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철 금투협회장이 보여준 증권업계의 '얄팍한 책임감'
입력 2020.11.13 07:00|수정 2020.11.16 13:37
    우리도 피해자 주장 반복...금융권서도 '피로감'
    리스크 관리 책임 안 진 정황 곳곳서 포착
    "수백억 이익 냈으면서 피해자 행세 지나쳐"
    • 반복되는 '피해자론'과 수장급의 책임 회피에 라임자산운용 사태를 둘러싼 '증권사 동정론'이 힘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라임 펀드 판매와 총수익스왑(TRS) 계약으로 수백억대의 수익을 챙겨놓고선, '우리도 몰랐다, 피해자다'라고 주장하는 증권업계의 목소리에 운용업계를 비롯한 주변 업계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라임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에 대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 결과가 나온 직후, 증권가에서는 부당한 결정이라는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금융투자협회의 반응이 대표적이었다. 금투협은 11일 "이번 징계 권고는 금융기관(증권사) 직무 정지이며 금융투자협회는 금융단체이자 민간 유관기관"이라며 "협회장 업무를 중단하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냈다. 나 회장이 2022년말까진 임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전 대신증권 대표이사로, 이번 제재심에서 직무정지의 중징계를 권고받았다. 대신증권은 대표적인 라임 펀드 판매사 중 한 곳이다. 나 회장은 2012년 대신증권 대표로 취임해 2019년 12월까지 근무했다. 라임펀드 설계부터 판매까지 모두 나 회장의 대신증권 대표이사 임기 중 이뤄졌다.

      이를 두고 제재 당사자가 아닌 다른 금융권 전반에서는 '후안무치'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과가 어찌됐든 증권사의 영업 활동 과정에서 하자가 있는 상품이 판매됐고, 수천억원대 고객 피해가 발생한 초대형 금융사고가 터졌다. 이 와중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커녕, 업계를 대변하는 금융투자협회가 "협회장의 회장직 유지는 법적으로 문제 없다"를 발표하는데 급급했다.

      엄청난 손실을 본 고객들은 아랑곳없이 업계를 대표하는 조직과 인물이 자신들의 '자리 지키기'를 먼저 챙기는 모습 자체가 국내 증권사들의 고객을 대하는 인식수준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재철 협회장이 대표를 맡았던 대신증권은 물론, 국내 증권업계 전반에 대한 비난과 불신을 강화시키는 촉매가 될 전망이다.

      게다가 그간 증권사들은 문제가 된 사모펀드를 판매하면서 통상적으로 운용사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아왔다. 운용사가 받는 운용 수수료가 일반적으로 0.5~1%대인 반면, 판매 수수료는 1.5~3%에 달한다. 라임운용 펀드 역시 평균적으로 운용 수수료는 1%, 판매 수수료는 1.5% 안팎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들은 펀드 상품 판매를 준비하며 운용사의 상품을 검증하고 리스크를 점검하는 과정을 거친다. 운용 수수료보다 비싼 판매수수료에는 상품의 구조를 점검하고 이를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하며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비용이 포함돼있다는 지적이다.

      라임 펀드가 만들어지고 팔린 과정을 되짚어보면 증권사들이 이런 책임을 다했는지부터가 의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대신증권의 경우 TRS 구조를 도입해 유사시 손실 가능성이 커진 사모펀드 상품을 처음 취급했다. 이를 3000억원 이상 판매하며 한때 '라임 펀드에 가입하려면 대신증권에 가야 한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문제가 터지자 대신증권은 상품을 주로 판매한 반포WM센터 '한 지점의 일탈'로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는 TRS 구조를 주도해서 제안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실무를 담당한 본부장은 라임운용과 공모한 정황이 포착돼 구속됐다. KB증권은 '메가히트 상품을 만들라'는 대표이사의 지시 하에 주력 상품으로 라임 펀드를 소싱(조달)해 판매했다.

      대형 증권사가 1년에 출시하는 상품은 200~500개에 달한다. 하루에 1개 이상 꼴이다. 이렇게 상품을 출시하면 꼼꼼한 리스크 분석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상품 소싱 절차 역시 의외로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타사에서 1000억원 이상 팔린 상품이면 이미 검증된 상품이라고 여겨 유치에만 집중한 정황이 금감원 조사 결과 곳곳에서 포착됐다. 이런 증권사의 내부 생리를 가장 잘 파악해 활용한 운용사가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이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라임 사태에서 어찌됐든 증권사들은 2018~2019년 2년에 걸쳐 판매수수료와 TRS 이자 등을 포함해 수백억원대의 이익을 챙겼다"며 "처음엔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면서 '나는 몰랐다'고 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증권사들의 피해자 행세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