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불투명한 관제사업"...광주형 일자리 대출에 부담 느끼는 금융사
입력 2020.08.19 07:00|수정 2020.08.18 18:03
    작년 지분출자 이어 최근 차입금 조달 진행
    사업성 불투명…미래차 물량 기대도 어려워
    광주형 일자리 책임 주체·회수 가능성 모호
    금융사들 정부 눈치 보면서도 대출에 난색
    • 광주형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현대자동차까지 뜻을 모은 사업인데 바꿔 보면 위기 때 앞장 설 주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외 자동차 산업 변화를 감안하면 광주형 일자리의 경형 SUV가 경쟁력이 있을 지도 미지수다. 사업성도, 회수 가능성도 장담하기 어렵다 보니 돈을 빌려줘야 하는 금융사들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 ‘광주형 좋은 일자리 1만개 창출’ 공약에서 시작했고, 2017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며 본격 힘이 실렸다. 2018년 현대차가 광주시와 완성차 공장 투자 협약을 맺었고, 지난해 9월 합작법인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출범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작년 말부터 광주에 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의 자본은 지난해 마련했고, 최근엔 차입금 조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지난 6월 광주형 일자리를 ‘제1호 상생형지역일자리’로 선정하며 차입금 대부분은 산업은행에서 조달할 예정이고 신한은행, 기업은행, 지방은행 등과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 정작 돈을 빌려줄 금융회사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사업성과 회수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가 2022년부터 연간 7만대(최대 10만대)의 경형 SUV를 만들 계획이다. 현대차가 개발한 배기량 1000cc 수준의 신차를 위탁생산한다는 것인데 ‘덩치만 큰 경차’가 시장에서 얼마나 환영받을 지는 미지수다. SUV가 완성차 업체의 마지막 보루라지만 최근 시장에서 화제를 모은 차종은 팰리세이드나 GV80 등 중형이상 모델들이다.

      SUV의 상품성이 높아도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존 모델들과 경쟁이 불가피하다. 현대차는 상반기 12만대에 가까운 SUV 판매고를 올렸다. 연간 20만대를 파는데 SUV 7만대가 더 들어오면 판매 전략이 꼬일 수밖에 없다. 경형 SUV 가격은 1000만원 중후반대로 설정할 것이란 예상이 있는데 이 또한 새로운 수요층을 찾기 모호한 금액이다.

      금융사로선 광주글로벌모터스만 보고 돈을 빌려줬다간 돈을 떼일 것이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장사가 안되면 지분이든, 공장이든 담보 가치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대주주인 광주시와 현대차로부터 보증 등 안전장치를 얻어내야 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다.

      광주글로벌모터스가 현대차로부터 다른 모델을 받아오기도 어렵다. 코로나 이후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광주형 일자리는 몇 년전 계획을 안고 간다. 앞으로 성장성이 있는 것은 전기차나 수소전기차 등 미래차인데 노조의 격렬한 반대를 감안하면 현대차가 이를 광주에 배정하긴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 광주글로벌모터스의 노조 문제도 신경써야 한다. 이미 노동업계의 반발로 사업이 여러 차례 표류했다. 사업이 잘 된다 쳐도 수많은 직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광주형 일자리의 모티브는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 5000’ 사업이다. 1999년 폭스바겐은 독립법인을 만들어 5000명의 실업자를 월 5000마르크의 임금을 주고 고용하겠다고 노조를 설득했다. 이후 수년간 단체교섭을 거치면서 아우토 5000 노동자의 임금이 기존 정규직과 비슷해졌고 기대 효과가 사라졌다.

      한 증권사 자동차 담당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소형차 수요가 줄면서 자동차 업체들은 중대형 이상 차량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소형차 시장 전망은 어두운데 경제성 있는 차종을 배정 받기도 어렵다 보니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에 참여하며 1대주주를 피했고, 관계사로 엮이지 않기 위해 지분율도 20% 미만으로 묶었다. 사업이 잘 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큰 부담이 없다. 폭스바겐처럼 아우토 5000을 끌어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대차의 출자는 정부 중점 과제에 성의를 표한다는 ‘대관 성격’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사정이 이러니 한 국책은행은 광주글로벌모터스 지분 출자자로 참여하면서, 대출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확실한 안전장치가 없는 대출은 지분 출자와 위험성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대출 수준의 안정성이 없다면 차라리 ‘중소기업’ 지분 출자 후 손상 처리 위험을 안겠다는 것이다. 사업에서 지분 출자 규모가 대출보다 작기도 하다.

      민간 금융사도 부담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광주글로벌모터스가 극단적인 위기에 몰리면 정부 단의 출자전환 압박 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기류도 있다. 정책 과제이니 드러내놓고 반대는 하지 못하면서도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분위기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는 사업성이 불투명하고 위기 시 확실히 책임질 주주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며 “정부 눈치에 대놓고 하지 않겠다 할 수는 없다보니 '구조가 모호하다'며 결정을 늦추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