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인수 포기…리스크 해소에도 찝찝한 제주항공
입력 2020.07.24 07:00|수정 2020.07.27 09:44
    재무리스크 해소했지만 정부 눈밖 날까 우려
    생존 우려하는 투자자들, 유증 참여 변수
    • 제주항공이 결국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데다 실사 중 우발채무까지 발견됐기에 인수에 따른 재무리스크는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제주항공을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던 점은 깔끔하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정부 눈밖에 날까 우려하는 투자자들에겐 내달 이뤄질 유상증자 이후가 '진짜 고민'이 시작될 시점이다.

      제주항공은 진술보장의 중요한 위반 미시정 및 거래종결기한 도과로 이스타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했다. 지난해 12월 인수 의지를 밝힌 이후 7개월만에 최종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인수 강행에 따른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가 우려스러웠다는 입장이다.

      인수·합병(M&A) 과정 중 이스타항공 재무사정이 드러난 것보다 심각한 정황이 포착되며 인수 불발 가능성을 키웠다. 인수 시 제주항공도 생존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악재'가 될 거란 분석도 잇따라 제기됐다. 제주항공이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가장 몸집이 큰 대마(大馬)지만 최악의 항공업황에서 2분기 사상 최대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을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었다.

      인수 포기로 제주항공은 당장 큰 리스크 하나는 덜었다. 투자자들은 대체로 계약해지를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인수 포기는 곧 호재'라고 확신할 수만은 없다는 혼란스러움도 엿보인다. 정치권 개입이 변수가 되며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시작부터가 회사 주인이 여당 국회의원인 회사의 매각 건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이 M&A 과정에 직접 나서 제주항공에 인수를 종용해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까지 나서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거부는 사회적 지탄을 받을 전형적인 먹튀 행위"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M&A가 진행되는 동안 국토교통부로부터 노선 배분에 특혜를 받았고 1700억원의 공적 지원도 약속 받았단 주장이다. 다만 심 대표의 '먹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한 증권사 항공 담당 연구원은 "인수계약이 있었던 지난해 12월말 이후로는 코로나 영향으로 국토부 노선 배분이 없었고, 알짜 노선인 중국 노선은 계약 이전에 단독입찰로 따낸 것이라 사실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공적지원도 이스타 인수 및 유증 용도로 책정된 예산이라 제주항공을 위한 지원이 아닌 데다 집행받은 것도 아니다. 채무탕감도 아닌 대출로 정치권이 압박하는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추진 중이던 1700억원 규모 신디케이트론 지원은 계약해지로 없던 일이 됐다. 제주항공을 위한 지원이 애초 아니었단 얘기다.

      정치권의 전방위적 압박이 있었기에 제주항공이 정부 눈 밖에 나는 게 아니냐는 투자자 불안감도 확산하고 있다. 항공업은 국토교통부가 항공사 노선 배분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정부 입김이 큰 산업이다. 진에어가 20개월간 제재를 받아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웠던 만큼 규제 타격도 크다. 이 때문에 항공사들은 정부와 정치권 눈밖에 나지 않는 게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투자자들의 시선은 이제 유상증자 이후로 옮겨가고 있다. 제주항공은 내달 1700억원 규모로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증을 추진 중이다. 하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규모란 분석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항공업계 타격이 내년까지 이어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추가 유동성 유입도 필요하다. 매출의 90% 정도가 국제노선 여객수요에서 나오는데 현재로선 매출이 '0'에 가까운 데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처럼 화물로 실적을 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최악의 항공업에 베팅하려는 투자자를 찾기도 어렵다 보니 정부 지원이 절실하지만 지원금 혜택에서 제외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기존 주주들은 22일부터 신주인수권증서 권리매매가 가능해진 상황이다. 리스크는 해소됐지만 정치권 압박에 유증 이후 기대감이 다소 떨어지고 있어 유증 참여 확신이 없고, 제주항공 직원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사주 증자에 참여할지 고민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 사원이 소속된 우리사주조합엔 주식 20%(약 340억원 규모)가 우선배정돼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증 대표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 등이 최종 실권주를 전량 인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변동사항은 크지 않겠지만 이스타항공 인수 무산으로 재무 부담 경감을 기대했던 기존 주주들이 정부 눈밖에 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니 흥행여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도 회사가 올해 위기를 넘기더라도 내년엔 진짜 괜찮을지 우려가 커 우리사주조합 청약 신청을 망설이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