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유통엔 정답이 없다…쿠팡·네이버 '각자도생'
입력 2020.02.20 07:00|수정 2020.02.19 17:46
    쿠팡-네이버, 유통·물류시장 강력한 ‘게임 체인저’
    업종 간 장벽 허물어져 구분하는 의미 퇴색돼
    ‘승자 가리기’보다도 ‘사업모델 안착 과정’에 주목
    • 기존 이커머스 업계 강자 쿠팡, 그리고 강점인 데이터를 앞세워 유통과 물류로 사세를 확장하는 네이버. 이들은 국내 유통과 물류 시장에서 결국 최종 승기를 잡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평가 받는다. 경쟁이 자연스럽게 산업 규모를 키웠고 산업 간 장벽도 허물어지면서 유통과 물류시장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기준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됐다. 결국 ‘1등 쟁탈전’보다도 상이한 두 사업모델이 어떻게 국내 시장에 안착해 가는지의 관점에서 이 경쟁을 관전할 필요가 있다.

      기존 이커머스 업계는 쿠팡·11번가·옥션·티몬·위메프·G마켓 등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그중 ‘로켓배송’ 서비스로 자체물류 기반을 다지고 있는 쿠팡은 가장 큰 주목을 받아왔다. 여기에 네이버가 덩치를 불리며 이커머스 패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쿠팡은 유통과 물류가 결합된 이커머스 기업, 네이버는 변형된 오픈마켓을 서비스하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사업모델은 크게 자체물류 여부로 나뉜다. 쿠팡은 재고를 사입해 주문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풀필먼트(Fulfillment) 비즈니스’, 네이버는 택배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대여한 창고에서 물량을 처리하는 ‘중개식 비즈니스’다.

      관련업계에선 이들 중 누가 시장을 재편하는 승자가 될지 갑론을박이 오간다. 네이버에 손을 들어주는 쪽은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지배력과 데이터를 통한 플랫폼 확장을 근거로, 쿠팡에 손을 들어주는 쪽은 자체물류가 가능한 인프라를 유일하게 갖춘 독점적 지배력과 소프트뱅크 자금을 등에 업은 잠재력에 주목한다.

      네이버와 쿠팡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대표는 최근 한 강연에서 “트래픽을 관리하는 네이버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자는 의미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데이터 역량을 갖춘 네이버가 시장을 재편할 것이라 분석했다. 강점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통과 물류업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 점은 '아시아의 구글'이 곧 네이버의 지향점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업계 최대 시장 점유율(M/S)도 강점이다.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와 네이버쇼핑을 경유한 트래픽을 합산해 2019년 총거래액으로 업계 최대인 20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같은 기간 17조원을 기록한 쿠팡에 비해 네이버의 M/S가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M/S는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대부분의 이커머스 기업들이 자본잠식임에도 마진을 포기한 초저가 경쟁을 이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점유율이 높아지는 만큼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릴 수 있고  입점 판매업자들에게도 매력 요인이 된다.

      풀필먼트에 있어선 CJ대한통운의 곤지암허브터미널 창고를 대여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쿠팡이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 인프라를 구축하는 점과 대비된다. 하지만 자체적인 설비를 구축하지 않으면 ‘반쪽짜리 비즈니스’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쿠팡이 자체물류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는 상황은 중개식 모델의 네이버 입장에선 강력한 위협 요소가 된다.

      유통업계는 물류를 내재화한 쿠팡의 빠른 성장 속도에 주목한다. 아마존처럼 완벽한 자체물류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 빠른 배송이 가능해 소비자 록인(Lock-in) 효과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고등이 울린 자금 유치는 불안 요소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지난 12일 투자자설명회를 통해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대한 지원 방침 변화를 시사했다. 긴급 자금 지원 가능성이 없음을 강조하며 투자 기업들은 자체적인 자금조달(Self-financing)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브랜드리스가 최근 파산했는데 이는 소프트뱅크 주요 투자기업 중 첫 번째 폐업 사례다. 브랜드리스는 파산 이유로 소비재 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근거로 들었는데, 다방면으로 사업이 다각화된 네이버와 달리 물류 사업에 사활을 걸어야 할 쿠팡 입장에선 뼈아픈 대목이다. 쿠팡은 그동안 소프트뱅크 자금에 사실상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이젠 수익을 내든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최근 쿠팡의 나스닥 상장 추진설이 재차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경우 풀필먼트 사업을 상장 시기에 맞춰 개시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적자 유니콘 기업에 대한 보수적 밸류에이션 잣대가 형성된 최근 분위기상 쿠팡이 투자자 설득을 위해 만성적자를 탈피할 사업인 풀필먼트 카드를 꺼낼 것”이라 예상했다.

    • 업종 구분하는 기업은 경쟁력을 잃을 것

      네이버와 쿠팡의 경쟁구도보다도 이들의 상이한 사업 모델이 시장에 어떻게 안착하는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쟁에서 승리할 정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 양사가 각자의 강점으로 제 갈 길을 가는 그림이 연출됐다. 네이버와 쿠팡이 사업을 확장할수록 유통·운송·물류 업종 구분 의미도 옅어지고 있다.

      독일 글로벌 물류기업인 리너스(Rhenus Logistics)는 11일 2020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영향을 줄 물류 트렌드로 ‘이종간 협업’을 든 바 있다. 물류업계에 인수·합병(M&A)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그간 구분돼 왔던 업종이 협업해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다. 리너스는 “‘이커머스 물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물류 플랫폼도 점차 확장하고 있는데 단순히 네트워크 확보를 통한 규모의 경제 구축뿐 아니라 IT 영역의 통합 역시 가속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류기업이 꼽은 물류 트렌드가 IT와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유통·운송·물류 업종 간 구분 의미가 퇴색하는 만큼 증권사의 업종 구분도 옅어졌다. 이커머스 사업과 관련해 여러 업종의 애널리스트들이 관련 리포트를 내고 있는 데다 10여년간 운송업을 담당했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유통업도 맡아 분석 리포트를 내기 시작했다. 유통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운송이나 물류업도 겸한다. ‘이종 간 협업’이 실제로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업종 간 장벽이 허물어진 상황에서 산업을 분류하는 기업은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유통기업인 쿠팡과 IT기업인 네이버가 물류업에까지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데 정작 전통적인 물류 사업자들은 이들 기업에 물류창고를 대여해주는 식에 그치는 등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결국 업종을 구분 짓는 회사는 사업을 한정시켜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면서 “네이버와 쿠팡 간 경쟁체제도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보다 ‘두 사업모델이 시장에서 어떻게 정착해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