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증권사 하루에 1000억원씩 마진콜 소문도
CP 팔아 달러 구하는 증권사들...금융시장 불안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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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일부 대형증권사가 마진콜(margin call; 선물 증거금 추가 요청) 위기에 빠졌다. 주가연계증권(ELS) 자체 운용 과정에서 기초자산인 해외 선물이 급락한 까닭이다. 당장 현금이 급해진 증권사들은 기업어음(CP)와 환매조건부채권(RP)을 내다팔고 달러를 매수해 마진콜 요청에 응하고 있다.
코로나19 펜데믹(세계적 유행병)으로 인한 글로벌 증시 폭락이 국내 증권사의 직접적인 리스크로 전이되는 모양새다.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당분간 증시와 채권ㆍ외환시장에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ELS 자체 헤지 운용 비중이 높은 일부 증권사가 최근 해외 거래소로부터 증거금을 추가 납입하라는 독촉을 받고 있다. 이런 마진콜 규모는 증권사별로 다르지만, 적게는 8000억원부터 많게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국내 증권사가 요청받은 마진콜 규모가 총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모 증권사는 하루에 마진콜 규모가 1000억원씩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며 "ELS 자체 헤지 규모가 큰 증권사로는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등이 꼽힌다"고 말했다.
최근 한달 새 ELS 기초자산으로 인기가 높았던 S&P500지수나 유로스탁스50 지수가 30% 이상 폭락하며 관련 선물지수도 주저앉은 까닭이다. 증권사가 ELS를 발행할 때엔 선물 등 파생상품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헤지(위험회피)를 하는데, 이 파생상품의 가치가 급락하며 기존에 예치한 증거금만으로는 상품을 유지할 수 없어진 것이다.
원금보장형(ELB)을 포함 국내 ELS 연간 발행 규모는 100조원에 육박한다. 대부분은 외국계 증권사에 헤지 및 관련 리스크를 부담시키는 '백투백 헤지' 방식으로 발행되지만, 대형사 일부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자체 헤지를 택한다. 현재 국내 증권사 ELS 관련 자체 헤지 규모는 2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자체 헤지의 경우 헤지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증권사가 모두 가져갈 수 있지만, 이렇게 리스크가 현실화했을 경우 대규모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마진콜을 당한 해당 증권사들은 보유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고 있다. 주로 단기 자산인 CP와 RP가 매도 대상이다. CP 물량이 일시에 시장에 쏟아져나오며 가격은 급락(수익률 상승)하고 있다. A1등급 91일물 CP 시장수익률은 지난 18일 1.43%에서 20일 1.53%로 이틀만에 10bp 상승했다.
달러화로 마진콜에 응해야 하는만큼, 증권사들의 달러 구매 수요가 외환시장까지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증권가의 진단이다. 지난 19일 장중 달러당 1291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20일 한미 통화 스와프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진 이후 장중 달러당 1238원까지 떨어지며 안정을 되찾는 듯 싶었지만, 오후 중 대규모 달러 매수 주문이 들어오며 재차 1255원까지 상승했다.
시장이 불안해지자 금융감독원은 20일 오후 4시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부국증권, KTB투자증권 등 6개 증권사를 불러 단기금융시장 유동성 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뚜렷한 대책이 나오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도 당분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마진콜은 단기 유동성 이슈에 가까워 증권사의 자산건전성까지 해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해당 증권사들은 올 상반기 트레이딩(운용) 부문에서 예상 이상의 손실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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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21일 15:5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