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금리 장기화 "日과 차이 안 나"
과거 태도완 달라…제 값 받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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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OSB저축은행, JT저축은행 등 일본계 저축은행들이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국내 대부시장을 주름잡던 일본계 대부업체들도 속속 대출을 중단하는 추세다. 2010년대 초만 해도 앞다퉈 국내 진출에 나섰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3%포인트 넘게 차이나던 양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며, 더 이상 일본에서 자금을 조달해 한국에 투자 또는 대출하는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도 우량하지만은 않아 투자회수(Exit)가 쉽지는 않을 거란 예상이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일본계 자금은 잇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서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먼저 일본계 저축은행의 매각 타진이 눈에 띈다. 지난해 일본 금융그룹 오릭스코퍼레이션(ORIX Corporation)의 계열사인 OSB저축은행과 J트러스트(이하 제이트러스트)그룹의 계열사 JT저축은행이 이에 해당한다.
일본계 대부업체도 엑시트(Exit)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산와머니와 조이크레디트대부 두 곳이 대출을 일부 중단하고 있다. 올해 6월 금융감독원은 2019년 말 기준 대부업체의 대출잔액이 15.9조원으로 당해 상반기 대비 0.8조원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부업 시장이 위축되는 이유에 대해 3월부터 일본계 대형대부업자가 영업을 중단한 여파라고 설명했다.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는 건 사실상 영업 중지와 자금 회수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일본계 자금인 산와머니와 조이크레딧대부 두 곳에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라며 "일본계 자금이 유동이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나가있는 대출을 변제받고 추징만을 하는 상황이며 심지어 두 곳은 각각 국내 1위, 5위 대부업체다"고 말했다.
일본계 자금이 국내에서 철수하려는 현상은 일본과 한국의 금리 차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의 기준금리는 3.25%에 달했다. 당시 일본 기준금리는 0.09%대였다. 일본에서 자금을 조달해 한국에서 운용하면 짭짤한 수익이 나는 구조였다.
지금은 한국의 기준금리가 코로나19 사태와 이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으로 인해 0.5%까지 내려와있는 상태다. 일본은 현재 마이너스(-) 0.1%를 유지 중이지만, 양국의 금리 격차는 3.1%포인트에서 0.6%포인트로 5분의 1 수준이 된 상황이다.
한 저축은행 관련 업계 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해서 애당초 일본계 자금이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 들어온 것도 아니다"라며 "국내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일본과의 금리 격차가 좁혀지자 일본계 자금이 철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계 금융그룹이 국내 저축은행에 큰 관심을 가지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특히 일본계 금융사인 제이트러스트는 3년 동안 국내 금융사 6곳을 인수한 바 있다. 이들의 국내 시장 진출 욕구를 엿볼 수 있는 사례는 하나로저축은행 매각 건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저축은행이 고초를 겪은 2010년, 저축은행중앙회는 NPL 규모가 600억원에 달하는 아주저축은행(前 하나로저축은행)을 인수한다. 이를 되팔기 위해 저축은행중앙회는 제이트러스트와 아주캐피탈에 매각을 타진했다. 제이트러스트 소속 일본인 회계사는 '우리에게 팔면 모든 우려를 해결해주겠다'며 적극 나섰다는 후문이다.
당시 국내 기준금리가 높았던 까닭에 적극적 공세를 펼쳤을 것이란 평가다. 2010년엔 국내 기준금리가 인상 추세였다. 반면 일본은 엔저 현상이 지속됐다. 실제로 일본 현지에서 최저 연금리 1%대 자금 조달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2014년 기준 국내 대부업 상한금리는 30%대로 일본보다 20%포인트 가량 높았다.
다만 일본계 자금이 본전 이상을 회수해 철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해 매각에 나선 OSB저축은행도 지분 매각을 추진하려 했으나 제 값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매각 작업을 중단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저축은행 업계 전반적으로 자산건전성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은 코로나19 이후 서민 금융 최전선에서 뛰고 있어 자산 부실을 잘 살펴야 하는 상황인데다, 저금리가 장기화된 만큼 과거와는 업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라며 "건전성 관리가 안 되면 결국 중앙회가 업계 돈으로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불상사가 또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본계 금융그룹이 급하게 저축은행을 매각할 유인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오릭스나 제이트러스트 같이 큰 곳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제 값을 못 받고 손해보면서까지 빨리 팔고 나갈 유인이 없다"라며 "코로나19라는 악재가 껴 위험이 높아지긴 했어도 그 영향이 두드러지게 저축은행을 훼손하는 모습은 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JT저축은행 측도 일본계 그룹 자금 엑시트 차원에서 매각을 타진하는 것은 아니란 입장이다. JT저축은행 관계자는 "일본 쪽에서 자금이 들어온 건 인수자금이나 증자 부분이고, 나머지는 저축은행이라 수신기능이 있다"라며 "현재 제이트러스트는 합병을 전제로 저축은행 두 곳을 운영했으나 불가능해졌고 코로나19로 그룹 내 동남아시아 계열사 쪽이 영향을 받은 것이 매각 사유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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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0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