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인수 4년, KB금융은 그간 대체 뭘 했나
입력 2020.11.12 07:00|수정 2020.11.13 14:50
    라임 사태 곳곳서 '현대증권' 이름 보여
    윤경은 전 대표가 지시...실무자도 현대 출신
    KB금융 인사 시스템이 각자대표 선택한 결과
    CEO 어떻게 바꿀까...윤종규 회장 선택은
    • KB증권 사상 초유 현직 대표이사의 중징계는, 결국 우유부단했던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통합(PMI)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보여진다.

      실적에, 그리고 연임에 목말랐던 현대증권 출신 최고경영자인 윤경은 전 대표는 실무진을 닦달해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단독 출시했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최고경영자인 박정림 대표는 하필 증권 문외한이었다. 그렇게 4년만에 통합 KB증권은 그룹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

      이번 사태의 곳곳엔 '현대증권'의 이름이 남아있다.

      KB증권은 라임자산운용 상품을 571억원어치 판매했다. 전액 '라임AI스타 1.5Y' 사모투자신탁 상품이었다. 이 상품은 '메가히트 상품을 만들라'는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판매사 창구를 늘리기 위해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던 라임자산운용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라임AI스타'의 '스타'는 KB금융의 시그니쳐인 '스타'에서 따왔다.

      윤 대표가 상품 개발을 지시한 시기는 2018년 하반기였다. 2017년 통합법인 출범시 각자대표로 선임돼 2018년 한 차례 연임하고, 다시 연임 가능성 타진하던 시기였다. 2018년 연임의 핵심 사유로 30% 이상 성장한 실적이 꼽혔던만큼, 재연임을 위해 당시 자산관리(WM)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상품이었던 사모펀드 판매에 욕심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라임AI스타의 판매수수료는 1.5%에 달했다. 571억원을 판매해 9억원에 가까운 판매수익을 얻은 셈이다. KB증권은 라임자산운용에 총수익스왑(TRS) 대출을 통해서도 2018년 한 해에만 17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라임 TRS 대출 실무책임자였던 김 모 델타원솔루션팀장은 윤 대표와 같은 현대증권 출신이었다. 김 팀장은 라임펀드 연루 혐의로 구속된 임 모 신한금융투자 전 본부장과 우리투자증권 재직 시절 함께 근무했으며,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와 연세대 동문으로 같은 재무연구학회(YFL) 활동 이력이 있다.

      2019년 WM 총괄로 부임한 박정림 대표는 연임에 실패한 윤 전 대표가 구축해둔 시스템에 아무런 손을 대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박 대표가 부임 직후인 2019년 초 라임 상품의 손실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상품 판매를 막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라임AI스타는 박 대표 부임 후인 2019년초에도 판매됐다.

      박 대표가 은행 부행장에서 증권사 사장으로 발령나며 지주로부터 받았던 핵심 임무 중 하나가 '조직 통합'과 '인사 쇄신'였다. 윤 전 대표의 영향으로 여전히 남아있던 현대증권 문화를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효율화하라는 주문이었다.

      이뤄진 것은 없었다는 게 전현직 KB금융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그리고 그 결과 박 대표는 윤 대표와 현대증권 인력들이 남긴 '라임'이라는 폭탄을 떠안아버렸다.

      일각에서는 은행 출신인 박 대표가 라임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있었는지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이 1.1~1.2% 수준이었던 상황에서 목표 수익률 6%에 1년6개월 만기의 '안정적인' 고정수익(Fixed Income) 상품이 가능했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비판의 화살은 KB금융의 인사 시스템으로 향한다. 라임 사태의 책임에서 지주가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KB금융은 통합 직후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비효율적인 각자대표 정책을 2년이나 고수했다. 내부가 곪아터지자 그제사 은행 출신의 '낙하산'을 내려보냈다. 여전히 KB증권 내부에는 KB투자증권 출신, 현대증권 출신, 외부 영입 출신이 따로 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비슷한 시기 더 큰 매물을 인수해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를 받은 미래에셋대우와 비교하면 KB금융의 관리 실패는 더욱 명확해진다.

      현재 미래에셋대우에선 '대우증권'의 자취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너 경영인인 박현주 회장의 입지가 절대적인데다, 2인자인 최현만 수석부회장이 경영관리부문을 틀어쥐고 강력한 통합 정책을 실행했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은 대신, 외부 영입 인재도 성과만 내면 파격적으로 승진시켜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번 금감원 제재심에서 KB증권은 현직 대표 두 명이 모두 징계를 받았다. 박 대표는 문책경고를 받아 확정시 연임이 쉽지 않다. 기업금융(IB) 부문을 담당하는 김성현 대표는 경징계인 주의적경고를 받았다. 두 대표는 모두 올해 말 첫 2년 임기가 끝난다. 최고경영진 교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KB금융은 조만간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KB증권 대표 후보를 추천할 예정이다. 전통적으로 11월 중 첫 회의를 열고 12월 중순 차기 대표를 확정한다. 이 위원회는 윤종규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종규 회장의 4년 전 각자대표제 선택이 지금의 KB증권을 만들었다. 이제 윤 회장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새 인물을 어디서 영입할까. 아니면 감독원 경고를 받은 인사들을 다시 기용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