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부진에 자본확충 부담 커 출자 어려움
보험사 여력 감소…’급할 땐 결국 삼성’ 평가도
-
보험사들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와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에 3조원 이상을 분담하게 된다. 가뜩이나 영업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고 자본확충 부담까지 큰 터라 위험가중치가 높은 펀드에 대규모 자금을 출자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불안해진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채안펀드와 증안펀드 결성 카드를 꺼냈다. 채안펀드는 우선 10조원 규모로 가동하되 10조원을 추가 조성하며, 증안펀드는 10조7600억원 규모로 조성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사들은 31일 다함께코리아펀드(증안펀드)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 펀드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용에 들어간다.
채안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08년 12월 10조원 규모로 꾸려졌다. 당시 산업은행 2조원, 시중은행 6조원, 보험사 1조5000억원을 부담했다. 채안펀드는 2011년말까지 5조원이 집행돼 2012년 전액 회수됐고, 4%대 수익도 냈다. 신용보증기금 등 보증을 받기 때문에 안정적이었다.
보험사 입장에선 부담이 적지 않다. 2017년 출자 약정 비율이 조정되면서 시중은행 출자 규모가 4조7000억원으로 줄었고, 그만큼 보험사가 내야 할 자금은 늘어났다. 기존 약정에 따르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몇 년 새 분담금이 늘고, 이런 부담이 현실화했다는 점에선 고민이 깊다. 생명보험사 1조7800억원, 손해보험사 5700억원 등 보험사들이 2조3500억원을 부담할 전망이다. 펀드 증액도 염두에 둬야 한다.
-
증안펀드는 부담이 더 크다. 2003년 카드대란 때 4000억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5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후 12년만에 새로 조성된다. 펀드 규모도 이전보다 커졌다. 생명보험사 8500억원, 손해보험사 4500억원 등 보험사들이 1조3000억원을 부담한다.
증안펀드로 지수 상품에 투자한다지만 증시가 널을 뛰는 상황에선 성과를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애초 증시안전 장치를 구상하며 금융회사들에 ‘증여’ 방식을 검토해보라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 형태라 상대적으로 회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보험업계는 미증유의 경제 위기 상황에 협조해야 한다면서도 막대한 자금을 출자하는 데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업황 악화로 살림살이가 예전같지 않은 데다, 규제 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채안펀드 분담 비율이 조정된 2017년만 해도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보험사들의 살림이 괜찮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금리 인하로 수익성 유지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당장 막대한 자금을 출자하려면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적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험사들은 불확실한 규제 환경 속에서 매년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발행 등으로 지급여력비율(RBC)을 맞추는 데 급급하다. 금융당국이 펀드 출자사의 건전성 규제를 완화한다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출자금은 결국 국채 등 안전자산을 처분해 마련해야 하는데 국채 투자보다 펀드 출자의 위험가중치가 높기 때문에 RBC 비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안펀드와 증안펀드의 출자 규모에서 보험사들의 현실이 드러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모는 비슷한데 증안펀드는 채안펀드보다 보험사 부담 규모가 1조원 이상 적다. 그만큼 보험사들의 여력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생명보험사의 입지는 더 줄어든 형국이다. 채안펀드는 생명보험사들의 출자 규모가 손해보험사보다 3배 이상 많지만 증안펀드는 2배가 채 되지 않는다. 역마진 우려 속에서 생명보험사들의 출자 여력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상장사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역사적 저점이고, 한화생명은 동전주 자리를 오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회사 증안펀드 출자 규모는 자산총액과 같은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며 “보험 업계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채안펀드보다 증안펀드에서의 출자 비중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두 펀드에서 가장 큰 부담을 질 곳은 삼성그룹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채안펀드 7000억원 이상, 증안펀드 6350억원 등 총 1조4000억원 가까운 자금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보험사들은 정부가 ‘금융그룹 감독제도’를 통해 가장 견제하던 금융사지만 급할 때는 가장 먼저 찾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