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2017년보다 비싸진 'K바이오'
입력 2020.04.23 07:00|수정 2020.04.24 10:16
    지난해 잇딴 임상실패, 코로나19가 '면죄부' 줬다
    임상 리스크 여전한데다 틈새시장 집중 환경도 안 변해
    우호적 수치ㆍ기대감이 실적에 반영되려면 시간 필요
    • 2015년, 2017년에 이어 2020년이다. 제약ㆍ바이오주에 뭉칫돈이 몰리며 바이오가 또 다시 증시 주도주로 자리매김했다. 부동산을 떠나 흘러들어온 개인들의 막대한 유동성이 대거 바이오로 자리를 옮기며 벌어진 일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국내 바이오 업계에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다. 일부 희망적 수치가 보이긴 하지만, 국내 바이오의 실질이 이전과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또 다시 '거품붕괴'의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현재 국내 주요 상장 바이오기업의 평균 주가순이익비율(PER)은 이미 2017년 하반기를 뛰어넘었다. 당시보다 더 비싼 밸류에이션(가치척도)을 적용받고 있다는 소리다.

    • 국내 제약ㆍ바이오ㆍ헬스케어 대표지수인 KRX300 헬스케어 지수는 최근 2700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19일 저점에서 45% 반등한 것으로, 코스피 지수 반등폭의 1.5배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연초 2400선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10% 이상 상승한 상태다.

      KRX300 헬스케어 지수 소속 종목들의 상장 시가총액은 약 118조원으로, 연초 이후 15조원 증가했다. 이들 종목의 현재 평균 PER은 268배에 이른다. 코스닥을 중심으로 코스닥 바이오 붐이 일었던 2017년말 코스닥150 생명과학 지수의 평균 PER이 120배 안팎이었다.

      국내 바이오 상장사들은 최근 2년간 엄혹한 시기를 겪었다. 신약 기대감이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거품이 빠졌다. 신라젠ㆍ티슈진ㆍ헬릭스미스 등 기대를 모았던 대장주들의 신약 임상결과가 신통치 않으며 발생한 일이었다. 기술수출 계약 해지도 잇따랐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올해 5~6종류의 신약 및 바이오시밀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대부분 일정이 하반기에 몰려있는데다 결과를 속단하기도 어렵다. 임상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말이다. 자본력의 한계로 경제성이 부족해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이 건드리지 않는 틈새시장만 공략하고 있는 추세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바이오시밀러 역시 유럽시장의 램시마같은 시장 선점이 쉽지 않다는 데이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출시 3년을 맞이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랜플렉시스는 여전히 미국 시장 점유율이 4.7%에 그치고 있다. 출시 4개월차를 맞이한 셀트리온의 트룩시마는 점유율 상승 추이가 벌써 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 바이오주의 주가가 오르는 건 결국 자금 쏠림으로 인한 유동성 장세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바이오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부풀었고, 진단키트주를 위시해 폭락장에서 대거 수익을 낸 사례가 나오며 투자자들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언제 바이오에 다시 투자해야 하나 대기하던 자금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임상 실패, 기대 이하의 실적 등 투자자들의 투심이 얼어붙기 전까진 자금이 바이오 업종 내 순환매를 거치며 당분간 시장 수익률 이상의 결과를 끌어낼 듯 하다"고 말했다.

    • 눈에 띄는 데이터도 있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8조8000억원으로 2018년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이오 붐에 불을 지핀 2015년 6조8000억원도 넘어서는 수치다. 유럽 및 미국 의약당국의 승인 건수도 5건으로 바이오 붐이 일었던 2017년의 6건 수준으로 다시 올라섰다.

      문제는 이런 우호적인 수치들이 실제 실적으로 반영될 수 있느냐다. 2015년 한미약품의 역대급 기술 수출은 2017~2019년 대규모 계약 해지로 되돌아오며 바이오 업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올해 승인을 기대 중인 신약 및 바이오시밀러들이 승인을 받는다 해도 사실상 독점적 지위의 신약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에 얼마나 안착할 수 있을지도 여전히 미지수의 영역이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특히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쏠림 현상이 강해 '베스트 시나리오'를 미리 주가에 반영해두는 경향이 강하다"며 "2018년 하반기에 그랬듯 쏠림이 극대화된 시기에 뒤늦게 올라타는 투자자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