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손에 맡겨진 아시아나항공…HDC 경영진 책임론 불가피
입력 2020.08.03 07:00|수정 2020.08.04 10:08
    인수 성공 자축에 앞장선 HDC경영진들
    줄줄이 승진, 대표이사 타이틀 달았지만…성과는 미미
    실사 기간만 7개월, HDC현산 주가는 반토막
    “새주인 못찾은 아시아나의 기회비용도 고려해야”
    딜 성사 여부 별개, ‘기업가치하락’ ‘신뢰도’ 타격 책임론 부상
    •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거래 종결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사실상 현재 상태론 거래 종결이 어렵다”는 주장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과 채권단은 “거래 종결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양측은 길고 긴 공방전을 이어왔지만 깔끔한 거래 종결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현산과 아시아나 모두 상처가 큰 거래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현산의 기업가치는 반토막 났고 기업의 ‘평판’과 ‘신뢰도’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현산만을 믿고 있던 아시아나는 새주인을 찾아 기업의 정상화를 노릴 기회를 놓쳤다.

      초라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HDC그룹 경영진들의 책임론이 수면위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입찰 당시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가로 2조5000억원을 제시하며 나머지 후보를 압도했다. 입찰함 뚜껑을 열자마자 현산은 재고의 여지없이 우선협상 대상기업으로 선정됐고, 본계약(SPA)까지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은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자축했다.

      축배는 거기까지였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직후 현산의 재무 부담을 언급했다. 기자회견 당시만해도 “아시아나항공 임직원과 긍정적 시너지를 이뤄내 주주와 사회에 기여하고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란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때마침(?) 터진 코로나 사태는 HDC그룹이 이를 번복할 수 있는 그럴싸한 명분이 됐다.

      같은 기간 현대산업개발과 지주회사 HDC의 주가는 꾸준히 하락했다. 주가는 지난해 고점의 절반 수준이다. 코스피 지수는 반등에 성공, 체격이 같은 건설사들은 정부 정책의 수혜를 입고 있지만 HDC그룹만은 예외였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도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거래의 주역은 단연 정몽규 HDC그룹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이다. 정몽규 회장이 지난해기자회견에서 ‘아시아나항공 딜을 성공시킨 주역’으로 소개한 인사들은 실제로 정기인사에서 승진자로 대거 발탁됐다.

      투자금융업계에서 흔히 일컫는 말로 “HDC 사옥에 불이나도 회장님의 명령이 있기 전까진 끄지 않는다” 또는 “대규모 축구 이벤트가 있으면 회장님이 부재하기 때문에 거래(딜)가 진행이 안된다” 등 HDC그룹의 탑-다운(Top-Down)식 의사 결정은 정평이 나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최고 경영진들은 의사결정은 이번 거래에 세밀한 부분까지 녹아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이번 거래의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최고경영진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 김대철 HDC현산 부회장은 현대차 국제금융팀장과 현산 경영관리부장을 거친 대표적인 현대맨으로 정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승진 발표 당시 회사는 ‘탁월한 경영실적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기반을 마련한 김 부회장은 외연확장 및 그룹 내 협업과 시너지 창출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김 부회장의 공을 인정했다.

      권순호 HDC현산 사장은  2018년 건설사업본부장에 선임됐고 같은해 5월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유병규 HDC사장은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을 거쳐 산업연구원장으로 활동했는데, 2018년 그룹에 합류했다. 모두 아시아나항공의 딜 소싱과 입찰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사다.

      실무진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펼친 인물은 단연 정경구 HDC현산 대표이사(전무, 경영기획본부장)이다. 2008년 HDC현산에 입사해 2017년 HDC자산운용의 대표이사를 지낸 정 전무는 2018년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현산의 곳간을 책임지고 있다. 금호그룹과 실무적인 접촉은 주로 정 전무, 그리고 정 전무와 오랜기간 호흡을 맞춰온 이양소 부장이 담당했다. 정 전무와 이 부장은 채권단 및 금호그룹과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거래를 이끌어온 주역으로 꼽힌다.

      HDC그룹은 올 1월부터는 인수준비단을 꾸리며 본격적인 통합(PMI) 작업에 나섰다. 10여명 남짓으로 꾸려진 인수단은 이형기 전무가 맡았다. 초기 입찰단계에선 눈에 띄지 않았으나 PMI 작업을 진행하면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올해 양측의 협상과 관련한 전반을 담당했다. 이 전무는 30여년간 현산에 몸담아온 ‘전략기획통’이다.

      ‘통큰 베팅’과 거래종결 전부터 PMI를 준비하며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인사들은 거래 종결을 앞두곤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이들이 그간 회사의 대규모 M&A를 이끌어 낸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HDC그룹의 대표적인 M&A는 지난 2017년 부동산 포털 부동산114(약 640억원), 지난해 골프장 및 리조트 브랜드인 오크밸리 경영권 인수(약 580억원) 정도를 꼽을 수 있다.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지출은 성동조선소 3야드 부지(약 1110억원)을 비롯한 부동산 개발 목적의 자산취득이 전부다. 한마디로 M&A 거래 경험이나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사태에서 보여진 이례적인 요구와 절차 번복도 결국 HDC가 ‘M&A 업계에서 아마츄어’이기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잔금납입 즉 거래종결 전부터 통합작업을 진행하면서 거래를 이끌어 온 점, 7개월 간의 실사기간을 보내고 추가적으로 3개월 연장을 요청한 점 등은 M&A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요구로 평가받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산측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써낸 가격을 보면 경영진의 통 큰 결단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회사에 대한 밸류에이션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며 “딜의 성사여부를 떠나서 현산은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아시아나 측도 피해를 입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현산측이 재점검을 요구한 부분은 ▲아시아나항공 2019 회계연도 감사의견 부적정 ▲부채 2조8000억원 추가 인식 및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영구전환사채의 추가 발행으로 지배력 약화 예상 ▲기내식 관련 계열사 부당지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손실 문제 등이다.

      금호그룹 측은 해당 항목들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지난 “4월 현산 측이 인수상황을 재검검하고 재협의를 요청한 시점 이후 인수단의 활동내역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현황파악 및 PMI활동을 거의 중단한 상태”라고 30일 밝혔다.

      현산 측은 “계약금 반환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성공적인 거래 종결을 위해 재실사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며 “재실사는 현산의 인수 또는 국유화의 경우에도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신뢰할 수 없는 재무제표에 근거한 막연한 낙관적 전망만으로는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할 수 없다”고 했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금호산업 측 자료에 대해 "채권단의 입장은 아니며 다음주에 산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양측이 서로 공을 떠넘기는 상황에서 거래 종결까진 넘어야 할 산들은 더 많아졌다. 정몽규 회장 과 채권단·금호그룹 측이 어떠한 결론을 도출할 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양측 모두 큰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거래가 무산되면 현산은 2500억원의 계약금 반환 소송을, 채권단과 금호그룹은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의 시작점에서, 앞으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은 현산이 언급한 ‘혈세’ 또는 현산 투자자들의 몫이 될 가능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