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 이후 제자리 찾는 발행시장
“기대수익 보단 안전성에 투자” 한 목소리
“기업이 말하는 '미래' 보다 '과거'에 주목”
-
국내 증시는 코로나 사태 직전, 그 이상을 향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강한 매수세가 몰렸고 산업별 또는 기업별 단일 이벤트에 주가가 요동치는 유동성 장세가 이어졌다. 하반기 장미빛 전망 위기설이 공존하는 현재,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 그리고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메자닌 투자 운용사 대표 3인(선형렬 에이원자산운용 대표, 박세연 수성자산운용 대표, 박지홍 GVA 자산운용 대표)을 만났다.
각기 다른 고객군을 확보해 서로 다른 전략을 추구하고 있지만 “시황에 대한 전망, 종목에 대한 예측은 중요치 않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썰물이 빠졌을 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는 워렌버핏의 말처럼, 라임사태의 여파가 서서히 걷혀가는 시점에서 우후죽순 늘어난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진짜 실력이 드러날 것이란 기대감도 나타냈다.
◇ 국내 증시의 회복세가 굉장히 빠르다. 바이오·배터리 등 증시 상승을 이끈 주도주들의 전망은 어떠한가.
박지홍 GVA자산운용 대표=바이오·2차전지의 업사이드는 굉장히 클 수 있지만 반대로 다운사이드도 상당히 클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성장주다보니 안전 마진이 없는 종목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시장은 항상 후행한다. 섹터별 쏠림 현상도 있다. 벤치마크(BM)를 추종하는 펀드라면 큰 흐름을 외면하긴 어렵다. 최근은 상당히 강한 순환매 장세였다. 우리는 아직까지 소외된 섹터와 종목에 집중할 계획이다.
박세연 수성자산운용 대표=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강하다. 사실 거시적인 변수를 예측해 투자 전략을 짜는 것을 지양한다. 시황을 예측해 수익모델을 가져가는 것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우리 회사는 투자섹터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바이오 투자는 보통주로 투자한다면 한 종목도 투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메자닌을 비롯한 하방이 막혀있는 방식으로는 투자가 충분히 가능하다.
선형렬 에이원자산운용 대표= 펀드매니저가 시장을 전망하고 미래에 수익이 얼마나 날 것으로 예측해 투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성장주를 비롯해 한 펀드에 최대한 다양한 종목을 넣어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라임사태 이후 많은 운용사들이 힘든시기를 겪었다.
선형렬 대표=지난해 9월부터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최근 들어서 꾸준히 수익을 낸 운용사들을 중심으로 펀드레이징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우리 회사는 개인투자자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최근엔 기관들을 중심으로 펀드 설정 요청이 늘어나는 추세다.
박세연 대표=상황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바닥에서 회복하는 수준이다. 일부 회사들이 운용한 메자닌 상품에서 사고가 나면서 시장의 인식이 안좋아지긴 했는데 최근엔 핵심 회사 몇몇을 중심으로 옥석가리기가 시작됐다. 현재는 블라인드 펀드보단 투자처가 명확한 프로젝트 펀드의 자금모집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오랜 기간 자산을 맡겼던 일임자산 고객 대상의 영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빅지홍 대표=펀드레이징이 아주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회복세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75%가 기관투자가일 정도로 기관의 비중이 높다. 해당 사건 이후로 일부 환매가 있긴 했으나 오히려 증액한 케이스도 있다. 과거의 사태는 투자하지 말아야 할 종목, 그리고 레버리지를 통한 공격적인 투자가 원인이었다. 개방형 펀드의 문제점도 있었다. 결국 종합적인 관리의 문제인데 최근엔 오랜 레코드를 가진 운용사들을 중심으로 기관투자가들이 다시 모이는 추세다.
◇ ELB 발행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 기업들이 직접 조달시장에 나설 유인이 적어진 것으로 보는가.
박세연 대표=기업의 자금조달 수요는 매년 있다. 모든 것은 수급으로 결정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전 메자닌 발행 조건이 상당히 발행사에 유리했다면, 투자시장이 다소 위축됐다보니 오히려 투자자의 조건이 유리해진 측면도 있다.
선형렬 대표=메자닌 발행액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9조원을 상회했다. 올해 현재까지는 약 3조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연말까지 예상하기론 약 7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시장이 위축됐다고 보긴 어렵다.
◇ 롱-숏(Long-Short), 채권(Fixed income) 등 다양한 투자방식과 비교해 메자닌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유를 꼽자면.
선형렬 대표=과거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가 닥쳤을 때 설정된 펀드의 수익률이 월등히 좋다. 이는 시장의 변동성이 클수록 메자닌의 수익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주가(지수)가 떨어져도 리픽싱(가격재조정) 조항이 있다. 투자시장은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발행 시장에 뛰어들어야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 유통물은 리스크가 크다. 발행 시장에서 기준을 정해놓고 투자 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선점해서 투자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박세연 대표=예를 들어 주식을 1만원에 투자했는데 7000원까지 떨어졌다가 회복한다면 본전 수준에 불과하다. 메자닌의 경우 7000원에 리픽싱돼 다시 회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코로나 국면이 대표적이다.
◇ 투자회사를 선별하는 게 가장 중요해 보인다.
박지홍 대표=투자 회사의 대주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과거 대주주가 투자조합인 회사에 투자를 검토하기도 했었는데 조합 구성원을 밝히지 않았다. 주가가 올라 잘될 때는 분명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안될 때는 주인 없는 집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회사들도 발행이 상당히 많다. 주요 권역 프라이빗뱅커(PB)들을 통해 프로젝트성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관점에선 상당히 위험한 투자다.
20년간 책임경영을 하던 회사의 대표가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지쳐버리는 사례들은 컨트롤하기 어려운 위험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협상과정에서 투자자들이 태그얼롱(동반매도요청권)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회사에 태그얼롱을 요청했는데 대주주가 받아들이지 않고 추후에 회사를 매각하는 사례도 있었다.
박세연 대표=메자닌의 본질은 채권이다. 채권을 투자하는 시작에서 접근하는 게 맞다. 상장회사가 성장 사업군이 아니더라도 디폴트나기는 쉽지 않다. 회사가 디폴트나는 경우는 대부분 오너리스크 때문이다. 횡령과 배임 또는 M&A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다. 회사의 연혁을 따지는 이유다. 최대주주 오너의 이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숫자로 나타나진 않는다. 짧게나마 반드시 오너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투자를 검토한다.
선형렬 대표=기업의 밸류에이션이란 측면보단 안전성 검토가 투자 검토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메자닌은 하방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하방마저 뚫리면 디폴트가 난다. 최초 검토 단계부터 디폴트 가능성을 검토한다. 주인이 자주 바뀌는 회사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최대주주의 이력, 회사의 성장과정 등 과거를 주로 조사한다. 기업은 당연히 과거보단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반복적으로 이뤄진 행태들, 예를 들어 잦은 대주주의 지분 매각 또는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매출채권의 변동 등 제무제표상 특이점에 주목하는 식이다.
◇ 운용사가 투자처를 고민하는 것처럼 일반 투자자들이 운용사를 선택하는 일도 상당히 어렵다.
박세연 대표=개인이 직접 투자하려고 종목을 고르는 것만큼 자산을 대신 투자해 줄 운용사를 고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진짜 잘하는 운용사를 골라내는 게 어렵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리스크 관리나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체계)가 어디가 잘 갖춰졌는지 보는 게 중요하다. 200곳이 넘는 운용사들 대부분이 영세하다. 컴플라이언스나 리스크 관리에서 경험이나 수준이 올라와 있지 않다.
박지홍 대표=제일 중요한 건 역시 과거 이력(레코드)이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잘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포부일 뿐이지 경험이 없는 것이다. 메자닌 시장은 특이하게 운용자산(AUM)이 가장 중요한 이슈다. 시장의 몇몇 탑티어에 좋은 딜이 몰린다. 그간 쌓아온 네트워킹이 중요하고, 자본력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너무 작아도 안 되고 너무 커도 딜소싱이 힘들기 때문에 좋지 않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자금을 맡길 때 진행하는 실사과정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깐깐하다. 6개월 정도를 지켜보기도 하고, 최종 의사결정 할 때에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한국에 오기도 한다. 그렇게 꼼꼼하게 실사를 진행한 후에 5년이 넘게 주식형 펀드에 장기투자를 맡긴 적도 있다.
선형렬 대표=일부 운용사들은 손실난 펀드는 공개하지 않는다. 투자자들도 질문을 해야한다. 투자하려는 펀드와 유사한 성격의 과거 펀드의 수익률, 손실 발생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결국 과거의 레코드가 가장 중요하다. 썰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6월 1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