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실사 제약에 부담…위험 분산 모색하는 기관투자가들
입력 2020.07.24 07:00|수정 2020.07.23 16:29
    비대면 실사로 길 찾지만 현장 실사보단 제약
    기관들, 실사 않거나 최소화할 투자 수단 강구
    대등한 해외 기관·관계 깊은 운용사와 위험 나눠
    실사 안되면 되사주는 조건으로 재매각 하기도
    • 코로나 사태 이후 기관투자가들은 비대면 실사를 통해 해외 투자에 나서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이전처럼 돌아가기 어렵다면 아예 실사를 하지 않고도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믿을만한 운용사를 다시 찾거나 동일한 선관주의 의무를 다할 해외 기관과 손을 잡고 있다. 증권사로부터 해외 물량을 받았다가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자산을 되파는 조건으로 투자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전엔 대형 해외 투자건에 100억원만 참여한 기관도 실사단의 일원으로 비행기에 오르곤 했다. 이제는 수천억원을 쓰려 해도 현지에서 자산을 살피기 어렵다. 협상은 화상회의로 대체하고, 고프로나 드론 등도 활용하지만 직접 가서 보는 것만은 못하다. 부동산에 이상한 명패를 붙이거나 계약서를 위조하면 진위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세계 각지에 사무소를 두기 어렵고, 있는 경우에도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기관들은 실사를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고도 투자를 이어갈 방안을 찾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글로벌 보험사 알리안츠 그룹과 해외 부동산 투자를 위한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 약 2조8000억원 규모의 조인트벤처(JV) 펀드를 결성해 아시아 주요 도시의 핵심 부동산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5월엔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 스위스 라이프 자산운용(SLAM)과 컨소시엄을 꾸려 포르투갈 고속도로 운영사 브리사(Brisa)의 지분 81.1%를 인수했다.

      행정공제회는 미국 2위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과 4000억원 규모 공동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은 글로벌 대체투자 시장에서도 알짜 정보가 몰려드는 기관이다. 2018년에도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과 손잡고 미국 부동산 선순위 대출에 50대 50으로 공동투자하는 등 관계를 다져왔다.

      한 기관 최고투자책임자는 “해외 유수의 기관들과 공동으로 투자를 하면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현지 실사를 맡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실사 부실과 손실에 따른 위험을 똑같이 나눠지는 기관끼리의 연합이다보니 운용사에 맡길 때보다 투자의 신의성실을 더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농협중앙회가 한국투자공사(KIC)와 손을 잡았다. 해외 사모주식에 공동 투자하는 4억달러 규모 JV를 설립하기로 했다. KIC의 해외 자산운용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기관들끼리 대등한 협력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도 관계가 다져진 해외 운용사와 손을 잡으면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국민연금은 5월에 미국의 부동산 운용사 하인스(Hines)와 함께 뉴욕 맨해튼의 원메디슨애비뉴(One Madison Avenue) 빌딩 재개발 사업 지분 49.5%를 4억5220만달러에 인수했다. 국민연금과 하인스는 2013년 독일의 지멘스 사옥을 함께 인수하는 등 오래 전부터 거래를 해왔다.

      한 국민연금 외부 자문위원은 “국민연금이 해외 운용사에 돈을 맡기기 위해선 국내에서처럼 운용사 실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지금은 쉽지 않다”며 “원래 거래가 있고 잘 아는 운용사와 투자할 때는 위험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지난 수년간 해외 부동산 투자에 심혈을 기울였고, 작년에도 열기가 이어졌다. 해외 위험노출액 증가로 작년부터 국내서 재매각(Sell down)이 어려워지던 차에 올해 코로나까지 덮쳤다. 기관 입장에선 실사를 해도 받기 어려운데 실사까지 어려워지니 더더욱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에 한 기관은 증권사로부터 해외 투자 물량을 받아주되 실사 실행을 조건으로 달았다. 1년 안에 실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위험을 확인하기 어려우니 증권사가 다시 사주는 방식이다. 증권사 입장에선 당장 위험노출액을 줄이면서 위험 현실화 시기를 늦출 수 있고, 기관은 위험을 최소화하며 해외 투자 자산을 쌓을 수 있다. 이 사례가 시장에 알려지면서 앞으로 이 같은 방식의 투자가 늘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