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배터리 분할 사태에서 LG가 놓친 것
입력 2020.09.24 07:00|수정 2020.09.25 10:03
    분할 정당성 확실하지만, 주주에 대한 시기적 고려 불충분
    "구글에서 유튜브 떼서 따로 상장한다면 받아들이겠느냐"
    분할 성공 위한 찬성 지분 27% 더 필요...주주 설득 진행해야
    • "(소액주주들이)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사악한 거죠." (A 증권사 트레이더) 

      LG화학 배터리 부문 분사(가칭 LG에너지솔루션)를 두고 잡음이 적지 않다. 주가의 변동성이 폭증하고, 손실을 호소하는 소액주주들이 늘고 있다. 이렇게까지 주주들을 무시하고 마찰적으로 발표했어야 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런 반발들은 LG그룹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 훼손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LG화학과 LG그룹 입장에서 억울한 부분도 적지 않다. 자본시장에서는 이번 물적분할이 회사 성장 차원에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0% 자회사를 만들면 사모펀드(PEF)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거나 기업공개(IPO)로 대규모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지배력이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인적분할을 하면 ㈜LG 아래 지분율 30%를 보유, 동일한 지배구조를 가진 새 계열사 하나를 병렬로 만드는 데 그친다. 게다가 LG는 이미 배터리 분사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IR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 사태가 일파만파 커진데는 LG가 놓친 요인들이 몇가지 거론된다.

      1. LG화학 주가가 폭등한 지금에서야 분할을 발표했어야 했나

      시장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금융권에서는 이 명제에 대해서만큼은 LG화학, 나아가 LG그룹이 '실기'(失期) 했다는 평가가 많다.

      2차전지ㆍ배터리 사업은 가장 최근에 빛을 본 사업 중 하나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내연기관에서 명백하게 전기차ㆍ수소전기차로 넘어가기 시작하며 배터리가 미래산업으로 각광받게 됐다. 이러다보니 LG화학의 시가총액 불과 1년 새 16조원에서 장중 최고가 기준 55조원으로 치솟았다. 2017년말 9만명대였던 소액주주 수도 상반기 말 기준 12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에서 배터리를 포함한 신산업을 중심으로 '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LG화학에 대한 관심이 정점을 찍었다. 한국거래소는 이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인덱스인 '뉴딜 지수'를 내놨는데, LG화학은 대표지수격인 BBIG 지수와 하부지수인 2차전지 지수에 가장 높은 비중으로 포함됐다.

      숱한 소액주주들이 LG화학을 선택한 데엔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이들은 LG화학이 대규모 신규 국책사업과 연계되고, 신규 인덱스에 편입되며 추가 자금 유입을 기대했다. '주가가 주당 100만원 이상 갈 것'이라는 믿음이 가득했다. 이런 와중에 '배터리 사업을 떼낸다'라는 소식을 들었으나 청전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분할을 계획했다면 시장의 관심이 덜했던 지난해나 그 이전에 분사를 미리 단행했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식의 물적분할을 계획했다면 회사 가치가 작았을 때 했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 기업가치의 거의 모든 부분이 배터리인 상황이고 이를 기대한 주주들이 대거 유입된 상황에서 갑자기 물적분할을 발표해 버리니 이를 순순히 받아들여줄 주주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마찬가지로 대주주 중심의 경영방식이라고 비난받게 된다"고 혹평했다.

      물론 LG로서는 배터리 부분이 독립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때가 무르익기 기다렸을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LG그룹이 전략적으로는 적절한 선택을 했지만 이런 선택이 증시에 미칠 영향과 개별 주주들이 받아들일 상황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져보면 LG그룹이 자본시장에서 마지막으로 '빅딜'을 한 게 벌써 10여년전의 일이다. 2011년 LG전자 1조원 유상증자가 끝이었고, 이후 최근 10년간 이렇다 할 대형 계열사 상장도 없었다. 채권 발행은 이어오고 있지만, 소액주주들과의 스킨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2. 회계적으로 기업가치 달라질 것 없다 vs 한국에서는 다르다

      사실 회계적으로 보면 '물적분할만으로는 기업가치에 변화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내부에 있던 사업부가 100% 자회사로 지배구조 하단으로 내려간다는 것 외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재무제표 역시 연결기준으로 LG화학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렇게 따지면 LG화학 주주들이 이번 물적분할에 이렇게까지 반발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특수상황을 고려하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이로 인해 소액주주들이 느끼는 체감은 다르다.

      해외 증시에서는 일단 이런 물적분할을 통한 핵심 사업부 상장 자체가 드물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 증시의 경우 사업지주회사 한 곳이 대표로 상장하는 게 원칙이다. 예컨데 여러 사업을 가진 구글의 경우,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알파벳'만을 상장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다른 주요 사업부를 따로 떼내어 상장하지 않는다. 이는 배당소득에 명시적인 이중 과세를 부과하고, 법률적으로 '대리인 이슈'를 엄격하게 따지는 미국의 증권 관련 제도 때문이다. 물적분할 자체가 기존 주주들에게 심각한 손해를 일으키는 이벤트로 취급받는다.

      이러다보니 이번 LG화학의 배터리사업부 물적분할 및 향후 상장을 두고 "해외에서라면 당장 배임에 이중과세로 난리가 날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쉽게 말해 "유튜브를 보고 구글 주식을 샀는데 유튜브 사업부를 따로 떼내어서 상장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외에서는 더 큰 반발이 있지 않았겠느냐"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일단 국내 증시제도에서는 지주회사 및 모회사의 자회사 상장을 무제한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주회사나 대표회사가 상장돼있는데 계열사나 사업부를 분사해 따로 상장하며 투자를 유치하는 시장은 한국과 일본 정도"라며 "법적으로 용인돼있고, 자본이 부족했던 성장기에 기업들이 이를 잘 활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이런 증시 제도를 활용해 자금을 유치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에 대한 경험과 정보량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국내 대기업들의 자본 조달 방식에 대해 적지 않은 거부감이 들게 됐다.

      국내 대기업 '지주회사'의 주가가 국내 증시에서 유달리 저평가받고 있는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일례로  순수지주회사 상장사인 SK㈜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즉 해외에서는 SK㈜ 만 상장을 하는 방식이어서 지주사 주가에 고스란히 계열사의 업황이 반영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SK그룹의 경우만 봐도 지주사 아래 각 계열사들이 다 상장을 단행했다. 한때 SK바이오팜 단 한 계열사의 지분가치가 SK㈜ 시가총액의 60%를 훌쩍 넘었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주력 계열사 지분가치의 총합은 SK㈜ 시가총액의 두 배 이상이다.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현금을 창출하는 사업을 직접 보유한 게 아닌만큼 이를 '디스카운트'(차감)해 반영하는 것이다. 사실 국내 증시에는 이런 '지주회사 디스카운트'가 만연해있는 게 사실이다.

      3. 12월 주주총회에서 이번 물적분할이 쉽게 통과되려면

      이번 LG화학 분할은 상법상 '단순ㆍ물적분할'이기 때문에 반대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30%에 그치는 ㈜LG의 지분율을 고려하면, 다른 주주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있을 경우 특별결의가 필요한 주주총회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주목받는 주주총회의 경우, 전체 주식 수의 85% 안팎이 참석한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때도 출석률이 85% 안팎이었다. 분할을 위한 특별결의 요건이 '전체 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 참석 주식 수의 3분의 2 이상'임을 고려하면, 찬성 지분율 56.7%가 필요하다. ㈜LG 지분을 제외하면 26.7%의 찬성표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LG화학의 핵심 주주군은 외국인이다. 이들의 지분율은 현재 36.5%로 ㈜LG보다 많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 의결권 자문기관의 판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 ISS나 글라스루이스 등 해외 의결권 자문기관의 의견이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아직까지는 해외 기관들이 배터리 부문 분사에 우호적이라는 목소리가 많지만, 국내 증시의 특수성을 잘 모른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도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국내 기관 지분율은 13% 안팎으로 추정된다. 국내 기관들은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이자 LG화학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의견을 추종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 판단에 따라 23% 가까운 찬성표가 움직일 수 있다.

      분할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주주군은 개인투자자들이다. 이들의 지분율은 현재 10% 안팎으로 추정된다. 개인투자자들이 모두 반대표를 던지고, 외국인과 국내 기관 주주군에서 18%가량 반대표가 나온다면 분할을 무산시킬 수 있다. 이번 주총에 전면 도입된 전자투표제에 소액주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가 관전포인트 중 하나로 꼽힌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배터리 부문 분사 결정 이후 이런 여론이 펼쳐질 것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사악한 것이다"라며 "LG화학 뿐만 아니라 LG그룹 상장사 전반적으로 시장과의 소통 능력을 더욱 키울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