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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실패 후 시나리오 중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큰 것이지만 최근까지 정부와 산업은행, 당사자 사이의 기류와 징후들을 감안하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 아니냔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은 12일 “여러 옵션 중에서 검토 중”이라며 인수 추진을 사실상 인정했다.
지난 7월말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실사 기간을 3개월 더 달라고 요청했다. 산업은행은 인수 의지가 없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외부 자문기관들과 접족하면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대형 항공사(FSC) 통합안도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아래 저가항공사(LCC)는 사모펀드(PEF)에,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넘기는 것이 유력한 안 중 하나로 꼽혔다.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지만 여름 이후 유관 정부 부처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면서 '빅딜’이 정말로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늘었다.
최근 한진그룹을 둘러싼 분위기는 묘했다. 해운 물동량이 폭발하고 운임이 치솟으면서 HMM(현대상선)이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한진그룹엔 동정론이 일었다. 정부의 판단 실패로 국내 1위 해운사를 날려 보내는 바람에 한진그룹의 사세가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항공 산업을 통합하려면 1위인 대한항공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한항공은 전부터 고수익 노선을 독식하길 바랐는데 아시아나항공이 눈엣가시였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 보도와 산은의 입장 표명 시기도 공교로웠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테크사 바오앤텍은 지난 9일(현지시간) 자신들이 개발 중인 백신이 90% 이상 코로나 예방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며 항공, 여행 등 죽을 쑤던 기업의 주가가 반등했다. 대형 항공사를 합쳐 여유를 벌면 그 시기가 올 때까지 버틸 여유가 생긴다. 국책은행이 지원을 나설 명분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9월 이동걸 회장이 2기 임기를 시작했지만 마땅히 내세울 성과는 없었다. KDB생명은 매각보다 재투자에 가까울 정도로 연내 정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지만 투심은 냉랭했고, 이달 들어 무산 가능성이 커졌다. 대우조선해양 M&A와 같이 절차적 문제가 있더라도 분위기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성이 커진 시점이었다.
최근 들어선 이동걸 회장이 연내 큰 발표를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기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 M&A는 이미 내년으로 넘어갔고, 쌍용자동차와 한국GM 등 문제는 해결 의지가 크지 않거나 단기간에 결론을 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거취에 가장 눈길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말, 이달 초엔 구조조정 담당 인사들이 주말에도 나와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값 후려치기’에 반발해 송현동 부지를 서울시에 팔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해왔으나, 9월 들어 서울시와 협의하기로 방침을 선회했다. 이달 26일엔 가격 합의가 이뤄질 예정인데, 대한항공이 만족할만한 조건일 것이라고 예상할 만하다. 서울시가 값을 후하게 쳐주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맡아 꾸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서울시는 내년 4월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야당 측 인사가 당선되기라도 하면 정부와 공조는 쉽지 않다. 그 전에 송현동 부지를 처리하는 편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한진그룹은 KCGI-반도건설-조현아 주주연합의 지분율이 조원태 회장 측 지분을 넘어섰고, 조 회장의 자금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진그룹은 최근 들어 부쩍 조 회장의 경영권 수성에 자신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넘기기 위해 한진칼에도 자금을 넣어줄 것으로 보인다. 주주가 된다면 ‘투자회수’가 목적인 주주연합보다는 업을 잘 아는 기존 오너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몸집도 줄여뒀다. 3일 아시아나항공은 보통주 3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 균등감자를 결정했다. 금호그룹의 반발이 적지 않았으나, 돈줄을 쥔 산업은행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려웠다. 한진그룹 입장에선 구주 인수 부담이 줄어든다. 추가 감자 추진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도 눈길을 모았다. 지난달 19일 대한항공 지분 1.1%를 더 사들였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은 일찌감치 줄여놨고, 한진칼 지분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후 대거 정리한 것과 대비됐다. 어떤 이유에서든 최근 1등 항공사 대한항공의 가치를 높이 보기 시작한 것이다.
입지가 난처해진 것은 KCGI 주주연합 쪽이다. 지분 50% 돌파를 목전에 두고 대형 변수를 맞게 됐다. 10일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은 50년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내년 ‘한진그룹 회장’ 등극을 위해 자리를 잠시 내려둔 것 아니냔 시선도 있었는데, 앞날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강력한 손해배상 조건으로 묶인 주주간계약의 실효성이 언제까지 유지될 지도 불투명하다. 주주연합은 당장 한진칼 유상증자의 당위성을 문제 삼고 있고, 앞으로 법적 절차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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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13일 17:15 게재]
입력 2020.11.13 17:19|수정 2020.11.13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