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법 개정 이후 삼성생명 활용도 떨어질 듯
그룹 중추서 멀어진 삼성생명·카드·증권
전자 지배력 확보에 삼성물산은 현금 마련 절실
비주력 계열사·금융사 매각 가능성 탄력 받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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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준법(遵法)이 삼성의 문화로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룹 내 삼성물산의 역할론이 다시 대두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기 때문에 이재용 시대의 삼성에선 어떤 방식으로든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그룹 주력인 삼성전자를 오너 일가가 어떤 방식으로 ‘소유’하느냐다. 일단 현행법 또는 앞으로 바뀌게 될 정부 규제를 고려하면 금융회사를 활용하는 방안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삼성 금융회사들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점차 작아질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한다면,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금융사 처리 방안이 수면 위로 재차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오너가(家)→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요약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을 제외한 오너 일가는 삼성전자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대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활용해 삼성전자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이건희 회장이기 때문에 이 같은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에 대한 승계방식 마련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을 낮추는 방안 등이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과는 무관하게 이 부회장 또는 이 부회장의 후대(後代)가 그룹을 오롯이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게 관건이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는 약 13조원으로 상속세율을 고려하면 오너 일가는 약 6조원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오너 일가가 직접 삼성전자 지분율을 늘려 지배하는 것은 현실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다. 상당한 현금이 필요할 뿐더러 6% 남짓의 직접 보유 지분만으론 절대적인 영향력 행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등 기존 대주주를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한 시나리오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이지만,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지분율을 현저하게 낮춰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던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소유한 계열사 주식을 시장 가격으로 평가하고, 보험사 자산의 3%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주식을 처분해야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해당법안은 과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법안이다. 21대 국회에서 재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해당 법안이 새 국회에서 통과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24조원어치 가운데 15조원 이상을 매각해야 한다. 매각이 완료되면 삼성전자 지분율은 3% 아래로 떨어져 더 이상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룹 양대 축인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를 짜기 어려워진 상황에 몰리면서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삼성물산에 주목하고 있다. 오너 일가는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율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 부회장이 ‘준법’을 강조한 탓에 현행 금산분리법안, 공정거래법 등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과거엔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지주사 설립, 이를 통한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중간지주사 설립과 관련한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면서, 해당 논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삼성물산이 분할해 지주회사로 올라서는 모습도 당장은 예견하기 어렵다. 21대 국회에서는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보유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삼성전자 지분율을 30%까지 늘려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가능한 시나리오는 거의 모두 제시됐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오너의 자금 소요를 최소화하는 구조 개편보단, 작은 잡음이라도 발생하지 않게 진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문제는 돈이다. 지난해 말 삼성물산의 보유현금은 9100억원으로, 15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을 사오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회사 각 사업부의 현금창출력도 상당히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 수십조원의 현금을 벌어들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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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전자’의 연결고리가 단단해야 한다는 명제를 고려하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지배력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 삼성물산은 ▲보유 지분 매각 ▲사업부 매각 ▲비핵심 사업정리 ▲지분 교환 등을 통해 현금을 마련하는 작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물산 43%, 삼성전자 32%) 지분의 활용법도 삼성물산 입장에선 고민할 수 있다. 그룹 내에서 삼성전자만 넉넉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곳간의 활용 여부가 지배구조 개편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삼성생명이 재원 마련의 매개체가 될지도 관심이다.
삼성생명은 올들어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 시가총액은 10조원 수준을 하회하지만 지난해까지만해도 20조원 이상을 유지했다. 이를 감안하면 이건희 회장(20.8%)과 삼성물산(19.8%)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의 단순 시장가치는 10조원 이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덩치가 가장 큰 삼성생명을 제외하고 자회사인 삼성카드와 삼성증권의 매각 가능성은 끊임없이 거론돼 왔다.
삼성생명은 과거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전량을 인수했고, 같은해 삼성화재가 보유한 지분까지 인수하면서 지분 72%를 보유한 삼성카드 최대주주가 됐다. 해당 작업이 진행되던 2016년, 삼성그룹이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왔지만, 현재 상황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와 제일모직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했던 삼성카드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었으나, 2011년 대주주 지위를 잃은 이후부턴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룹 내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왔다. 카드 산업은 정부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대형사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 MBK파트너스가 롯데카드를 인수하면서 카드 산업 재편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비은행 계열을 확장하려는 금융지주사들의 움직임과 유동성이 넘치는 사모펀드(PEF)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잠재 매수자도 많을 수 있다.
삼성증권도 잠재 매물로 거론되는 계열사 중 하나다. 증권업 전반에 걸친 실적 부진을 차치하더라도, 지난해엔 일명 ‘유령주식 배당사고’로 영업정지 제재를 받으며 그룹에 상당한 평판 리스크를 안겼다. 그래도 초대형 투자은행(IB) 라이선스를 확보했고, 자산관리 측면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많다는 점은 매수 희망자들이 눈여겨 보는 부분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지난 2015년에 KB금융그룹과 카드·증권 등을 묶어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수차례 매각설이 거론됐는데, 삼성그룹은 번번이 매각 가능성을 부인해 왔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그룹에서 당장 금융사 처리 방안에 대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지배구조 개편 이후에 금융 계열사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각을 통한 현금화 전략도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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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