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ㆍ금감원 채용청탁…걸리면 운이 나빠서?
입력 2020.03.19 07:00|수정 2020.03.18 17:54
    수십 년 고착화돼 근절 어려울 것
    수은 해외 채용 청탁, 적발 이례적
    • 수출입은행과 외국 투자은행(IB)의 외화채 발행 비리 논란으로 금융권의 해묵은 채용청탁 관행이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다만 금융업계에선 별반 새로울 것 없다는 반응이 많다.

      최근에야 시중은행들의 채용비리가 부각, 은행장이나 지주 회장을 재판까지 몰고가는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과거 선례를 보면 채용청탁 논란은 오히려 '갑'에 해당하는 금융당국, 혹은 정부가 주주로 있는 국책은행에서 더 많이 벌어졌다. 오히려 이번 수출입은행 채용비리가 한국 금융권 채용 청탁의 '정석'(定石) 혹은 '표본'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뇌물수수 사건은 대표 케이스로 통한다. 이 전 회장은 2007년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이 전 대통령과 측근에 불법자금을 제공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가로 이 전 회장에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에 공모할 것을 권했으나 노조 반발과 여론 악화로 실패했다. 이후 우리금융지주를 압박해 이팔성 회장을 선임했다. 당시 우리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72.97%를 가진 준(準)국책은행이었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채용비리에 얽힌 사례들도 상당하다. 금융감독원은 2014년 6월 변호사 채용에서 채점 기준을 임의로 변경했다. 실무 경력이 없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이례적으로 채용했는데 이는 최수현 전 원장의 행정고시 동기인 임영호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었다. 최 전 원장은 비서실장을 통해 해당 채용건을 “잘 챙겨보라”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 전 원장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으나 부원장과 부원장보는 실형을 선고 받았다.

      금융감독원은 2016년 신입직원 채용 때도 문제가 됐다. 금감원 간부가 김용환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김성택 수출입은행 부행장 아들이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 부탁을 받고 담당자에 확인했다. 합격이 불투명하자 이 간부는 채용 인원을 늘리라 지시했고 부행장의 아들도 합격했다. 2017년 감사원이 문제 삼았고 검찰이 수출입은행과 농협금융지주를 압수수색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수출입은행장을 거친 김 전 회장의 이력이 주목받았다.

      더 거슬러가면 2004년엔 금감원에 갑자기 외국대학 출신 전형이 도입돼 논란이 된 이력도 있다. 최총 합격자 3인 중 한명이 금감원 고위 간부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외국 대학 출신이 필요하지 않았던 터라 ‘맞춤형 전형’이란 비판이 있었다. 이 전형은 몇 해 후 사라졌다.

      금융사 입장에선 금감원과의 관계 때문에라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엔 한술 더 떠 출근 시점이나 근무 조건 등을 미리 정해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민간 금융사로 온 임원은 입사하며 퇴직 위로금을 먼저 받아가 빈축을 샀다.

      산업은행 한 자회사의 간부 인사가 구설에 오른 사례들도 있다. 산업은행 출신 인사가 부임하면서 기존에 있던 외부 출신 인사가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산업은행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압박한 것 아니냐는 의심섞인 시선도 있었다.

      이 같은 채용비리는 수 십년간 고착화한 관행이고, 여기서 자유로운 고위 공직자나 금융사 임원은 없을 것이란 비판은 오래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감독당국이나 국책은행의 채용비리는 문제가 돼도 금세 잠잠해진 전례들이 적지 않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하나은행 재직 시절 채용 비리, 진웅섭 전 금감원장은 신입사원 채용 비리 문제로 수사를 받았으나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결국 만만한 시중은행들은 채용비리로 경영진이 실형까지 받을 위기에 처하지만 감독당국이나 국책은행은 같은 채용비리 논란이라도 다 피해간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금융사와 당국의 이해관계가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같은 사례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이번 수출입은행의 외화채 발행 관련 채용 청탁 사건도 그저 '운이 나쁘게' 불거졌다는 시선도 있다. 당사자끼리만 입을 닫으면 불거지지 않았을 문제였으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로 불똥이 튀었다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선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얽히며 진급에서 빠지거나 연임 대상에서 제외된 인사들이 딱하게 됐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IB로부터 향응과 접대를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해외에서 문제가 더해진 형국이다. 수사기관으로서도 어디까지 다뤄야 할지 모호하다. 오래 전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데다 실익도 크지 않다. 수출입은행은 정책의 집행자로서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

      경찰 관계자는 수출입은행 비위 사건과 관련해 “수사가 진행 중이며 진행 과정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