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묶인 동학개미…유동성 장세 끝에서 기다리는 기관과 外人들
입력 2020.10.23 07:00|수정 2020.10.26 11:31
    실적은 바닥, 증시는 최고점
    상장사 소액주주 90% 급증
    대주주 요건 강화, 대출 규제에 묶이는 개인들
    개인 자금 이탈에 예의주시하는 기관들
    • 개인투자자들이 만들어 낸 강력한 유동성 장세는 코로나 사태가 무색하게 국내 증시의 가파른 상승을 이끌었다. 친환경·바이오 등 아직은 실적을 장담할 수 없는 테마주에 자금이 집중됐고, 일부 종목들에선 개인투자자의 자금 흐름이 기관투자가를 압도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러나 3년 내 최고점을 향해 치솟는 국내 증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감돈다.

      신용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 대주주 요건을 강화하려는 규제에 개인투자자들의 자금 이탈은 점차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외 불확실성이 상당히 커진 상황에서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집행은 보수적으로 변했다. 증시를 떠받쳤던 개인투자자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코로나 사태의 여파가 기업들의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시점부터는 국내 증시가 상당히 긴 시간의 조정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 각각 14%, 31% 상승했다. 코로나 사태가 심화하기 시작한 올해 초까지만해도 각 증권사들이 연말 코스피 지수 2100~2200선을 예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국내 증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같은 기간 25조원가량을 매도했다. 기관투자가들의 국내 투자 또한 큰 폭으로 감소했다.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기업 실적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는 최고점을 향해 치솟았다. 국내총생산(GDP)대비 시가총액 비중 또한 기존의 고점에 근접했다. 현재의 증시는 결국 개인투자자들이 만들어 낸 유동성의 힘에 기반한 '착시 효과'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테마주'에 집중됐다. 실체가 모호한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 발표에 따른 관련 기업들, 코로나 사태로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던 제약·바이오 주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와 같은 초대형 우량주에는 개인투자자에 기관까지 가세하며 전반적인 상승장을 연출됐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기업들의 사업이 정상화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기업들의 실적에 코로나 사태가 완벽하게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유동성 장세가 지속한다면 국내 증시의 성장세를 기대해 볼만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정부는 주식거래 관련세를 인하하면서 주주들의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즉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의 요건을 기존 10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에서 3억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로 강화하는 조치다.

      올해 연말을 기준으로 한 종목에 대해 3억원 이상을 보유하면 대주주로 분류되고, 시행령이 적용되는 내년 4월 이후 주식을 팔면 차익의 22~33%를 양도세로 납부하는 형태다. 2017년 이후 대주주 요건은 25억원에서 매년 5억원씩 인하하며 꾸준히 조정돼 왔다. 3억원의 요건 자체가 상당히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정부는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가총액 1~100대 상장사(10월 8일 기준) 중 소액주주 현황을 공시한 23개 기업의 지분율 1% 미만 소액주주의 수는 평균 90% 가까이 늘어났다. 대주주 요건을 피하기 위해 소액주주들은 매년 연말 대거 주식을 팔아치우는 형태를 나타내 왔는데, 소액주주가 급격히 늘어난 올해엔 개인투자자 이탈에 대한 충격이 더 클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개인투자자 가운데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투자자도 포함돼 있다. 개인적인 금전관계로 차용증을 써주고 주식 운용 수익의 일부를 이자 명목으로 지급하는 형태의  이른바 '무늬만 투자회사'도 존재한다. 개인투자자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사실은 일부 종목에선 큰 손에 가까운 투자자인데 대주주 요건이 강화하면서 이 같은 형태의 자금 이탈도 우려된다. 또한 ‘빚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급격히 늘어난 가계 신용대출에 대해 정부가 경고등을 켠 상태이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자금 이탈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개인투자자의 자금이탈에 대해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인들이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 지속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 자금 이탈은 여느 때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수와 연동해 투자를 집행하는 패시브(Passive) 형태의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액티브(Active) 투자의 수익률이 높았다. 국내 액티브 펀드들은 급격한 상승이 두드러졌던 일부 종목들에 대한 투자로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테마주, 특정 종목 위주의 투자에 집중했던 일부 개인투자자들도 마찬가디다. 반대로 기업의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한 가치주 투자, 지수에 연동하는 패시브 투자는 상당히 고전했다.

      국내 증권사 한 주식운용 담당자는 “기업의 펀더멘탈보다 테마와 이슈에 집중한 투자 전략을 구사한 기관 및 개인들이 올해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고, 수급이 중요한 화두가 된 시장이기 때문에 증시에 대한 전망은 더욱 어려워졌다”며 “유동성 장세가 다소 사그라들면 기업들의 본모습에 집중하는 투자 전략이 주목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개인투자자들의 유동성 버블은 다소 사그라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SK바이오팜 그리고 카카오게임즈 기업공개(IPO)에서 개인들은 엄청난 유동성을 증명했다. 그러나 올해 마지막 초대형 IPO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상장 첫 날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정 반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대감이 사업적 실체를 압도하는 일명 성장주에 대한 거품이 조금씩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가치주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것이란 평가도 있다. 다만 올 연말까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이슈가 지속하고, 대선 전까지 미국 정부의 파격적인 경제 정책이 발표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한 연말까진 현재 수준에서 박스권 장세를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이미 외국인들과 기관투자가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내년 미국과 유럽을중심으로 각 국가들이 유동성 회수 움직임을 나타내기 시작할 경우 유동성의 버블이 쉽게 꺼질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연기금들도 마찬가지로 국내 증시의 조정 국면에 대비해 자금을 비축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개인투자자들이 만들어 낸 유동성 장세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개인들이 짊어지게 되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