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에 푸르덴셜생명 인수전 힘 못 쓴 사모펀드
입력 2020.04.14 07:00|수정 2020.04.16 07:45
    인수금융 시장 냉각으로 자금조달 어려움 겪어
    안정적인 거래 원하는 푸르덴셜, KB금융 선택
    윤종규 회장의 강력한 의지도 한 몫
    사모펀드들 올해 펀드 소진 압박 더 커질 듯
    • 푸르덴셜생명 인수전에 이변은 없었다. 인수전 초기부터 KB금융 유력설이 제기 될 정도로 KB의 인수의지가 높았다. 여기에다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 발발로 금융시장 경색까지 오면서 KB금융에 힘이 실렸다.

      막판 역전승을 노리던 사모펀드들도 금융시장 불안 앞에선 별다른 힘을 쓰기 힘들었다는 평가다.

      지난 10일 KB금융은 이사회를 열고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및 자회사 편입승인 안건을 결의하고 미국 푸르덴셜파이낸셜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기초 매매대금은 2조2650억원으로 결정됐으며 거래 종결일까지 회사 가치 상승분의 이자 750억원이 추가된다. 가치 유출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매대금의 조정을 허용하지 않는 락 박스(Locked Box) 방식으로 매매대금이 정산된다. 이로써 1월부터 이어진 푸르덴셜생명 인수전이 마무리되게 됐다.

      최종 인수자로 선정된 KB금융은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끊을 놓을 수는 없었다. 경쟁상대들이 국내 최고의 사모펀드들인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 PE이기 때문이다. 작년 롯데카드 인수전때도 하나카드 인수 유력설이 나왔지만 결국 사모펀드들끼리의 경쟁으로 끝이났다. 이번 푸르덴셜생명 인수전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KB 금융 내에서 컸다 .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물밑 경쟁이 치열했지만, 사모펀드들이 자금동원에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인수금융 시장 분위기가 냉각된 탓이 컸다. IMM PE는 우리은행과 삼성증권을 통해 인수금융을 조달하려고 했으나, 경제 불확실성이 커짐을 이유로 삼성증권이 난색을 표하면서 우리은행을 통해서만 인수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도 마찬가지였다.

      한 인수금융 관계자는 “사모펀드에 투자확약서는 끊어줬지만, 이 마저도 부담스런 상황이다”라며 “올해 상반기에는 딜을 안하는게 오히려 낫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인수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에 한계에 직면한 탓에 사모펀드들의 고민도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서 KB금융과 가격경쟁을 해야 하지만, 이 경우 지분투자(equity)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수 후 수익률에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도 사모펀드들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윤 회장이 대내외적으로 푸르덴셜생명 인수 의지를 밝힌데다 전략적투자자(SI)로서 시너지 가치를 이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이사회에서 사모펀드들과 달리 전략적 투자자는 기업 인수를 통해서 금융지주 내 계열사들과 협업을 통해 가치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모펀드들보다 웃돈을 주고 사는게 맞다는 논리를 설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거래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인수 후 시너지 가치를 감안해서 인수가격 범위를 넓게 잡았다”라며 “이전과 같았으면 외부보다는 내부 의사결정과정에서 잡음이 나왔겠지만 이번에는 인수 가격에 대한 이견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사태로 푸르덴셜생명에서 안정적인 거래 상대방을 찾은 것도 사모펀드들에는 다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인수자들에게 인수가격에 확약을 요구한 점이나, 락 박스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한 점은 푸르덴셜생명이 안정적인 거래를 원한 탓이다. 이 과정에서 KB금융은 기초 매매대금에 고정적인 이자를 지급하기로 약속하면서 사모펀드들보다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KB금융과 달리 수익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사모펀드들은 고정된 이자보다는 회사의 실적과 연동한 이자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모펀드들도 갑작스럽게 터진 코로나 사태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삼성생명 등 비교기업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하기 어려웠다는 견해다. 이번 인수전이 사실상 ‘무승부’로 끝나면서 올해 남은 딜에서 사모펀드들끼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수 밖에 없게 됐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푸르덴셜생명을 KB금융이 가져가면서 사모펀드들은 펀드를 소진할 기회를 잃게 됐다’라며 “사모펀드들로선 펀드 소진 압박이 더욱 커지게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