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근무에 야근까지…"가혹한 일정"
간절함 측정하는 '충성심 테스트'라는 해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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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RFP는 3~4장 정도인데 크래프톤은 16페이지에 달하는 것 같았다. 연휴 반납은 물론이고 야근까지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가혹한 일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A증권사 관계자)
"저희 팀은 그래도 간신히 피해갔는데 옆 부서 분위기는 안 좋은 것 같다. 내 상황이었더라면 '정말 너무한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것 같다." (B증권사 관계자)
증권사 기업금융(IB) 담당 실무자들이 '크래프톤의 시련'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추석~한글날 황금 연휴를 앞두고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해 연휴를 모두 반납하고 꼼짝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크래프톤 RFP 제출 기한은 내달 12일로, 추석 뿐만 아니라 한글날이 낀 주말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연휴를 끼고 제안서를 요구하는 건 업계에서 이전에도 종종 있어왔던 일이다. 주관사 후보들의 '간절함'을 측정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활용돼온 까닭이다. 예상 기업가치가 30조원에 달하는 빅딜(Big Deal)인 만큼, 증권사 입장에서는 절대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상황이다.
크래프톤이 RFP를 각 증권사에 송부한 24일, 업계 관계자들은 RFP 내용을 받고 아연실색(啞然失色)에 빠졌다. 제출 기한은 10월 12일까지로 3주 정도의 여유를 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올해 얼마 없는 황금연휴인 추석과 한글날이 껴있기 때문이다.
제안서에서 요구한 내용은 굉장히 많았다. 크래프톤의 RFP는 총 16페이지에 달한다. 이에 더해 그 내용도 매우 섬세하다는 후문이다. RFP에는 크래프톤의 강점과 차별점, 중장기 성장전략에 대한 제안, 그리고 회사지배구조 개편 등에 대한 제안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외에도 크래프톤은 동종회사대비 크래프톤 강점과 차별점, 미국 나스닥 등 해외 거래소 말고 코스피에 상장해야 하는 이유 요구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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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이 연휴 기간을 낀 채로 증권사에게 RFP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사실 내년 중 상장 예정인 크래프톤이 추석 연휴 이후에 RFP를 배포하더라도 전체 일정에 큰 차질이 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렵다. 굳이 추석 연휴에 업무를 하도록 RFP를 배포한 데 대해 증권가 일각에서는 '얼마나 간절한지 보여달라는 충성심 테스트'라는 푸념까지 나온다. 일정 등 크래프톤의 IPO 총괄 지휘는 투자은행 JP모건 출신 배동근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담당하고 있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통상 RFP는 3~4장 정도인데 크래프톤은 16페이지에 달해서 연휴 반납은 물론이고 야근까지 해야하는 상황인 건 맞다"라며 "주관사로 선정되기 전에도 이렇게 일정이 빠듯한데 주관사로 선정되고 나서도 계속 힘들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 증권사들에게 크래프톤 기업공개(IPO)는 올해 막바지 실적을 올릴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예상 기업가치가 30조원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과거 크래프톤이 배틀그라운드 하나 밖에 없었을 때 '원게임' 인 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고 당시 기업가치도 5조원으로밖에 평가가 안 됐었다"라며 "지금 예상 기업가치는 이것의 6배 가량으로 놓칠 수 없는 대어"라고 말했다.
크래프톤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크래프톤이 증권사들에게 RFP를 보냄으로써 사실상 IPO에 본격 착수했음을 알린 24일 이후 이틀간 크래프톤의 장외주식 주가는 총 16% 가량이 올라 150만원대에서 180만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상승했다.
크래프톤은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테라'의 개발사다. 2017년 세계 동시접속자 수 1위를 기록하고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상을 거머쥔 '플레이어언노운스배틀그라운드'의 제작사 '펍지'의 100% 모회사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 8872억원, 영업이익 5173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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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9월 29일 15:1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