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청구서 부담에…은행권 대규모 투자 올스톱
입력 2020.04.14 07:00|수정 2020.04.16 07:46
    은행들, 자금부와 투자 협의하라거나 ‘관리 집중’ 지침
    코로나로 투자 시장 위축…위험 커지고 기회는 줄어
    각종 펀드 및 지원금 부담 증가…투자 여력까진 없어
    • 은행들이 대규모 투자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은행권이 직간접적으로 부담할 자금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사태가 언제 진화할 지 모르는 터라 대규모 자금이 묶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고 수익 전망을 내기 어려울 때는 현상 유지가 상책이라는 분위기다.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최근 투자 부서에 대형 투자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불요불급한 대형 거래나 해외 투자건들을 자제하되 필요한 대규모 투자건은 건건이 자금부서와 협의하라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수익을 견인하던 GIB사업부문도 올해는 확장을 자제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신한은행은 대규모 투자건은 원래부터 여러 부서가 모여 상의해왔고 당연한 절차란 입장이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신한은행이 사실상 당분간 투자를 중지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경쟁 은행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이 투자하기에 적기는 아니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투자보다는 관리가 우선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지난달 취임한 손병환 NH농협은행장도 내부적으로 관리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심사 부서도 깐깐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나은행이나 우리은행처럼 기업 위험노출액(익스포저)가 많은 곳들도 대규모 거래보다 지점에서 발굴한 소규모 거래에 신경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기업 익스포저가 적은 국민은행은 아직 별다른 지침은 내리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시장 추이를 살피자는 분위기다.

      은행들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코로나 사태로 시장이 위축된 반면, 대응에 필요한 자금 부담은 커졌기 때문이다. 전 국가적으로 코로나 대응에 분주하고 은행권의 역할론이 부각하고 있다. 투자는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 정부가 꺼낸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증권시장안정펀드에 5대 금융지주가 부담해야 하는 돈만 10조원에 육박한다. 대부분을 은행이 책임져야 한다. 처음엔 약정액 30%만 내지만 지금 경제 환경에선 출자 약정을 꼭 채울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자본건전성을 유지하기 녹록지 않은 상황에선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규모 투자는 부담스럽다. 정부가 건전성 요건을 완화한다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차후 다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채안펀드나 증안펀드 출자 부담이 크다보니 자금부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투자 부서에서는 극단적으로 올해 아무 것도 안해도 된다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이 외에도 정책 성격 자금을 풀어야 한다. 금융위원장이 나서 IMF 외환위기 당시 금융권을 도와준 국민들에게 보답할 기회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달부터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시중은행 초저금리 이차보전 대출’이 시행 중이다. 우리 소재·부품·장비기업 지원대출(우리은행), 위드론 수출금융(하나은행), 코로나 지원 목적 ESG 채권 발행(국민은행) 등 각 은행별 움직임도 있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곳에 저리, 장기로 빌려주는 사업들이라 회수 가능성이나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2월 7일부터 지난달까지 시중은행이 소상공인·중소기업에 10조4000억원 규모 금융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작년부터 이런 저런 사건에 얽히며 신경 써야할 우발적 부담도 많다. 라임자산운용 상품 판매 은행들은 소송 부담이 크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S, DLF) 손실을 피해자에 배상했다.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분쟁조정안에 따른 배상 부담도 현실화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은행들이 투자에 나서봐야 득볼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일반 기업들처럼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시장을 관망하겠다는 분위기다.

      국내에선 한때 유가증권시장 지수가 15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최근 주가는 회복세지만 추가 충격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곧바로 시가가 등락하는 상장주 투자는 쉽지 않다. 다음 펀딩 시리즈까지 버틸 현금이 있는 비상장 벤처기업 정도가 아니면 돈을 새로 태우기 어렵다는 평가다. 은행은 출자전환이나 투자 지분의 주가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팔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실무자들은 투자 검토보다는 이를 유예하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다. 대형 M&A가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해외 투자는 더욱 쉽지 않다. 미국 셰일오일·가스 기업의 파산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자산에 투자한 은행들은 영향 파악에 분주했다. 해외 투자는 발굴부터 집행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린다. 미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사실상 올해는 신규 투자가 물건너 갔다는 시각이 많다. 달러는 여전히 귀하고 조달 부담도 크다. 비용을 떠나 외화 ‘조달 라인’이라도 잡고 있으면 사정이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른 시중은행 투자 업무 관계자는 “시장이 얼어붙었고 어느 은행 할 것 없이 소상공인 등 어려운 곳에 먼저 지원해야 하니 큰 거래는 미뤘다가 하라는 분위기가 있다”면서도 “나중에 투자 성과가 미진했다고 질책받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