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기본기 '유상증자'의 시대 왔다...한국證 ECM 1위
입력 2020.09.28 07:00|수정 2020.09.29 09:50
    [2020년 3분기 집계][ECM 자문 순위]
    3분기에만 공모 증자 27건, 2.8兆 규모 진행
    IPO보다 중요성 커져...평소 RM 역량 드러나
    은행 낀 KBㆍ신한 의외의 강세도 같은 맥락
    •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카카오게임즈 기업공개(IPO)였지만, 투자은행(IB)들의 실력을 가른 건 유상증자 소싱(sourcing;거래확보) 능력이었다. 하반기들어 경기 충격이 가시화하며 금융권의 예상대로 유상증자가 폭증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IPO 빅딜의 경우 주관사 선정 때 공개경쟁입찰을 거친다. 회사의 이름값이나 자본ㆍ인력 규모 등이 주요 변수가 된다.

      유상증자는 조금 다르다. 해당 증권사 영업역(RM)이 얼마나 발행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회사채 등 일상적인 시장 활동 과정에서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앞으로 주식자본시장(ECM) 순위 다툼이 '기본기' 경쟁이 될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0년 3분기 E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 들어 모두 105개 기업이 공모 자본조달 거래를 통해 6조5741억원을 조달했다. 발행기업 수는 40%, 총 발행규모는 137%나 증가했다.

      조달 종류별로는 유상증자가 42건, 3조7934억원 규모로 가장 컸다. IPO는 43건, 2조6424억원이었다.

      특이한 점은 유상증자가 3분기 중 폭증했다는 것이다. 3분기에만 27곳의 기업이 공모를 통해 총 2조7987억원을 조달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유상증자는 건수와 규모 모두 IPO에 뒤졌지만, 3분기 상장사들의 대규모 자본조달이 잇따르며 규모가 뒤집혔다.

      올해 3분기 증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카카오게임즈는 올해 ECM 리그테이블 순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한항공ㆍCJ CGV 유상증자를 비롯해 '단독 증자'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순위표를 결정지었다.

      한국투자증권이 18건, 1조3963억원의 거래를 주관하며 1위에 올랐다. 한국투자증권은 SK바이오팜ㆍ카카오게임즈 등 올해 양대 IPO 딜은 물론, 대한항공ㆍCJ CGVㆍ에이치엘비 등 주요 증자에도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상반기까지 압도적 1위였던 NH투자증권은 3분기 누적 기준 KB증권보다도 부족한 유상증자 주관 실적을 기록하며 2위로 내려섰다. 4분기 최대 규모 빅딜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주관을 따냈지만, 한국투자증권과 공동대표주관사로 합류해있기 때문에 1위 탈환을 위해서는 분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기자본 기준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도 대한항공 유상증자 대표주관사단에 포함되며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다. 대한항공 거래를 제외한 14개 주관 거래 건강 평균 발행금액이 370억여원에 그칠 정도로 '빅딜 가뭄'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대한항공 거래를 통해 3위에 오를 기반을 갖췄다.

      KB증권ㆍ신한금융투자 등 은행계 증권사의 깜짝 선전도 특기할만한 부분이다. KB증권은 주관 4위, 신한금융투자는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유상증자 부문의 선전 덕분이었다. 은행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일시적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ㆍ중견기업을 공략해 성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가에서는 앞으로 당분간 유상증자가 ECM 실적의 핵심을 담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기 침체의 여파가 항공ㆍ소매업에 이어 자동차ㆍ전자 등 제조업에까지 미치기 시작하며 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2~3년 전 IPO를 통해 자본을 확충했던 바이오ㆍ헬스케어 업체들이 높아진 주가를 기반으로 2차 자금 조달(Secondary Offering)에 나서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고 있다.

      IPO의 경우 기업 자체의 투자 매력도 중요하지만 전체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는 점에서 이미 하향세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게임즈를 정점으로 최소 3개월에서 6개월간은 빅딜이 발 붙이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빅히트 상장 후 주가 추이가 남은 변수로 꼽힌다.

      한 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잔액인수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지금 자본을 공급하면 위기가 끝난 후 크게 좋아질 수 있는, 시장에서 좋아할만한 기업의 증자를 소싱하는 게 핵심"이라며 "IPO는 빅딜 대기 수요가 있지만 공모주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억지로 올릴 필요는 없기 때문에 빅히트 이후 분위기를 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