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사태, 자산관리 시장 '바다이야기' 될까...숨 죽인 금융사들
입력 2020.10.22 07:00|수정 2020.11.06 17:32
    규제 미비ㆍ정관계 의혹 등 2006년과 닮은 꼴
    당시 규제 강화는 국내 게임 산업 말살하는 결과
    시행도 안된 금소법, 벌써 규제 강화 개정 움직임
    자산관리 시장 한동안 어려움 불가피
    •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펀드 시장, 나아가 자산관리 시장의 '바다이야기' 사태가 될 것이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는 규제 미비에서 시작돼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번졌고, 이후 10년간 국내 아케이드 게임기 산업을 말 그대로 '말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앞선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블랙스완(극단적 예외)에 따른 손실과 이를 수습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탈법적 사고였다면, 옵티머스 사태는 처음부터 서류조작과 불법투자로 점철된 악의적 금융사고였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어떤 감시ㆍ감독 절차도 작동하지 않았고, 이는 곧 수천억원대 금융 피해로 이어졌다.

      이에 강력한 규제 보완책이 잇따라 예고되며, 자산관리 시장에 '암흑기'를 예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0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핵심 주제는 옵티머스 사태였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물론,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의 정영채 사장도 국감장에서 질타를 받았다. 아직 조사조차 시작되지 못한 관련 의혹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졌다.

      이를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자산관리 시장이 최소 5년 이상 깊은 침체를 거칠 것이며, 이후 회복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란 전망이 많다. 고위험 상품은 물론, 중위험 상품 판매까지 위축되며 금융회사도, 금융소비자도 모두 만족할 수 없는 '포스트 옵티머스 시대'가 펼쳐질 거란 암울한 시각이다.

      당장 대부분의 은행들은 성과지표(KPI)와 내부통제 시스템을 뜯어고쳐 초고위험 투자자인 1~2등급 상품 판매 억제에 나섰다. 이제는 고위험 상품을 팔면 팔수록 해당 직원의 평가 점수가 깎이는 구조다. 시장 수익률을 따라가는 인덱스 펀드, 고신용등급 단기채 등 리스크가 적은 상품만 살아남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후 당분간 사모 상품은 프라이빗뱅커(PB) 중심 자산관리 영업망이 강한 일부 은행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상품 심사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사모 상품의 생명과 같은 '즉시성'이 사라져 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NH투자증권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정영채 사장은 '상품 판매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적극적으로 연루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국감장에서 거의 공범으로 몰리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옵티머스 사태를 두고 크게 책임을 추궁했다는 언급도 흘러나온다. 옵티머스 투자자들에게 '보상' 대신 '유동성 지원'(대출)을 하기로 한 선택은 주주들로부턴 지지를 받았지만, 대외 이미지엔 그리 좋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증권가도 함께 가슴을 졸이고 있다. 옵티머스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 지금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크고 작은 상품의 환매 중단 이슈가 터져서다. 라임 펀드도 옵티머스 펀드도 기존의 제도권 상품 선별 시스템을 통과한 상품들이었다. 다른 유사 사태가 또 어디서 터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감독 소홀의 책임을 추궁받고 있는 금융감독원이 증권사를 비롯한 판매사들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증권가로 불똥이 튀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특히 이달 초 KB증권 등 일부 증권사 최고경영자가 직무정지 급의 중징계 통보를 받으며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까지 커진 상황이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일부 문제가 생긴 상품에 대해 내부 점검을 해보니 상품 소싱(sourcing;선정) 단계에서 절차상 하자나 불법적인 부분이 없었다"며 "금감원이 주장하는 건 '왜 그 상품이 사기일수도 있다고 대표이사가 의심하지 않았나'에 가까운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합리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현 상황에서 금융권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규제 강화가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변수는 규제의 수위다. 옵티머스 사태가 정치권 이슈로 번지며 금융회사는 거대 악(惡), 투자자들은 선의의 피해자라는 구도가 형성됐다. '악을 처단하자'는 방향으로 설익은 규제가 도입되면 자산관리 시장, 더 나아가 국내 금융업의 장기 침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최근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규제는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다.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3월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원칙적으로 청약철회권을 보장하고, 설명의무 위반 시 손해배상소송에서 고의ㆍ과실 여부를 금융회사가 입증하도록 하며, 판매 수익금의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현행 금융관련법에선 규정하지 않은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대폭 보장하고 있다.

      금소법은 8년간 국회를 표류해왔다. 올해 전격적으로 통과된 건 사실상 DLFㆍ라임 사태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 일각에서는 금소법에 징벌적 손해배상ㆍ집단 소송ㆍ금융회사 입증 책임 확대 등의 내용이 빠졌다며 '반쪽'이라는 평가를 해왔다.

      문제는 이번 옵티머스 사태를 계기로 아직 시행도 안된 금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옵티머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던 지난 7월, 여당 측에서 손해액 최대 3배 범위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내용이 담긴 금소법을 제출한 상태다.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외에도 손해배상 청구시 판매사의 입증 책임 확대하고, 투자형 상품 손실시 판매사가 손해배상액 추정하도록 명문화하는 등 판매사의 책임을 대폭 확대한 게 특징이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판매자가 자율적으로 피해보상계획을 제출하고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내용도 담겼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금융회사 입장에선 사실상 더 이상 고수익 상품을 취급할 수 없게 된다. 사모펀드 판매 보수는 통상 100bp(1%) 안팎이다. 1000억원어치를 팔아봐야 10억원정도 남는다는 것이다. 사고가 터졌을 때 법률 대응이나 보상ㆍ배상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손해액의 3배까지 보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도입되면 더더욱 상품을 취급하는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없어진다.

      이미 주로 은행이 담당하는 수탁업에선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사모펀드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에게 '사모펀드 운용사 감독 및 보고' 의무를 요구했다. 펀드에 문제가 생기면 수탁사도 처벌하겠다는 의도로 금융권엔 받아들여졌다. 자본시장법(제249조의8)은 사모펀드에 대한 수탁사의 감시 의무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탁수수료는 보통 5bp(0.05%) 안쪽이다. 1000억원 규모 펀드를 수탁하면 5000만원 정도 수익이 생긴다. 보수 대비 감당해야할 책임이 커지자, 법에도 없는 의무를 요구받자 은행들은 일제히 수탁업무를 거절하고 나섰다. 수탁사를 구하지 못해 펀드 설정이 무산되는 경우까지 생기는 상황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옵티머스 사태를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와 비교하기도 한다.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날림 심사와 규제 미비로 인해 전국 곳곳에 사행성 도박장이 들어섰다. 사회적 문제로 번지며 국정감사의 핵심 주제가 됐고, 정관계 로비ㆍ유착설로 번지며 정치 쟁점화됐다. 이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출범하고 게임산업진흥법이 개정되며 국내 게임 시장은 이후 10여년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옵티머스 사태 역시 사모펀드 활성화로 인한 필수 규제 미비와 금감원의 감독 소홀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정관계 로비설이 등장하며 정치쟁점화한 부분도 똑같다. 게임산업진흥법인 산업을 쇠퇴시켰듯, 금소법이 확대 적용되면 금융업 역시 한동안 어려운 길을 걸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향후 진정한 의미의 사모펀드 시장이 만들어지려면 고액자산가가 사적 계약을 통해 자유롭게 펀드 투자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고, 문제가 발생하면 펀드와 투자자가 민사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지금처럼 국가가 개입해 분쟁을 조정하고 기관투자가들도 투자 손실을 보상받는 구조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