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과잉 여파…운용사들 "까다로운 출자자 피하렵니다"
입력 2020.03.10 07:00|수정 2020.03.11 09:47
    올초 출자사업 줄줄이 예고...PEㆍVC들 '호황'
    까다로운 조건 내건 출자자 회피해도 유동성 충분
    • 사모펀드(PEF)ㆍ벤처캐피탈 등에 정부 주도로 역대급 자금공급이 올해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작년으로 출자공고가 예상됐던 곳들의 일정이 올해로 미뤄지면서 연초부터 투자금 공급이 본격화 됐다.

      PEF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현재 진행 중인 국내기관의 PEF 블라인드펀드 출자사업 규모는 총 1조1900억원에 이른다. 산업은행 한국성장금융(8800억)과 사학연금(1500억원)은 2월부터 모집을 시작했고, 군인공제회(1000억원)·노란우산공제회(600억원)가 아직 절차를 진행 중이다.

      벤처부문에서도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 등의 조단위 자금공급이 줄을 잇고 있다.

      유동성 공급이 늘어나면서 운용사들은 단순히 '자금을 많이 주는 출자자', '대형 출자자'에만 기대지 않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출자받을 곳이 많다보니 원하는 조건에 따라 골라받을 가능성도 따져보기 때문.

      특히 ▲엄격한 출자확약 기준 ▲최대출자자 우대조치 부담 등의 조건을 내건 출자자(LP)는 기피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가장 최근 출자사업에 나선 사학연금은 ‘국내 기관투자자로부터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기관 중 제안펀드 결성 규모가 3000억원 이상으로 30% 이상 출자가 확약된 운용사일 것’을 자격 조건으로 내걸었다. 3000억원 이상 펀드 결성 계획을 가지면서 30% 이상(900억원) 자금을 이미 확보한 곳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안정적인 펀딩을 위해 이 같은 안전장치를 만들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PEF 운용사들은 이런 공고 내용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 특히 중소 PE들 내에선 지원자격에 명시된 자금 규모 면에서 사학연금의 선정 기준이 빡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일각에선 "이미 출자할 곳을 정해놓고 내놓은 공고로 오해받기 쉬운데다, 애초 지원이 가능한 PEF 운용사도 몇곳 되지 않는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학연금은 과거 직전 국민연금 운용사로 선정된 운용사들 자금을 나눠주는 이른바 '매칭(matching) 투자자'라는 평판을 받기도 했다.

      국내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의 경우. 국민연금이 지난해 12월 모집을 마친 ‘국내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경쟁률은 평소보다 저조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 3~4대 1 수준이었지만 이번엔 2대 1 수준으로, 출자 경쟁률은 평소 대비 낮았다.

      조건을 맞추는 운용사가 적었던 탓도 있지만 국민연금의 까다로운 우대조치 제안 조건에 대한 업계 내 오랜 불만도 거론된다. 2013년 처음 등장한 국민연금의 우대조치 제안 조건은 국민연금이 펀드 최대출자자로 참여하면 관리보수에서 국민연금에 우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선정된 운용사 입장에선 다른 출자자들 설득에 곤란을 겪다 보니 ‘독소조항’이라는 논란이 계속 제기돼왔다.

      한 벤처캐피탈(VC) 업체 운용역은 “예전엔 출자를 받으려고 하면 국민연금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점이 계약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이젠 어느 정도 몸집이 커진 곳 입장에선 돈 나올 다른 곳도 많다 보니 굳이 우대가 필요한 국민연금에 목 맬 필요가 없어졌다”며 “이들이 '큰손'인 점엔 변함이 없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