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쇼어링? 의도는 좋지만 현실은 글쎄…
입력 2020.06.18 07:00|수정 2020.06.17 12:11
    정부 정책은 과거 답습에 그쳐
    최저임금 상승 등 국내 환경 악화
    • 기업의 해외 생산기지 국내 복귀(리쇼어링)가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권이 모처럼 뜻을 모으고 애국심까지 결부되며 리쇼어링에 대한 기대는 커지는데 기업들이 화답하기엔 걸림돌이 많다. 해외 진출 이점을 포기하고 돌아오자니 국내 경영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고 정부의 유인책도 관심을 끌기에 마땅찮다. 리쇼어링이 늘더라도 정부가 바라는 일자리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코로나 사태 후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확인했다. 핵심 설비를 가까이 둬야 할 필요성은 커졌다. 코로나 국면에서 한국 제조업의 신뢰도가 높아졌으니 국내 기업의 리쇼어링을 논하기에 적기로 볼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담화를 통해 한국 기업의 유턴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고,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리쇼어링 지원 법안 발의에 적극적이다. 이참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마침 대기업들이 국내에 힘을 싣는 사례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가 확산하자 구미사업장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물량 일부를 베트남으로 돌리려했다가 계획을 백지화했다. 베트남 내 입지가 삼성 못지 않은 효성은 베트남에 첨단섬유 아라미드 생산 라인을 건립하려 했으나 울산 공장 증설로 방침을 바꿨다.

      이를 리쇼어링 러시의 서막으로 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두 사례는 엄밀히는 해외 사업장이 국내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대구·경북의 코로나가 잦아들며 이전 필요성이 줄었고, 핵심 기술을 국내에 두고자하는 전략적 판단도 있었다.

    • 정부는 오래 전부터 리쇼어링을 독려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지난 5년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연평균 십여 곳에 그친다. 대기업의 리쇼어링 사례는 작년 현대모비스가 협력사 5곳과 함께 중국 공장 일부를 철수한 후 울산에 전기차용 부품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그간의 대규모 투하 자본은 물론, 함께 따라간 협력 업체도 신경써야 한다.

      반면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강해지는 상황이다. 미국 기업인 애플마저 중국에서 생산된다는 이유로 막대한 관세 부과가 거론됐다. 큰 시장에서 활동하려면 설비도 그 안에 두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권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도 기술 보안과 공정의 효율성을 꾀하려는 것일뿐 국내 시장을 우선 고려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의 공장을 철수하면 역내 관세 절감 효과가 사라진다.

      한 그룹 안에서도 결정은 나뉜다. LG화학은 폴란드에 양극재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었으나 구미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LG전자는 구미 TV 생산라인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옮기기로 했다. 정부와 구미시의 지원을 업고 ‘구미형 일자리’를 받아들였고,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물량을 해외로 돌렸다. 철저히 실리에 따른 경영 판단을 하고 있다. 애국심 명분은 더더욱 힘을 받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돌아오려 해도 해외 사업장을 닫는 것부터 쉽지 않다. 국내 기업이 가장 많이 나가 있는 중국은 사업 철수 시 임금지급 등 근로 관계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 삼성전자는 작년 중국 스마트폰 공장을 닫으며 직원들에 퇴직금을 지급하며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철수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중국 중앙·지방 정부와 약속한 영업 기한 안에 문을 닫으려면 그 동안 받은 각종 혜택을 반납해야 한다.

      한 법무법인 중국 전문 변호사는 “중국에서 철수하려면 노동 문제가 먼저 정리돼야 하는데 낮은 임금만 보고 중국에 진출했던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야반도주 외에 답이 없다”며 “대기업도 한국 본사와의 불공정거래가 문제돼 관세에 발목잡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엔 청와대가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직원 임금 체불 사건을 지적했다. 큰 기업일수록 국가 이미지, 나아가 국가 분쟁 가능성을 고려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한국인 입국금지 조치가 불쾌하다고 삼성전자가 베트남 스마트폰 물량을 한국으로 옮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 게다가 국내 기업 환경은 악화 일로다. 최저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주52시간 근무제로 노동환경의 유연성도 떨어지고 있다. 기업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고 환경 및 안전 규제는 점차 강화하는 추세다.

      정부의 정책은 과거를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세금을 줄여주고, 땅을 우선적으로 내어주겠다는 정도다. 각종 정책 지원 규모를 합하면 수 조원이라는데 웬만한 대기업들이 공장 한 곳에 들인 돈만 해도 그 정도는 된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돌아오기만 한다면 나머지 행정적, 금전적 지원은 모두 책임지겠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국내 유턴을 권하기 어렵다. 파격적으로 지원하자니 특혜 논란이 부담스럽다.

      다른 법무법인 베트남 담당 변호사는 “기업들이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업들이 국내외 장단점을 두고 장기적으로 검토는 하겠지만 갑자기 리쇼어링 바람이 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국내 유턴이 늘더라도 정부가 바라는 일자리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섬유·의류 등 단순 제조업은 일손은 많이 필요하지만 국내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돌아올 수 있는 공장은 제조업 중에서도 완전 자동화가 가능한 일부 업종에 그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