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경영권 분쟁·M&A 미온적 태도 일관
과당·출혈 경쟁 시름하는 LCC들
경쟁력 강화 플랜 따른 구조조정 필요성 대두
“정책실패 자인 어려워”, “총대 멜 기관 없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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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항공 업계에 ‘코로나’는 상수가 됐다. 업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타개점을 찾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장 내년을 기약하기 어려운 항공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항공사(FSC)들은 경영권 분쟁에 속앓이를 하는가 하면 새주인을 찾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재무사정이 열악한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시름은 더욱 깊다. 인·허가제로 운영하는 항공사의 특성상 정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의지 또는 업계 재편을 위한 노력은 상당히 미온적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다행히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올 상반기 전년과 비교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여객의 수요는 크게 줄었으나 화물 운송이 여객의 감소를 상쇄했다. 아직 재무구조 개선과 그간의 손실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반기 국적항공사의 흑자전환 기조가 유지될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한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해지한 국가들이 다소 늘고 있긴 하지만 본격적인 해외여행 재개가 이뤄지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진단키트·마스크·방호복 등 효자 노릇을 했던 제품들의 수출은 감소했다. 올 2분기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긴급주문이 밀려들었기 때문에 항공사들은 화물 운임 상승이란 효과를 누렸으나 여객기 화물 수송이 늘어남과 동시에, 효자 품목의 수출이 줄면서 화물 운임 또한 하락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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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곳 없는 LCC의 상황은 더욱 힘들다.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끝내 이스타항공의 인수를 포기했다. 자체 사업도 힘든 상황에서 인수를 통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벼랑끝 고육지책이었다. 재무적 위기를 맞은 이스타항공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돌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업에만 집중해도 모자를 상황이지만 대형 항공사들은 지배구조 이슈가 더 큰 현안으로 자리잡았다.
대한항공의 최대주주 한진칼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벌써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미 주주연합(KCGI+반도그룹+조현아)이 최대주주 지위를 차지했지만, 조원태 회장의 측근들이 이사회에 자리하며 가까스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룹의 구심점은 모호한데 주주연합의 결속력마저 느슨해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진그룹의 장기적인 방향성은 더 모호해졌다. 여기에 대한항공의 우군이었던 델타항공도 실적악화에 시달리는 탓에 기존의 끈끈한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아시아나항공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력은 유명무실하고, 산업은행의 관리 하에서 모든 경영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HDC현대산업개발을 새주인으로 낙점했지만,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거래 종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금호와 현산은 여전히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체될수록 아시아나항공의 재무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사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등 정책의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행제재 해제와 같은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면 사업성이 크지 않은 항공사들의 정리가 진행돼야 하지만,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 입각한 큰 틀의 구조조정 방향성을 잡아줄 주무부처 또는 그럴만한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이 없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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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적 항공사들이 수년째 사업적, 지배구조와 관련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동안 정부의 움직임은 상당히 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진그룹의 주요주주인 국민연금 또한 손을 놓아버린 형국이기 때문에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공사의 면허 허가와 노선배분 등 주요권한은 국토교통부가 갖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 항공사 지배구조와 재무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지배구조 이슈로 인해 항공사의 경영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였으나 한진칼은 항공사가 아닌, 항공사의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이 같은 방안이 적용되지 않았다. 즉 한진칼의 경영권이 어느 쪽으로 향하든 대한항공의 대주주가 한진칼인 이상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은 곧 대한항공의 경영권 분쟁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일단 시장 논리에 맡겨진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의 피해는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선언이 무색하게 국민연금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자 지분을 대거 팔아치웠다. 과거엔 한진그룹 경영권 향방의 캐스팅보트의 역할, 그리고 경영개선을 이끌어 낼 주요주주로서 역할을 기대했으나 이제는 그럴만한 힘도 권한도 없는 소액투자자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대한 지분율을 줄였던 것은 정무적인 판단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며 “논란의 여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손을 털어버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태도는 더욱 미지근했다. 국적항공사의 새주인을 찾는 것은 분명 항공업계 구조조정의 첫번째 단추를 끼우는 것과 같다. 전적으로 산업 구조조정에 앞장서야 할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 더 나아가 청와대는 부동산 대책을 비롯한 다른 현안에 몰두했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역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앞단에 선 산업은행은 금호그룹을 방패막이 삼아 실익 없는 여론전에 치중했다는 지적이다. 올해 내내 실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동걸 산업은행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회동은 단 두차례에 불과했다. 이 행장은 기자들 앞에서 HDC에 대면협의를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는 산업은행의 위상과 협상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됐다.
독일의 최대 항공사인 루프트한자, 이탈리아의 항공사 알리탈리아는 국유화했다. TAP포르투갈과 에어프랑스 등도 국유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항공업을 기간산업을 여기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 경쟁력있는 항공사를 키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유화’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요에 비해 차고 넘치는 LCC 항공사들의 라이선스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주요 항공 노선을 어떤 항공사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각 부처의 세부적인 논의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해 초 국토부는 이미 LCC 라이선스를 대거 허용했고 한국은 세계 최다 LCC 보유국이란 타이틀을 거머줬다. 해외 주요 항공사들이 수년전부터 LCC를 정리, 통폐합 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으면서 과당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그 우려는 머지않아 현실이 됐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LCC 난립으로 인한 출혈경쟁, 이에 따른 부실기업 등장은 명백한 정책 실패라고 볼 수 있지만, 정부가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며 “민간기업에 맡겨진 항공사들이 자율경쟁을 하고는 있지만, 정부의 정책 방향성 또는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장기적인 항공사 경쟁력 강화라는 목적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역할을 기대하는 투자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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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8월 1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