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순환매 …펀드매니저들 ”시장 따라잡기 힘드네”
입력 2020.06.18 07:00|수정 2020.06.17 14:37
    1850선까진 기술적 반등
    5월 들어선 기대감 반영된 언택트·헬스케어 주도
    최근 소외주 위주 키맞추기 지속
    “폭탄돌리기 예측 불가능 장세에 대응도 불가능”
    • 3월 코스피가 최저점을 찍은 이후 국내 증시를 이끈 원동력은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순환매의 힘이었다. 기업들의 펀더멘털은 흔들렸지만 주가는 반대로 ‘고공행진’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상승장의 지속’ 또는 ‘하락장의 시작’ 등 증시에 대한 예측은 이전보다 무게감이 떨어졌다. 단일 이벤트에 개인들의 매수세가 집중돼 주식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주식운용역들은 “상승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피로감을 토로한다.

      ‘기계→건설→IT→반도체→금융→자동차→철강→조선’ 등 코스피 상승을 이끌어온 업종은 최근 들어 손바뀜이 빨라졌다. 3월19일(1457.64포인트) 코스피가 최저점을 찍고 1850선까지는 낙폭이 컸던 보험·기계·운송·건설 등의 업종이 기술적 반등을 이끌었다. 이후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큰 IT·소프트웨어·반도체·교육 등 언택트 관련 종목들이 지수상승을 이끌었다. 코스닥은 진단키트·치료제·백신 등에 대한 기대감이 퍼진 바이오 섹터가 주도했다. 최근 들어선 키맞추기 순환매가 시작됐다. 업황이 최악으로 치달은 조선·자동차·에너지 등도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수혜를 입은 업종 중 하나였다.

      이달 초에는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6% 이상의 급등세를 보였고, 삼성SDI와 LG화학 등 배터리 관련 대장주들도 1거래일만에 10% 이상의 주가 상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 이처럼 가벼운 움직임을 보이면서 몸집이 비교적 가벼운 코스닥 기업들의 상한가는 예삿일이 됐다.

      증시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지만 사실 현장에서 펀드매니저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여느때보다 크다. 폭탄돌리기에 가까운 순환매가 연일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 1700~1800선에서 집행되던 연기금의 증시안정자금의 유입세가 잦아들었음에도 증시 주변에 몰린 풍부한 유동성은 사그라 들지 않은 점이 원인이다. 재무제표에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기대감만으로 종목에 대한 매수세가 급격히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며 ‘예측’의 영역은 이미 벗어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자산운용사 패시브펀드 담당 매니저는 “순환매장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일이 대응하기에 벅찬 상황이다”며 “산업에 대한 전망, 종목에 대한 예상과는 별개로 수급과 이벤트만으로 주가가 출렁이는 상황에서 지수 상승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음에도 수익자들에게 매도를 권유하지 못하는 상황이됐다”고 말했다.

    • 이달 초까지만해도 액티브펀드의 수익률은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패시브)펀드의 수익률을 넘어섰다. 통상 종목별 손바뀜이 잦은 상황에서는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액티브펀드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가장 최근에는 다시 대형주 위주의 상승이 시작되면서 액티브펀드의 호황이 지속할 것이란 장미빛 전망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식과 채권, 기타 자산을 혼합해 운용하는 펀드를 운용하는 실무진들도 주가 상승의 수혜를 고스란히 누리긴 어려웠다.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채권 투자를 통한 수익률을 극대화 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주가 지수가 상승하는만큼 주식의 비중을 줄여야하기 때문에 주식-채권 혼합형 펀드 운용사들은 주식 관련 포트폴리오를 대거 정리해야 했다.

      국내 증권사 혼합형펀드 매니저는 “주가지수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지난달 말 주식 포트폴리오를 상당히 많이 정리했다”며 “현재는 지수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을 믿고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보단 리스크를 분산하는 데 좀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증시 흐름이 지속할수록 투자를 합리화하기 위한 ‘보고서 끼워맞추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순환매장이 본격화한 만큼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분석 보고서가 당일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순환매 장에서 일부 금융기관이 펀드의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리서치센터와 프로젝트 성격으로 공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시장을 떠나던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다시 매수세로 전환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을 보편화한 상황으로 여기긴 어렵다는 평가다.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12배로, 과거 최고치에 근접한만큼 지금과 같은 매수세가 지속되기란 힘들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외국계 펀드매니저들도 국내 증시의 상승에 기대감을 갖지 않아 주식 비중을 상당히 많이 줄여논 상태였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히 큰 상태다”며 “미국의 재정완화정책, 중국의 PMI 지수가 생각보다 괜찮았던 점 등 대외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아 국내 증시도 순환매 형식으로 유지되고는 있지만 조그만 변수에도 매도 심리가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