만 장비는 100개팀에 맞춰 꾸려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하는 식이다. 오랜 기간 재무 위기를 겪으며 허리띠를 졸라매 온 한진그룹에서 더 큰 시너지를 거두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아메바경영의 여러 실행 목표 중에서도 가장 쉬운 선택지만 남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황 악화로 ‘매출 확대’가 어렵다면 ‘경비 감축’에 나서는 것이다. 그 핵심은  결국 인력 구조조정이다. 일본항공 역시 본격적인 아메바경영 도입에 앞서 3분의 1에 달하는 직원을 내보낸 바 있다.

      다만 인력 구조조정도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그룹 내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이 구조조정에 나서면 후폭풍도 불가피하다. KCGI로서도 작년에 인위적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터라 또 다른 목소리를 내긴 부담스럽다. 시기를 놓친 화두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은 작년말 인사에서 임원을 대폭 줄였고, 희망 퇴직도 진행했다. 향후 항공업 반등 가능성을 고려해야 해 인력을 더 줄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메바경영 도입의 전제 조건을 충족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지분율 싸움의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KCGI는 반도건설에 조현아 전 부사장까지 우군으로 끌어들이며 수완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지지하며 기류는 다시 반전했다. 대한항공 사우회 등도 조 회장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라 KCGI는 추가적인 우군 확보가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