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구심점은 결국 현대차…'빅텐트' 구상은 회의적
입력 2020.06.25 07:00|수정 2020.06.26 10:34
    지난 회동 모두 삼성·LG 측 요청 따라 성사
    7월 중 SK도 예정…현대차그룹 입지 강화
    도요타-파나소닉 JV가 위기감 고조했단 평
    사업적 실익 아직 불투명…'동맹론' 비현실적
    • 국내 2차전지 산업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구심점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2차전지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재계 총수들은 연이어 정의선 부회장을 찾고 있다. 완성차와의 협업 필요성이 커지며 조기에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되지만, 현대차 중심의 배터리 동맹체제에 대해선 회의적 평가도 나온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협업을 논의한 지 한 달여 만에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독대했다. 22일 구광모 회장과의 만남에선 양사가 추진 중인 합작법인 설립 등 현안 및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협업 논의가 오갔다는 설명이다. 두 건의 회동 모두 현대차가 아닌 삼성SDI와 LG화학 측 요청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내달 SK그룹과의 회동도 준비 중이다. 만남이 성사될 경우 정 부회장은 글로벌 기준 2차전지 메이저 3사와 협업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전방시장 통로 격인 현대차의 중요성 떄문에 자연스럽게 정 부회장 입지가 강화하고 있다는 평이다.

      2차전지 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도요타와 파나소닉의 협력 강화가 재계 내 위기감을 고조시킨 결과로 보고 있다. 양사는 지난 4월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를 중심으로 새 합작법인을 설립한 바 있다.

      도요타는 현재 전고체 관련 특허의 30% 이상을 보유해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나소닉과의 파트너십 강화는 전고체 배터리로 친환경차 부문에서 프리우스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복안이다. 파나소닉은 일본 최대 2차전지 사업자인 동시에 국내 3사의 가장 큰 경쟁사로 꼽힌다.

      국내 배터리 3사도 자체적으로 전고체 관련 기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이 전고체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3사 모두 도요타-파나소닉에 비해 양산까지 갈 길이 먼 실정이다. 이 떄문에 기술 확보 및 양산능력 검증까지 완성차 업체와의 파트너십이 화두로 떠올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장 먼저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갖춘 완성차와의 협업 없이는 양산 검증이 불가능하다"라며 "현대차의 경우 국내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이며 글로벌 기준으로도 전동화 전환이 우수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3사의 러브콜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전고체 관련 특허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 기준으로도 도요타에 이어 재무여력이 가장 탄탄하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2차전지 사업자로서는 조기에 파트너십을 구축할 유인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연이은 회동에도 사업적 실익은 아직까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친환경차 포트폴리오에 맞춰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록 전고체 전지 진입에 대한 부담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2025년까지 친환경차 발표계획을 마련한 상태다. 내년 첫 선을 보일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들어갈 물량을 두고선 올해 두 차례에 걸쳐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과 계약을 마쳤다. 2025년을 기점으로 친환경차 100만대 판매를 목표로 내세운 만큼 공급사 역시 설비투자를 이어가야 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배터리셀 업체의 증설비용은 1GWh당 평균 700억원 안팎이다.

      시장조사업체 한 관계자는 "차세대 배터리 대량생산 공정이 가시화하지는 않았지만 배터리셀 업체가 기존 라인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대차와의 협업을 통해 차세대 배터리 양산에 돌입하는 시점을 앞당길수록 기존 투자의 회수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포트폴리오 충돌로 인해 현대차그룹에 납품 전력이 없는 삼성SDI의 경우,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한정해 윈윈 전략을 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3사 중 누가 먼저 관련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차를 중심으로 배터리 3사를 포괄하는 4자동맹 등 '빅텐트' 구축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우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 문제가 마무리되기 전인 만큼 불편한 동거가 연출될 수 있다. 또한 3사의 전지 사업 내용과 전략이 상이해 같은 국가라는 공통점만을 내세워 동맹관계를 구축할 개연성은 떨어진다는 평이다.

      증권사 2차전지 담당 한 연구원은 "4개 그룹이 보유한 전고체 전지 관련 기술을 합하면 시너지가 날 거란 식의 분석은 너무 단순한 접근"이라며 "반도체 이상으로 시장규모가 커질 전망인데 경쟁 관계에 있는 3사가 핵심기술을 공동 개발·공유할 것으로 보긴 힘들다"라고 했다.

      이어 "결국 배터리 3사의 미래구상에 따라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현대차와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