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피할수록 돈 된다…법무법인들 제약 전문가 영입 분주
입력 2020.11.10 07:00|수정 2020.11.11 09:42
    대형 로펌들, 최근 심평원·복지부 출신 전문가 영입 분주
    글로벌 제약사, 건강보험 피하거나 약가인하 늦춰야 유리
    대형 법무법인들 소송 지연 기간 따라 성과보수 받기도
    • 대형 법무법인들이 제약 전문 인력 영입에 분주하다. 자문료가 후한 글로벌 제약사들은 건강보험 체계에 편입돼 약값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법무법인의 조력을 받아 협상을 늦추면 그동안 비싼 약값을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들은 지연 기간이 곧 성공보수다.

      김앤장은 지난달 광장에서 글로벌 제약사 출신 변영식 수석 전문위원을 영입했다. 변 수석은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등에서 오랜 기간 약가 업무를 담당하다 2018년 광장에 영입된 바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글로벌 제약사 출신 고문들이 많은 김앤장은 변 위원을 영입하며 업계 최고 수준 대우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장은 유희상 전 식약처 의료기기관리과장을 고문으로, 세종은 건강보험 급여정책 전문가인 이동욱 전 보건복지부 실장을 영입했다. 율촌은 올 상반기 허나은 변호사(전 보건복지부 법률전문관)를 영입하며 헬스케어 부문 강화에 나섰다.

      대형 법무법인들이 제약·헬스케어 부문 전문가 영입에 분주한 것은 글로벌 제약사들로부터 일감을 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보다는 복제약(제네릭)에 특화돼 있고, 약값도 건강보험 급여와 연계돼 책정되고 있다. 굳이 보건복지부와 척을 지거나 무리하게 약값을 올리려 할 의지가 크지 않다.

      외국계 기업들은 다르다. 신약을 주로 개발하고 이 약의 효과가 클 때 높은 가격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심평원의 심사를 거친 후 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을 해야 하는데, 공단은 구매력은 크지만 신약에 후한 가격을 쳐주지는 않는 편이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선 싸게 많이 파느냐, 혹은 건강보험 체제에서 제한된 약값을 받느냐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약가가 다른 나라의 참고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만 약값을 싸게 주기도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과 협상을 하지 않고, 환자들의 약값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도 생긴다.

      약가 인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행 제도상 약가 인하는 오리지널 약의 특허기간이 만료되거나 허가사항이 바뀌는 등 요인이 있을 때 이뤄진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 결정에 대해 행정 소송을 제기하거나 집행정지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최종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인하된 가격이 아닌 기존 보험급여대로 약값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소송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지만 제약사들은 그동안 충분한 이득을 취하는 셈이다.

      법무법인 입장에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두면 글로벌 제약사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다.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제약사들은 더 많은 돈을 쥐게 된다. 다른 신약이 개발되고 소송 대상 약품의 지배력이 약화하는 시기가 되면 소송에 지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다. 법무법인들은 시간을 얼마나 끄느냐에 따라 성과보수를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선 약가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매출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법무법인들도 글로벌 제약사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약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거나 소송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전문가들을 영입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