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 '올인'하는 금융지주…경영진은 생색, 주주는 부담
입력 2020.09.25 07:00|수정 2020.09.24 16:34
    "자체 전략보단 정부 눈치" 평가
    경영진 선심에 주주 부담만 커져
    •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을 내놓자 5대 금융지주들은 이에 발맞춰 70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금융지주들이 자체적으로 투자 계획을 내놨다지만 실질은 금융사들이 정부에 등 떠밀린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금융지주 경영진 입장에선 밑질 것이 없다. 기존 사업의 연장선이라면 부담이 작고 새로 사업을 벌이는 경우라도 정부에 성과는 과시할 수 있어서다.

      경영진이 구색을 맞추려 내는 계획들이 주주가치 제고에 득이 될지 미지수다. 은행들은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각종 정책에 동원되며 실적 불확실성이 커졌다. 자기 전략보다는 정부 눈치가 우선인 사례가 반복되니 은행주 매력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부담은 궁극적으로 주주들에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책 자체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만은 않다. 정부는 데이터댐, 스마트 의료 인프라, 그린 에너지 등 10가지 대표 과제를 꼽았다. 결국 ‘디지털’과 ‘그린’이 핵심인데 글로벌 경제의 흐름과도 맞다. 같은 관(官) 주도 펀드라도 과거 녹색펀드, 통일펀드와는 다르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민간에서도 예전처럼 허무맹랑하진 않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는 금융사들이 발표한 뉴딜 투자계획은 자체 경영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지주들이 수십조원 규모 뉴딜금융 계획을 자발적으로 내놨을 것이라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뉴딜정책 발표 때 청와대로 초청된 금융지주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정부는 은행과 보험의 자산건전성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반대로 보면 유인책 없인 민간이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관제 사업을 둘러싼 잡음이 적지 않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5월 디지털 경제 전환에 투자하는 스마트코리아펀드 사업을 추진하며 5대 시중은행에 200억원씩 출자해달라고 요청했다. 은행들이 반발하자 은행 출자는 받지 않기로 했다. 광주형일자리는 막판 차입금 조달 작업을 진행 중인데 사업 전망과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일부 은행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며 발을 뺄 명분을 찾았다. 이런 작은 사업도 껄끄러운데 수십조원의 뉴딜 계획을 내걸려니 금융지주의 고민이 깊어질 상황이다.

    • 그럼에도 금융지주 입장에선 한국형 뉴딜 정책에 적극 화답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회장 연임 문제가 걸려 있든 새로운 사업 영역을 늘리기 위해서든 정부와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작년 이후 금융권에서 대형 사고가 빈발했고, 당국 의중을 살피며 처리해야 할 절차도 아직 많이 남았다. 금융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데 지원 결정을 미적대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금융지주 경영진 입장만 따지면 크게 부담될 것이 없다. 공히 빅데이터, 신재생에너지, 5G, 인프라 등 사업과제들을 망라하고 있지만 기존에 이미 하던 사업들이다. 꼭 관제가 아니라도 시대 흐름에 따라 늘려가고 있었다. 이미 집행된 경우가 아니라면 그대로 끌어다 뉴딜 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앞서도 금융지주들은 정부가 혁신성장, 일자리 창출 등 기치를 내걸 때마다 막대한 자금 지원 계획을 꺼내들곤 했다. 일단 성의 표시를 하면 이후 얼마나 성취를 이뤘는지는 정부도 금융지주도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한 시중은행 투자 담당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금융지주들이 숫자 경쟁을 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모두 기존 사업의 연장이라 허수가 많다”고 말했다.

      생색은 금융지주 경영진이 내는데, 정작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이 얻는 성과는 모호하다. 후하게 봐도 주주가치엔 득이 되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금융당국은 코로나 시대 은행들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증안·채안펀드, 중소기업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등 기존 부담도 큰데 뉴딜펀드까지 얹어졌다. 은행 자금으로 위험 현실화 시기가 늦춰졌지만 언제 둑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뉴딜 사업이 기존에 하던 것들이라도 비슷한 테마의 사업 안건이 물밀 듯 올라오는 현재의 상황은 부담스럽다.

      한국형 뉴딜 정책의 사업 실체는 아직 모호하다. 정부는 연말까지 뉴딜정책 세부 실행 내역을 꾸린다는데 공언한대로 시중의 유동성이 생산적으로 흡수될 지는 의문이다. 정부와 여당에선 수익성을 보장한다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 뉴딜 자금 마련을 위해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발 채권이 쏟아질텐데 보장하겠다는 수익도 국채 수준이니 이래저래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거란 평가가 나온다.

      금융주의 매력도는 깎일대로 깎인 상황이다. 정부 정책 수단으로 쓰이며 금융주가 아니라 정치주가 됐다. 일각에선 보복 정치, 공포 정치에 금융사가 휘둘리고 있다는 격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 신한금융이 대규모 지분 투자를 유치했으나 투자자가 사업성만 보고 들어왔을 거란 시각은 많지 않다. 대형 주주들이야 회사로부터 이런저런 보장을 받고 목소리도 낼 수 있지만 개미 투자자들은 속절없이 힘 못쓰는 주가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이는 때마다 사주를 사들이는 금융지주 직원들도 다르지 않다. 뉴딜이 실적을 쌓을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책임이 커질까 걱정이 많다. 회장과 임원진은 오래지 않아 바뀔테지만 실무자들은 자산을 계속 안고 가야한다. 무턱대고 정책 기조와 윗선 의중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유동성이 늘어나고 저금리 기조가 지속돼 금융회사도 투자할 것이 마땅치 않다’며 살뜰히 짚어줬지만, 실무자들은 ‘실제 돈이 되느냐’만 따지겠다는 분위기다.

      다른 시중은행 투자 담당자는 “정부의 뉴딜정책 지원 의지가 강해 좋은 투자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관보다 시장이 더 무섭기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다면 뉴딜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