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고비 넘긴 아시아나항공 M&A, 채권단 출자전환 여부가 화두로
입력 2020.04.24 07:00|수정 2020.04.27 10:09
    국책은행 1.7兆 유동성 지원하지만 손실 부담은 여전
    손실 누적에 자본잠식 가속화…채권단 출자전환 쟁점으로
    출자전환 범위·감자 여부 등 변수…채권단 “요청시 검토”
    • 아시아나항공이 급한 유동성 위기는 넘기게 됐지만 M&A 성사를 낙관하기엔 이르다. 당장의 부도를 면했을 뿐 회사의 자본 가치가 거의 없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수자 입장에선 자본 결손을 보완하기 위해 채권단의 출자전환 나아가 감자 문제도 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21일 각각 여신위원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 규모 자금을 새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차입금 만기 대응이나 리스료 지급 등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활용할 수 있는 마이너스통장과 유사한 형태다. 국책은행은 기간산업 지원 및 아시아나항공 M&A 성공을 위함이라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만 2조원대 빚을 갚아야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자금 마련에 애를 먹었다. 작년 국책은행의 지원 자금은 모두 썼고 증권사들에도 단기 자금을 빌렸다. 매월 고정비만 수천억원에 달하는데, 무급 휴직으로 아낄 수 있는 돈은 많아야 300억원 수준이다. 다음달이면 현금이 바닥나 매달 100억~400억원씩 만기가 돌아오는 항공운임채권 유동화증권(ABS) 대응도 쉽지 않았다.

      국책은행의 지원으로 당장의 부도 위험은 면하게 됐지만 회사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전의 빚을 갚기 위해 새로 빚을 일으키는 형태라 재무상황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증자 후 부채비율을 300%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안은 이미 물건너 갔다. 적자는 계속 쌓이며 회사의 내재 가치는 점점 줄고 있다.

    •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업황 악화와 각종 비용 증가로 817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부분 자본잠식에 들어갔다. 올해는 코로나에 여객 수요가 급감하며 손실이 누적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 조단위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연말로 갈수록 아시아나항공이 완전 자본잠식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환차손 문제까지 겹치면서 그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완전 자본잠식은 상장폐지 사유인데, 아시아나항공 M&A에선 상장폐지가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MAE)’의 한 예다. 그 하자를 치유하지 못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물론 직전 사업연도 보고서가 기준이니 당장 올해 상장폐지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쓰려던 돈을 결손을 메꾸는 데 써야하는 인수자 입장에선 부담이 적지 않다.

      인수자로선 자본가치가 사라진 회사에 돈을 넣어야 하는 형국이다. 매각자에 아시아나항공 자본금 확충 방안을 더 요구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HDC현대산업개발이 현금창출력이 탄탄하다지만 아시아나항공에 돈을 들이 붓다간 부실 위험이 전이될 수 있다. 우군인 미래에셋대우는 수익률을 보장받지만 보장 주체가 위험해지면 회수 부담이 커진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의사 결정에 종속돼 있는 미래에셋대우의 이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수자들도 올해까지는 영업 부진을 예상했다. M&A 계약 때와 비슷한 자본 수준은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완전 자본잠식은 아니어야 돈을 넣을 수 있는 것 아니냔 분위기도 있다. 채권단 지원으로 인수하려던 회사가 살아남은 것은 반갑지만, 그만큼 피인수 회사의 차입금이 늘어난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M&A가 되지 않으면 자본잠식, 상장폐지 수순이라 강한 목소리를 낼 만하다.

      현 상황에선 국책은행들의 영구 전환사채(CB)나 차입금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안이 거론된다. 당초 출자전환은 다소 극단적인 수단이란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항공산업 붕괴 우려가 커지면서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카드가 됐다. 세계 각국이 항공업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고, 우리 정부도 뒤늦게 대열에 동참했다. 채권단에서도 M&A 후는 인수자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엔 기류가 바뀌는 분위기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기저질환이 있던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 직격탄까지 맞았기 때문에 일단은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채권단의 출자전환 안은 아직 논의하지 않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에서 요청해온다면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권단이 출자전환에 나선다 해도 난관은 많다.

      거래 종결까지 발생하는 자본 결손이 어느 수준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상반기까지 손실 규모가 확대한다면 CB를 자본으로 전환한다 해도 자본금을 0으로 유지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인수자는 이론적으로는 자본가치가 없는 주식은 감자하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지만, 채권단은 주식을 가져가야 명분이 선다. 이런 고민은 기존 대출을 자본 전환해줄 때도 공히 적용된다. 개인투자자들이 잔뜩 몰린 상장사 주식을 어디까지 감자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있다.

      HDC현대산업개발로선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인수를 서두를 이유가 많지 않다. 반면 채권단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대규모 자금 지원의 터널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거래의 핵심 변수이자 선결 과제인 중국의 기업결합 승인이 예상보다 일찍 났다. 기본적으로 계약 체결일(작년 12월 27일)로부터 6개월안에 거래를 마쳐야 한다. 채권단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조건 변경 협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M&A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 일단 유동성 위기는 넘겼지만 HDC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선 여전히 불확실성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 3~4주가 거래 성사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