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룰'보다 무서운 '소수주주권 선택제'...주총 지형 바뀐다
입력 2020.10.22 07:00|수정 2020.10.23 09:26
    6개월 보유 의무 없는 일반요건 선택 가능
    2004년 대법원 판례에도 판결마다 엇갈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불가능했을수도
    국내 소수주주권 제약도 사실...영향에 관심
    • '소수주주권 선택제'가 이번 상법 개정안 논란의 핵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 정치권의 논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이하 3% 룰)에 집중되고 있지만, 그보다 후폭풍이 클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현행 상법이 지난 2015년에도 시행되고 있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무산됐을 가능성이 생긴다. 한진칼에도 KCGI측 이사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을 수 있다.

      정부안대로 상법이 개정된다면 사모펀드로 인한 기업 경영권 분쟁이 더 잦아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물론 그간 국내 소수주주권 행사가 지나치게 제약됐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달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에 그간 해석상 논란이 있었던 '소수주주권의 행사요건'을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소수주주권을 행사하는 주주가 어떤 조항에 의거해 주주권을 행사할 지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소수주주권은 상법 일반조항(제363조의2)과 상법 내 상장회사 특례규정(제542조의6항)에 각각 별도로 규정돼있는데, 특례규정의 경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이 더 적은 대신, 6개월의 의무 보유 기한을 부여하고 있다.

      두 규정의 차이 때문에 '6개월 이상 지분 보유'가 필수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2004년 대법원이 '둘 중 하나의 조건만 충족해도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한 뒤로 논란은 더 격해져왔다.

      특례규정이 우선이라는 측은 대법원의 판례가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상법 제542조의2항2호는 특례규정을 '다른 절보다 우선해서 적용한다'고 규정한다. 상장회사의 경우 일반조항보다 특례규정을 먼저 적용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일반조항도 적용할 수 있다는 측은 대법원의 판례가 소수주주의 권리를 더 폭넓게 인정한다며 법의 취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정부 개정안은 특례규정에 '다른 절에 따른 소수주주권의 행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는 구절을 추가했다. 일반조항으로 소수주주권을 행사해도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2004년 대법원의 판결과 맥락을 같이 한다.

      문제는 이번 개정이 불러올 파급효과다.

      만약 이 조항이 있었다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무산될수도 있었다.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은 두 회사의 합병 주주총회를 열지 말고, 결의도 하지 말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은 엘리엇이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하지 않아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1심과 2심 모두 같은 판단이었다.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 중 특례규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당시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7.1%였다. 만약 상법상 일반조항에 따른 소수주주권 행사가 인정됐다면, 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를 아예 열지 못하도록 판결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셈이다.

      지난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KCGI측의 주주제안도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을 수 있다. 당시 10.8%의 지분을 보유했다고 공시한 KCGI 연합측은 조재호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와 김영민 변호사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김칠규 이촌회계법인 회계사를 감사로 선임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올렸다.

      당시 KCGI측의 주주제안은 아예 주주총회에 상정되지조차 못했다. 안건 상정 여부를 둘러싼 가처분신청에서 1심 서울중앙지법은 2004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주총 안건으로 올리라고 판결했지만, 2심의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소수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게 판결의 이유였다.

      현 상법 개정안을 적용하면, KCGI측 이사 선임안 역시 주주총회에서 표결로 다뤘어야 했던 셈이다. 만약 당시 KCGI측 사외이사와 감사가 한진칼 진입에 성공했다면, 현재 한진그룹의 경영권 구도는 향방을 알 수 없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간 학계 일각에서는 국내 상법이 소수주주권 행사요건을 지나치게 세분화해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에 보유 기간을 명시한 곳은 주요국 중 일본 한 곳 뿐이고, 그 중에서도 주주제안권에 대해서만 6개월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상당수 주요국이 회계장부열람권과 주주대표소송을 단 1주만 보유해도 행사할 수 있는 단독주주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소버린펀드(SK)와 엘리엇펀드(삼성ㆍ현대차)를 경험한 국내 재계 입장에서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이 다양해지는 건 꺼림직한 일"이라면서도 "그간 국내 소수주주권 행사 횟수가 다른 주요국에 비해 적었던 건 사실이고, 주주행동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있어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칠 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