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 졸라매는 글로벌 기업들…삼성전자·현대차는 주주환원 딜레마
입력 2020.06.09 07:00|수정 2020.06.11 09:34
    대규모 투자·반도체 업황 부담이지만
    삼성전자 분기배당 기조 유지
    “국민주 거듭난 삼성전자, 배당정책 줄이긴 어려울 듯”
    최악의 업황 속 현대차 중기배당 규모도 주목
    • 글로벌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또는 정부의 압박에 배당을 축소하거나 감축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대규모 주주환원책을 공언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삼성전자 사정은 다르다. 국민주로 거듭난 지 불과 2년, 그리고 그룹에 가장 큰 이슈인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즉 기업의 주머니 사정만 생각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지난해 배당성향을 늘린 덕에 외풍(外風)을 막아낼 수 있었던 현대자동차도 주주환원책을 줄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주배당을 중단하거나 감축하는 추세는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회사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은 배당 수익률이 약 10%에 달할 정도로 배당성향이 강한 기업이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타격을 입은 로열더치셸은 지난달 말 주주배당 규모를 60%이상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회사가 배당을 줄인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배당축소 분위기는▲항공기 제조사 보잉(Boeing) ▲미국 1위 항공사 델타(Delta) ▲글로벌 4위 화장품 제조업체 에스티로더(Esteelauder) ▲스포츠브랜드 아디다스(Adidas) ▲자동차 메이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Ford) ▲글로벌 호텔 체인 힐튼(Hilton)과 메리어트(Marriot) ▲미국 의류기업 갭(Gap) 등 업종 대부분에 걸쳐있다.

      영국중앙은행(BOE)은 본토에 본사를 둔 대형 은행들에 주주배당과 보너스 지급을 ‘보수적’으로 할 것을 주문했다. ‘권고’라는 형식을 띄었지만 불이행시 BOE가 감독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강제 명령’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HSBC ▲RBS ▲로이즈(Lloyds)를 포함한 영국의 주요 은행들은 배당과 보너스 지급을 포기했다.

      미국 투자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3월, 배당 취소를 발표한 기업은 전세계 약 580곳에 달했다. 코로나 확산이 지속하면서 해당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 포함한 기업들 가운데 약 40%가 올 연말까지 배당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국내 시가총액 1위, 코스피의 3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도 어김없이 분기배당을 실시했다. 보통주 1주당 354원, 시가 배당률은 0.8%로 총 2조4000억원을 배당했다. 배당률은 지난해와 같았다.

      삼성전자의 현금 자산은 다소 여유가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래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2030년까지 투자 계획은 133조원이다. 하만(Harman) 인수 이후로 잠잠했던 신사업에 대한 대규모 M&A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수년 내 진행해야하는 그룹 내 지배구조개편의 작업에서도 적지 않은 자금 소요가 발생할 수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은 시장의 우려에 비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코로나의 여파가 고스란히 반영될 2분기 실적에 대해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D램가격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반도체 업황이 다소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가격 불안정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특히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모바일과 가전 분야의 회복세는 예측이 어렵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삼성전자의 주주환원책은 당분간은 유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18년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이후 회사 주주의 수는 과거에 비해 5.7배가 늘었다. 주식 거래량은 75%가량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코로나 사태에서 ‘동학개미운동’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개인투자자들의 폭발적인 투자 바람은 실적 전망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매분기 꼬박꼬박 지급되는 배당도 한몫 했다. 지난 2017년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잉여현금흐름의 50%를 환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배당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결산배당을 제외한 전체 상장사들의 배당금에서 삼성전자의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77%에 달했다.

      삼성전자가 국민주로 거듭나면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소 힘이 실린 부분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전쟁, 그리고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적극적인 대내외 행보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들끌었던 여론을 다소 잦아들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국민주로 각광받고 있는 상황이 이 부회장 재판에 미칠 긍정적인 요인을 잘 알고 있는 삼성전자가 배당을 줄이는 무리수를 두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업이 꾸준히 유지된다면 무리가 없겠지만 대규모 투자 계획과 불투명한 업황 속에서 주주환원책 확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동주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Elliot management)와의 대전에서 승리한 현대차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분기배당을 실시하진 않지만 곧 중간 배당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엘리엇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나름 현실적인 주주환원책을 내세웠다.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률에는 못미쳤으나 과거 보수적인 배당 성향을 획기적으로 바꿨고 이를 통해 우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외풍이 사라진 이후 그룹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투자자들의 한번 올라간 기대감은 줄어들기 쉽지 않다. 지배구조 개편이란 가장 큰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은 현대차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상황은 여의치 않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침체는 이미 시작됐다. 자동차 시장의 소비 심리가 살아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당분간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부진할 것이란 전망은 이미 기정사실화했다. 앞으로의 자금 소요가 크게 발생한다는 점이 큰 부담이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기술확보를 위한 M&A는 필수적이다. 지배구조 개편과 GBC 건립을 위한 지출도 불가피하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 우선주의의 확산 ▲행동주의펀드의 득세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등으로 대기업들이 최근 수년간 주주환원책을 크게 늘려왔다"며 “대규모 환원정책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양호한 사업 실적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하지만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들이 현재 상황에서 친주주정책을 축소하는 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