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더 주면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할까
입력 2020.07.28 07:00|수정 2020.07.30 09:33
    HDC, 선행조건 미충족 다시 주장하며 여론몰이
    타당한 면 있지만 그간 실사 기간도 짧지 않아
    ‘언론 보도’ 뒤로 숨기도…채권단은 불쾌한 기색
    세 달 후 힘싸움 재현 우려…장기전 의도 의구심
    •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HDC현대산업개발과 채권단의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HDC현산은 거래 종결의 선행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하며 석 달의 실사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반면 채권단은 요청에 성실히 임했음에도 HDC현산이 여론전에 나섰다며 불편한 기색이다. 그간의 협상 태도나 문제 제기 방식을 보면 시간을 더 준들 HDC현산이 인수를 완주할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 24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계약상 진술 및 보장이 중요한 면에서 진실하지 않고 거래 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을 회신했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변함이 없으며 다음달 중순부터 12주 정도 동안 재실사에 나서겠다고 제안했다. 26일엔 언론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산업은행은 24일 오후 이동걸 회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HDC현산의 입장 표명에 대해 논의하고 대책 마련을 검토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의도를 살피겠다지만 불쾌한 분위기다.

      HDC현산이 재점검을 요구한 것은 ▲아시아나항공 2019 회계연도 감사의견 부적정 ▲부채 2조8000억원 추가 인식 및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영구전환사채의 추가 발행으로 지배력 약화 예상 ▲기내식 관련 계열사 부당지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손실 문제 등이다.

      일부는 계약 체결 이후 발생한 사안들이니 타당한 면이 있다. 라임자산운용 사안의 경우 에어부산이 출자한 사모펀드 자금이 일부 감액될 수 있다는 정도의 정보만 인수자에 공개했을 뿐이다. 자금이 우회해서 아시아나항공에 유입됐다는 점은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사가 미흡했다고 여길 수도, 다툴 명분도 있다.

      다만 HDC현산이 그간 얼마나 성실한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임했으며, 앞으로 얼마나 진정성 있게 협상을 이어갈 지는 의문이다.

      HDC현산은 지난 4월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공문을 발송했으나 10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충분한 공식 자료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자사의 재협의 요청을 구실삼아 채권단이 보여주기식 거래종결 절차를 일방적으로 진행한다고 비판했다.

      채권단 입장은 전혀 다르다. 시각차는 있을 수 있지만 질의와 요구가 올때마다 충분한 답을 했다는 것이다. 거래 종결이 더 급한 쪽은 채권단인데 상대방의 요청을 허투루 넘겼을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차입금 증가나 영구채 발행 역시 파국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고, 이마저도 협상에 따라 조율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HDC현산이 다시 공개 여론전을 나선 시기는 미묘하다.

      사실 채권단은 이달 들어 아시아나항공 매각 협상을 더 이상 끌어선 안된다는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다. 이동걸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만나고 러시아 기업결합 승인도 마무리됐음에도 진척이 더뎠기 때문이다. 거래 중단이든 계속 협상이든 8월 중순까지는 결론을 내기로 가닥을 잡았다. 소득없이 더 기다렸다간 아시아나항공의 사정만 더 악화하니 HDC현산을 배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주 들어 HDC현산 측 기류가 바뀌었다. 곧 협상장에 임할 것이란 얘기가 회사 안팎에서 흘러 나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공문을 발송해 그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채권단보다 먼저 공개 여론전에 나서 명분 싸움의 우위를 점했다.

      HDC현산의 협상 자세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인수자에 끌려다니는 채권단이나, 중재자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주관사 크레디트스위스도 좋은 평가를 얻기 어렵지만 HDC현산의 협상 기술도 투박하다는 것이다.

      HDC현산이 제기한 문제 중에는 금호그룹 계열주 일가의 항공사 매입 관련 리베이트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사 오너 일가가 비행기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제조사로부터 부정한 이득을 챙기는 것 아니냔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KCGI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항공기 리베이트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아직 그런 수준까지 문제 제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아니면 말고’식 문제는 외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HDC현산은 이번 공문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이 계약 해제에 대비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 ▲금호산업이 계약 해제를 통보할 계획 등 내용이 ‘보도’됐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지난달 초 공개 입장문에선 채권단 영구채 5000억원 출자전환 등 보도가 이어져 난처한 입장이 됐다고 했다.

      사실 지적한 부분은 협상에 적극 임했으면 ‘언론 보도’에 의하지 않고도 사실 관계, 혹은 사실이 아님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입장은 언론을 활용해 충분히 알리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언론 보도를 대신 언급했다. 거래 당사자이면서도 남의 일인양 ‘유체이탈’ 화법을 쓴 모양새다.

      실사 기간을 3개월 준다고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완주할 지는 의문이다.

      계약 이후 몇몇 문제가 불거진 것은 맞지만 HDC현산의 실사 시간이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HDC현산은 1월부터 Pre-PMI, 즉 ‘사전 인수후통합’이라는 개념이 상충되는 조직을 꾸려 아시아나항공을 6개월간 샅샅이 살펴왔다. 이런 상황에 실사 자체에 3개월이 더 필요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보다는 확인된 문제를 조율하는 데 힘을 더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HDC현산이 요구한 3개월도 지금부터가 아니라 8월 중순 이후다. 아시아나항공의 상반기 실적까지 나오는 시기다. 즉 추가적인 위험 요소가 확인된 후부터나 움직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3개월을 준다 해도 문제다. 실사가 마무리되면 11월에 접어든다. 그 때부터 또 실사 결과를 문제 삼아 지루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계약상 거래 종결은 어떠한 경우에도 계약일로부터 1년 안에 이뤄져야 한다. 기한이 지나면 HDC현산은 ‘노력에도 불구’ 아시아나항공을 놓치는 그림이 되고, 계약금을 돌려받을 명분도 더 커지게 된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리더십 부재 속에 장기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HDC현산이 쥐고 있는 기간 동안 다른 잠재 인수자의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

      한 매각자 측 관계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기 싫다고 하면 이해를 할 것 아니냐”며 “HDC현산이 사기는 싫고 돈은 돌려받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