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술본부 vs 기획조정실…현대차 내부 기류 변화
입력 2020.08.07 07:00|수정 2020.08.06 18:53
    전략기술본부…대규모 투자 보단 성과에 무게추
    기획조정실…그룹 현안 핵심으로 부상
    • 불과 1~2년 전까지만해도 현대차 내부에서 가장 각광받는 조직은 단연 전략기술본부였다. 전략기술본부는 현대차의 혁신기술 분야 육성을 담당하며 수많은 투자를 책임져 왔지만 이제는 ‘투자’보단 ‘결실’을 요구받고 있다. 전략기술본부가 다소 숨고르기에 돌입한 반면 그동안 주춤했던 기획조정실의 위상이 재조명 받으면서 그룹의 주요 현안에서도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7년 신설된 전략기술본부는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 강화와 함께 성장해왔다.

      설립 이후 국내외 각 기업의 기술 전문가는 물론 금융계와 법무법인, 회계법인, 사모펀드 등 투자은행(IB) 인력을 빠르게 충원하며 1년만에 200여명이 넘는 조직으로 급부상했다. 주로 기술력이 뛰어난 해외기업에 대한 투자 및 M&A를 진행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정의선 부회장이 전략기술본부를 직접 관할하면서 힘을 실었다.

      전략기술본부의 수장은 정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지영조 사장(본부장)이다. 지 사장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삼성전자 기획팀장)을 거쳐 2017년 현대차에 합류, 이직한지 1년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AT&T 벨 연구소와 맥킨지·액센추어 등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영전략과 마케팅 등을 컨설팅한 신사업 전문가로 꼽힌다.

      전략기술본부 출범 이후 현대차의 국내외 투자는 공격적으로 늘었다. 설립 첫 해 한국 차량공유 서비스 스타트업 럭시에 50억원을 시작으로 SK텔레콤-한화자산운용과 함께 인공지능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엔 미국 레이더 및 인공지능 기술 새발 회사인 메타웨이브(Metawave)에 투자했고 동남아 최대 차량호출서비스(Car Hailing) 기업 그랩에 2억7000만달러(약 3200억원), 인도 최대 차량공유서비스 올라(Ola)에 총 3억달러(약 3570억원) 등에 투자하는 성과도 냈다.

      2018년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미국의 자율주행 선도업체인 오로라(Aurora)와 협업을 발표한 이후, 지난해 현대차는 전략적인 투자를 진행하며 협력관계를 공고히 한 것도 전략기술본부의 작품이다. 올해는 전기차 개발 전문기업 어라이벌(arrival)에 약 1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다.

      2018년 지 사장은 ‘삼성전자와 협력 계획’과 더불어 그룹의 미래 비전을 앞장서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 전략기술본부와 지 사장의 위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특성상 외부인사가 영입된 지 얼마 안 돼서 현대차의 상황을 진단하고, 그룹의 비전을 발표하는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며 “특히 현대차와 삼성과의 관계가 다소 불편한 상황에서 지 사장이 협력 계획을 발표한 것은 정 부회장의 최측근으로서 상당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략기술본부의 성장과는 반대로 정몽구 회장 집권 체제하에서 핵심 컨트롤타워 조직으로 꼽힌 기획조정실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현대차와 성장의 궤를 함께 해온 기획조정실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미래차 분야에서 현대차가 다소 뒤쳐졌다는 지적과 함께 시대에 뒤쳐진 조직이란 평가를 받았다. 당시 그룹 내에서 전권을 쥐지 못한 정 부회장이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는 조직이란 지적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

      정의선 부회장은 그룹의 핵심계열사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 자리에 오르며 현대차는 명실상부한 포스트 정몽구 시대가 열렸다. 지난 2018년 말 현대차의 기술개발의 핵심이던 양웅철·권문식 부회장은 고문으로 위촉돼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떠났다. 정몽구 회장의 복심인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겼다.

      빈자리는 정의선 부회장의 사람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알버트비어만(Albert Bieman) 사장은 현대차그룹의 첫 외국인 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그룹의 핵심보직인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됐다. 정 부회장이 영입한 외국인 인사들의 승진과 더불어 지영조 사장, 신재원 부사장(UAM사업부장) 등 신사업 관련 인사들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특히 그룹의 최고 핵심보직, 즉 김용환 부회장이 맡았던 자리는 정 부회장의 최측근인 김걸 사장이 담당했다. 그는 1998년 현대차에 입사, 글로벌전략실장, 기획조정 1실장 등을 거친 인사다. 김 사장은 지난 지배구조 개편작업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기도 하다. 김걸 사장의 기획조정실장 임명은 현대차의 헤게모니가 정 부회장에게 완전히 넘어왔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도 했다.

      이후 기획조정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인수를 제외한 현대차그룹의 최대 규모 투자는 지난해 미국 앱티브 테크놀로지스(Aptiv Technologies Limited)와 합작사(Joint venture) 설립이다. 총 현금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와 4억달러(약 4800억원) 규모의 엔지니어링 서비스 연구개발(R&D) 자원을 부담했다. 1년 넘는 협상 기간 동안 준비 작업은 기획조정실이 담당했다. 김걸 사장이 키맨(Key man)으로 활약하며 주관사단 및 앱티브와의 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용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정의선 부회장의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에도 김 사장은 동행했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 납품 및 협력과 관련해 현대차와 삼성전자는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있는 것 알려졌는데 그 과정 또한 기획조정실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친환경 전기차 분야에도 집중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획조정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구조라는 설명도 있다. 전기차 생산과 관련해선 ▲배터리 공급처 확보 ▲생산의 시기 및 생산량 조절 ▲제조 인력 재배치 ▲판매처 확보 등 필요한 제반사항 등은 전사적인 차원에서 조율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전략기술본부와 같은 신사업 발굴과 투자의 조직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옮겨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대차도 전기차 시장에 선점을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며 “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인사, 노무, 행정, 생산 등 그룹 전반을 관할하는 컨트롤타워 조직이 주목받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기획조정실의 재조명과 더불어 정의선 부회장 및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전략기술본부는 출범 3년을 맞아 다소 숨고르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및 유망 기업에 대한 발굴은 꾸준히 진행하고 있지만 “이제는 투자 성과를 내야한다”는 그룹 내 압박도 커지고 있는 시점이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전략기술본부는 최근 대규모 투자보다는 기존 투자에 대한 회수, 또는 성과를 내기 위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설립 3년 동안 투자건에 비해 가시화한 성과가  많지 않고, 조직적으로도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더 이상 별동대 형식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성과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