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금융권…정부 눈치에도 인력 감축 돌입
입력 2020.05.21 07:00|수정 2020.05.20 16:41
    보험사 필두로 구조조정 움직임
    희망퇴직·점포 줄이며 해법 모색
    • 실물경기 악화 등 금융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력감축 등 비용절감 필요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정부에서 인위적인 인력감축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정부눈치에 대외적으론 쉬쉬하면서 급한 곳부터 인력 감축 및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희망퇴직을 비롯한 인력구조조정 바람이 전 금융권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일단 투자자들의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금융지주의 시총이 큰 폭으로 꺾였다. 타 업종에 비해 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점포축소, 인력감축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보험사들이 가장 먼저 인력감축에 칼을 들었다. 현대해상, 한화손보, 악사손보 등이 희망퇴직을 단행한다. 현대해상은 이달 11일부터 2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한화손해보험은 근속연수 10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이달 15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악사손해보험도 전현직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저금리 장기화, 치솟는 손해율 등 경영여건이 어려워지면서 보험사들이 인력감축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에선 정부에서 인력감축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그만큼 경영여건이 힘들다는 뜻이란 설명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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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각보다 비용절감 효과가 크지 않고, 정부에서 나서서 희망퇴직을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보험사가 인력감축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현재 상황이 절박하단 의미다”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IB부서를 중심으로 인력감축이 일어나고 있다. 초대형 IB를 표방하며 대규모 인력을 뽑아놨지만, 최근 자기자본을 활용한 투자가 위축되면서 관련 인력들의 감축이 일어나고 있다. 증권사의 특성상 계약직이 많다 보니 이들을 대상으로 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란 전망이다.

      운용사들의 상황도 증권사와 다르지 않다. 라임사태 등으로 사모펀드 시장이 무너진데다,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해외·대체 투자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들어섰다. 그간 해외·대체 인력을 늘려온 운영사로선 그 인력을 지속적으로 꾸려가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증권사 IB 부문과 마찬가지로 운용사들의 인력 감소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카드사들의 상황도 힘들다. 정부의 수수료 인하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의 실적저하가 최근 몇 년동안 이어져왔다. 지난해 8개 전업 카드사의 순이익은 1조6463억원으로 전년 대비 5.3%가 감소했다. 이런 탓에 카드사들은 그간 꾸준힌 선제적 희망퇴직 등을 실시하고, 영업점을 줄였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아직까진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정부의 요구에 맞춰 채용을 유지하거나 늘릴 상황은 아니다. 금리하락에 따른 순이자마진(NIM) 감소 속에서 코로나 사태 대응 등을 이유로 소상공인 지원 업무 부담 등이 늘어났다. 국민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은 상반기 지점 및 지역본부 핵심성과지표(KPI)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등 영업환경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이 올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인력감축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다. 최근 몇 년 동안 채용규모를 확대했던 것도 부담요인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선 국책은행들이 정부눈치에 올해 상반기 채용에 앞장서고 있다. 산업은행은 상반기 50명 내외에서 채용을 준비하고 있으며,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도 채용 프로세스 진행을 준비하고 있다. 시중은행들도 아직까지 채용규모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작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채용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 현재 상황에서 인력을 늘릴 이유는 딱히 없다”라며 “NIM이 줄어드는 등 실적저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력감축에 나서야 하지만 정부 눈치로 인해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시중은행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를 대비한 플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리하락에 따른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그 중 하나로 인력감축 및 점포축소를 계획하고 있다. 드러내 놓고 이를 단행하기는 어렵더라도 실적악화 등 대외적인 명분을 만들어서 이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를 필두로 증권, 카드, 운용사 그리고 은행까지도 인력감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숫자로 어려움이 드러나면 이를 이유로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