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히트 개미' 반발에 "급락 배경 조사"
"포퓰리즘 판 치는 국내 증시 우려된다"
-
"이번 정부는 자본시장을 오히려 활용을 하면 했지 키우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듯 하다. 이대로 가다간 해외 투자자들도 한국자본시장을 외면할까 두려울 정도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
국내 증시가 포퓰리즘 정책의 시험장으로 치닫고 있다. 두 달 전의 공매도 금지 기간 연장은 시작에 불과했다. 개미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고 특정 종목을 조사하고, 수년 전부터 정해진 대주주 요건 변경안에 갑자기 제동을 걸고 있다.
손바닥 뒤집기식 정책 남발에 국내 증시의 예측 가능성은 점점 떨어지는 모양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최근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장 이후 주가 급락에 대해 배경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빅히트 상장 이후 주가가 급락하며 상장 초기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안았고, 일각에서 주식 환불 요청이 이어지는 등 성화가 거세진 게 배경이다.
증권가에서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상장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했다고 '불공정 거래'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빅히트의 현재 주가는 15만원 안팎으로 공모가(13만5000원)를 여전히 웃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본 일부 개인들은 빅히트 주식을 환불할 순 없냐고 증권사에 이의를 제기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빅히트 주식을 환불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와서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개인들의 성화가 거세지자 거래소가 나서 빅히트 주가 하락의 이면을 살피겠다고 밝힌 것이다.
기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빅히트 공모 수요예측 당시 기관투자자들은 공모 물량을 덜 받는 한이 있더라도 의무보유확약(락업) 기간을 아예 걸지 않거나 짧게 걸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빅히트 공모가 산정 방식을 보니 SM은 포함도 안 돼 있고 네이버와 카카오를 포함해 굉장히 고밸류라고 판단했다"라며 "이에 따라 기관들이 빅히트 IPO에는 락업을 길게 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이건 특이한 현상도 아닌, 일반적인 모습이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오히려 수요예측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수요예측 제도를 바꿔야 상장 이후 주가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라며 "미국에선 일반투자자들의 피드백이 들어간 자료를 바탕으로 가격을 매기는데 우리나라는 투자자와 아무런 이야기 없이 예비청구를 하니 잘되면 주가가 위로 상향하고 잘 안 되면 크게 하향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
빅히트 공모에 앞서서는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투자 기회를 확대하겠다며 개인에 대한 기업공개(IPO) 공모 배정 물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결국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불과 2년 전까지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겠다며 개인 배정 비중 축소를 검토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움직임이었다. 공모주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배정 물량을 줄여 간접ㆍ분산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난 20년간의 상식마저 뒤집힐 뻔한 것이다.
현재 증시의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로 꼽히는 대주주 요건 강화 역시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당초 2021년부터 대주주 기준을 동일종목 3억원 이상 보유 주주로 강화하는 방안은 2017년 도입됐다. 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안부터 대주주 요건 강화를 통해 증시에 더 무거운 과세를 하려는 의지를 보여왔고, 현재 과세 구조의 틀을 잡은 건 지난 2017년 세법 개정안이었다. 이 개정안에서 순차적인 요건 강화를 통해 2021년 3억원 이상 대주주 과세라는 대원칙이 세워졌다.
이 개정안은 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발의됐고, 같은 해 12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큰 반대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여당은 이 때와는 정 반대로 대주주 요건 강화를 일단 유예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만간 당론으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올해 6월 정부는 주식, 파생상품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을 금융투자소득으로 묶어 과세하는 내용의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을 논의한 바 있다. 일부 개인들도 추가로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셈이다. 당시 정부가 증시 유동성을 놓치지 않고 과세하려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원칙 없이 그때 그때 여론에 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증시 반등의 가장 큰 원인은 '유동성 효과'가 꼽힌다. 올해 5월말 기준 부동자금 규모는 약 1310조원으로 올해 1월 말보다 약 142조원 증가했다. 지난해 부동자금은 약 69조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모습이다. 부동자금은 차익실현 목적의 시장 대기성 자금으로 개인들의 순매수와 투자자 예탁금이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개인 수급 덕에 증시 회복을 회복하기도 했고 덕분에 국내 증시 상승 폭도 주요국 중 높은 편으로 기록됐다"라며 "다만 이번에 빅히트 주식 환불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개인투자자 증가의 '암'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