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락이 불러온 공포...외국인 1.3兆 순매도에 파랗게 질린 코스피
입력 2020.03.09 16:20|수정 2020.03.10 10:17
    유가 17년만에 배럴달 30달러 아래로 내려가며 쇼크 유발
    공포 질린 외국인들, 미국 3대 지수 선물시장 하한가에 투매
    '국제 공조'만이 살 길인데...금융위기 도화선 될수도
    우한 코로나→저유가→정크본드 시장→금융위기 고리 여전
    • '주가는 미래의 기대를 반영하고 유가는 현재의 공포를 반영한다'

      유가 폭락발(發) 쇼크가 증시를 뒤덮었다. 산유국 감산 공조 불발로 인해 유가가 하루만에 30% 이상 떨어지며 17년만에 최저치로 밀린 여파가 코스피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단순히 유가와 주가가 연계된 게 아니다. 유가 급락은 우한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수요 감소를 반영하고 있다. 저유가는 미국의 셰일오일 업체들의 줄도산을 부를 수 있다. 최근 1~2년새 이들 기업이 발행한 정크본드(저신용등급 채권)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미국 금융시장도 위험권이다. 이번 증시 급락은 이런 공포감이 한꺼번에 표출된 거란 분석이다.

      9일 코스피 시장은 전 거래일 대비 4.19%, 85.45포인트 급락한 1954.77로 마감됐다. 삼성전자가 4.07% 내리는 등, 상장된 904개 종목 중 866개 종목이 하락했다. 코스닥 시장 역시 전 거래일 대비 4.38% 폭락한 614.60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외국인이 하루 순매도량으로는 3년 만에 최대인 1조3000억원의 매물을 쏟아내며 하락을 주도했다.

      국내 연기금이 4000억여원을 순매수하고, 개인투자자들이 1조2000억여원의 물량을 받아냈지만 하락을 막는 덴 역부족이었다. 외국인들은 이번달 들어서만 3조원을 순매도했다. 본격적인 투매가 시작된 지난달 24일 이후로 따지면 무려 2주간 6조400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내다 팔았다.

      이날 외국인들이 공포에 질려 비이성적인 투매에 나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이날 오전 미국 다우ㆍ나스닥ㆍS&P500 등 3대 지수 야간 선물시장은 일제히 5%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 국내 시간으로 9일 밤 열릴 미국 월요일장에 더 큰 투매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 투자자들이 일제히 주식을 던진 것이다. 이 여파가 국내 증시에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공포를 촉발한 첫번째 원인은 역시 우한 코로나 사태다. 9일 오전 기준 이탈리아 확진자 수가 전일 대비 1500여명 늘어나며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발생국이 됐다. 미국 역시 전일 대비 324명 늘어나며 확진자가 500명을 돌파했다. 우한 코로나가 중국, 한국, 일본에 이어 글로벌 확산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우한 코로나 확산세에 따라 9일 세계 주요20개국(G20)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1%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은 1.7%에서 1.5%로, 중국은 5.2%에서 4.8%로 조정했다. 글로벌 소비와 투자가 크게 위축될 거란 분석에 따른 것이다.

      글로벌 저성장 우려는 유가에 반영된다. 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가격 기준 연초 배럴당 60달러대였던 국제 유가는 우한 코로나가 중국에 확산하며 2월 중순 50달러 전후로 밀렸다. 그러다 우한 코로나가 미국과 유럽에 본격 확산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감산 공조가 깨지며 9일 하루에만 30% 가까이 폭락, 2003년 이후 17년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저유가는 셰일오일을 중심으로 한 미국 에너지 기업에 치명적이다. 이들의 손익 분기점은 배럴당 60달러 안팎으로 알려져있다. 문제는 이들 에너지기업의 주요 자금조달원인 미국 정크본드 시장이 2018~2019년 호황기에 1조4000억달러(약 1445조원) 규모로 커졌고, 여기에 고수익을 노린 헤지펀드 등 금융시장의 자금이 대거 들어가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평균 3%포인트 안팎이었던 미국 에너지기업 하이일드 스프레드(무위험 채권 대비 초과수익률)는 어느새 6%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 하이일드 스프레드가 높을 수록 채권의 이자율이 높아지지만, 거꾸로 말하면 파산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다. 에너지기업은 더 높은 금리를 줘야 겨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저유가가 정크본드 시장을 매개로 금융시장에 위기를 퍼뜨릴 수 있는 구조다. 우한 코로나 사태가 2008년같은 세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우한 코로나 관련 치료는 물론, 경제적인 국제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다. 증시 안정도 이런 공조가 이뤄진 뒤에 기대해볼만 하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와 더불어 중국 관세 철회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줘야 금융시장 안정이 가능할 것"이라며 "국제 유가 쇼크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미국의 관계가 틀어지며 발생한 사태인만큼, 공조 노력으로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