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 알맹이 없는 '이재용' 부회장 사과 요구
입력 2020.03.13 07:00|수정 2020.03.16 09:52
    이 부회장 직접 거론하며 권고안 수위 높아졌지만
    실효성 없기는 마찬가지…이미 재판중인 사항들
    정작 중요한 이사회 문제 제기 등은 내놓지 못해
    •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거론하며 공개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오너를 직접 겨냥했다는 파격 외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서 지난 조치보다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권고안이 다루는 내용에는 새로운 것도, 실효성도 없어 보인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7개 계열사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대국민 사과에 나서더라도 당사자들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이제 와 되돌릴 수도 없다. 오히려 재판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사과를 통해 판결에 간접적 영향을 미칠 기회만 주어지는 상황이다. 노조 문제의 경우 이미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다시금 무노조 경영 방침을 인정하라고 하는 데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사과'와 삼성그룹의 거버넌스 및 의사결정구조가 변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수차례 지적됐듯 현재 삼성그룹이 맞이한 위기의 근본 원인은 삼성의 비정상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정점에 위치한 이 부회장의 반성이 변화의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하는 구조다. 더군다나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반성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약속한 것은 그간 삼성이 수차례 해왔던 일이다.

      준법감시위가 삼성의 거버넌스 개선을 진정성 있게 고민했다면 차라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새로 구성될 이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이번 권고안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서를 작성헀거나(삼성SDS 신현한 사외이사 후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분식 문제에서 회계 처리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낸(삼성SDI 최원욱 사외이사 후보) 이사회 후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밖에도 삼성그룹의 주총 안건 중에는 직원 사찰의 주체인 미래전략실 출신 인사가 삼성전자의 사내이사 후보에 오르는 등 삼성의 개선 의지를 의심할 만한 대목이 많다.

      이런 점에서 이번 권고안이 '면피용' 혹은 '재판용'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출신 한 관계자는 "준법감시위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를 직접 겨냥했다는 것만으로도 명분이 쌓이는 셈"이라고 했다.

      반면 준법감시위원회의 애매모호한 법적 근거와 지위, 역할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승계부터 노조 문제까지 대부분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들이다. 준법감시위가 없었더라도 삼성그룹의 위법사실에 대한 조치가 취해질 것임에도 준법위가 이를 미리, 대신해서 수행하고 있는 격이다.

      기업 지배구조 관련 한 전문가는 "권고안을 수용할 경우 삼성그룹이 이제 겨우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경영하겠다는 당연한 약속을 하게 된 정도에 불과하다"라며 "거꾸로 말하면 삼성이란 조직은 별도 감시기구가 없으면 법을 지키지도 못하는 곳이 되는 것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자연히 준법감시위의 '양형거래' 딜레마는 한층 더 뚜렷해졌다.

      준법감시위의 권고가 삼성의 전향적 조치로 이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재판에는 유리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준법감시위도 이런 고민 끝에 권고문 말미에 재판과의 연관성을 지우도록 삼성 스스로 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현실성 있는 주문인지는 의문이다. 삼성이 자발적으로 준법감시위 활동 내역을 고려하지 말아달라고 재판부에 주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권고안이 30일 이내 회신을 조건으로 내세웠고 이목이 집중된 터라 재계에선 4월 10일 이전에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어디까지 인정하고 사과할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탁위 출신 관계자는 "재판이 코앞인데 두리뭉실한 사과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결국 재판에서는 참작 사유가 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재판에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