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까지 바꾸고도 옵티머스 '덫'에 걸린 NH증권...판매사 책임 없다?
입력 2020.06.25 07:00|수정 2020.06.26 10:35
    옵티머스운용, 투자 자산 관련 서류 '위조'
    NH증권은 서류상 실사만 했다가 '평판 리스크' 직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 어디까지 했느냐가 관건
    • 리테일(소매) 부문 강화에 매진하던 NH투자증권이 '제 2의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꼽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 부정 투자 사태에 휘말렸다. 옵티머스운용 펀드 설정액 5300억여원 중 대부분을 NH투자증권이 판매한 까닭이다.

      NH투자증권은 고객 중심주의를 실천하겠다며 지난해 WM(자산관리)부문 성과지표(KPI)까지 뜯어고쳤다. 일률적인 판매실적 대신 고객 만족도를 고려해 현장에서 스스로 고과를 평가하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고객 감동을 통해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정영채식(式) WM 강화'의 핵심 시스템이었지만, 4000억원대 금융사고가 터지며 평판 하락에 직면하게 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옵티머스운용의 펀드 판매 잔고는 5355억여원이다. 이 중 82%인 4407억원을 NH투자증권에서 판매했다. 이 밖에 한국투자증권이 677억원, 케이프투자증권이 207억원, 대신증권이 45억원어치를 팔았다. 이번 사건에서 옵티머스운용과 더불어 NH투자증권의 이름이 주로 오르내리는 핵심 배경이다.

      옵티머스운용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는 약 800여명, 금액은 2100억원 수준이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4개 펀드 680억여원의 환매가 중단된 상황이지만, 만기가 남은 나머지 펀드도 사실상 모두 환매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옵티머스 운용의 부정 투자 및 서류 위조다. 자산의 95% 이상을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편입하겠다고 공언해놓고, 실제로는 특정 대부업체와 관련 부동산개발 사업에 돈이 들어갔다. 그리곤 정상적으로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가 이뤄진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투자자를 속였다.

      다만 비난의 화살은 NH투자증권으로도 향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이 NH투자증권 고객인 까닭이다. 지난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도 결국 판매사의 책임으로 귀결됐듯이, NH투자증권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쟁점은 NH투자증권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선관의무)를 다 했는지 여부다.

      옵티머스 펀드의 투자 구조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기관이 건설사에 공사를 발주하고, 공사비용을 매출채권으로 건설사에 지급한다. 옵티머스운용은 사모펀드를 조성해 이 매출채권을 사들인다.

      이런 구조라면 채무자가 공공기관이라 안정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옵티머스 운용은 연 수익률로 3% 안팎을 제시했다. 0%에 가까운 기준금리와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는 안정성을 생각하면 투자 매력이 낮지 않았다.

      문제는 옵티머스운용이 이렇게 모은 자금을 대부업체에 투자하고, 마치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건설사로부터 구입한 것처럼 '양수도 계약서'와 '임도 통지서'를 위조했다는 것이다. 임도 통지서는 운용사가 해당 공공기관에 '이 매출채권을 내가 샀으니 결제는 건설사가 아니라 나에게 하라'는 일종의 등기이전등록증이다.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은 이 서류들은 물론, 한국예탁결제원의 '펀드명세서'까지 모두 서류상 실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양수도 계약서와 임도 통지서가 일치하고, 해당 채권의 목록이 예탁결제원의 '펀드명세서'에도 실려있어 조작을 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NH투자증권이 해당 공공기관이나 건설사에 실제 계약서나 통지서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예탁결제원의 경우 사모펀드 운용사가 제출한 목록대로 펀드명세서를 작성할 뿐, 명세서 내역에 담긴 채권의 실존 여부를 확인할 의무는 없다. 요컨대 판매사의 실사 의지와 범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실물이나 부동산 펀드가 아닌, 사모 채권형 펀드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서류상 실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옵티머스운용의 자산만 별도의 확인 절차를 거칠 이유는 없었을 거란 의견도 존재한다.

      선관의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다소 모호한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판례로 보면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한 리스크였는가'가 판매사 보상 책임의 핵심 변수로 꼽혔다. 이번 사례에 적용하면, 옵티머스운용이 서류를 위조했을지, 그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었는지가 NH투자증권의 책임을 가를 결정적인 판단 변수가 되는 셈이다.

      법적 판단과는 별도로, NH투자증권은 평판 저하 리스크에 노출되게 됐다. DLF 사태, 라임 사태, 독일 헤리티지, 호주 부동산 등 지난해부터 잇따랐던 금융사고에서 아슬아슬하게 비켜서있던 NH투자증권이 이번 옵티머스운용 사태에서는 꼼짝없이 주인공이 된 까닭이다.

      정영채 사장을 필두로 WM을 위시한 리테일 부문에 총력을 다하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라 더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NH투자증권은 최근 2~3년간 WM부문을 확대 편제하고 전문성을 강화했다. 특히 이전까진 리테일 부문 성과지표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상품 판매 성과'를 KPI에서 빼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KPI 체제가 옵티머스운용 상품 대량 판매로 이어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현장 창구에서는 안정성이 강화된 중수익 저위험 상품이라고 판단하고 고객들에게 더 열심히 권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침체되고 주가연계증권(ELS) 인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리테일 창구가 팔만한 상품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정영채 대표가 리테일은 '주 전공'이 아닌지라 급하게 확대했다간 탈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전부터 많이 나오긴 했다"며 "사모펀드 제도 관련 미비도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는만큼, NH투자증권 입장에선 전사적으로 일부러 옵티머스운용 상품 판매를 밀어줬다는 의혹부터 벗어나는 게 급선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