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인사 '복병'된 라임사태...연임 앞둔 CEO 줄줄이 '발목'
입력 2020.10.12 07:00|수정 2020.10.13 09:57
    증권사 중징계안 통보한 금감원, 조만간 은행도 진행
    KB證ㆍ신한銀ㆍ하나銀 등 주요 CEO 연임 불투명해져
    중징계 확정시 지난해 DLF 때처럼 법정 공방 가능성
    • 지난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이어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올해 말 금융권 인사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징계 예고를 받은 까닭이다. 중징계 이상이 확정되면 금융회사에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기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대형 금융그룹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라임 관련 펀드를 판매한 주요 증권사 3곳에 대해 징계를 통보한 데 이어, 이달 중 우리은행ㆍ신한은행 등 주요 판매 은행에 대해서도 징계를 진행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미비를 이유로 CEO에 대한 직접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회사에 대한 징계는 매달 두 차례 열리는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확정된다. 이번달은 각각 15일과 29일 오후 2시 예정돼있다. 징계가 사전 통보된 증권사 3곳에 대한 징계는 오는 29일 위원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29일 제재심에서 징계 수위가 확정되는 CEO는 KB증권 박정림 현 대표ㆍ윤경은 전 대표, 신한금융투자 김형진 전 대표ㆍ김병철 전 대표, 대신증권 나재철 전 대표다. 라임펀드가 집중 판매된 2018년부터 2019년 사이 업무를 총괄했던 CEO들이 대상이 됐다.

      금감원이 통보한 CEO 징계 수위는 '직무정지'다. 최고 수위인 해임 권고 바로 아래의 중징계다. 이대로 징계가 확정되면 해당 전현직 CEO들은 향후 4년간 금융회사에 임원으로 취업할 수 없다. 현직 임원의 경우 임기를 마치는 것까진 가능하지만, 연임이 제한된다.

      문제는 징계 대상 회사 CEO 중 상당수가 올해 혹은 내년 초 임기 만료를 맞이한다는 점이다. 중징계를 사전 통보받은 증권사 CEO 중 유일한 현직인 박정림 KB증권 대표의 경우 올해 12월 임기가 만료된다.

      박 대표는 이달 중순 선정 작업이 진행될 차기 KB국민은행 행장의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지만, 중징계 대상에 편입되며 행장 후보 선정에 포함될 지 여부조차 미지수인 상태다. KB금융 내부에서도 징계안 통보 이후 박 대표가 행장 후보에 포함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감원이 지난 6~7월 라임사태 관련 현장조사를 진행한 신한은행의 진옥동 행장도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진옥동 행장의 경우 2019년부터 2년의 초임 임기를 끝내고, 연임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이달 중 통보될 금감원의 징계안에 CEO 중징계안이 담긴다면, 연임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하나은행은 코로나19사태 등으로 인해 금감원 검사가 미뤄졌다. 이르면 이달 중 검사가 시작된다. 타 판매사보다 다소 징계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라임 펀드가 판매된 기간 동안 하나은행장을 맡았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올해 12월 임기가 끝난다. 2019년 3월부터 재임한 지성규 현 하나은행장은 내년 3월까지가 임기다. 징계 시기와 수위에 따라 연임 여부에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이들 금융회사들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 노력이 징계안에 전혀 반영이 안됐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분쟁조정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제시한 100% 배상안을 받아들였고, 사후 복구를 위한 가교운용사 설립에도 참여했는데도 금감원이 CEO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완강한 입장이지만, 여전히 CEO에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내리는 것에 대한 법적 근거는 희미하다는 게 금융권의 반응이다. 금감원이 징계 근거로 내세운 조항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제24조 '금융회사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여야 한다' 정도여서다.

      CEO의 책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명문화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비슷한 상황에서 중징계인 문책경고 통보를 받은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법정에서 금감원과 다투고 있다. 지난 3월 임기가 끝났던 손 회장은 징계에도 불구, 법원에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며 3년 연임을 확정했다. 함영주 부회장 역시 지난 6월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징계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이들은 징계 취소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금감원이 중징계를 사전 통보하면 해당 임원은 곧바로 사임하는 게 관례였다. 윤석헌 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무리하게 CEO까지 엮어 징계를 강행한다'는 불만이 속출했고, '법원의 판단을 구해보겠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법원이 금융회사측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잇따르며 '징계-불복-소송'의 현 구도가 자리잡게 됐다.

      상황이 이런만큼, 현재 징계 물망에 오른 CEO들 역시 이런 구도를 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금융회사들 입장에서도 금감원과 갈등의 수위를 높여가는 게 편치많은 않은데다, 제재심 심의 후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사전 중징계안이 경징계로 완화되는 전례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라임 사태 감독 책임을 피하기 위해 국정감사를 전후로 CEO 중징계안을 통보하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인사의 최대 변수가 금감원이 되며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