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채권 다 팔았다'...생존 위해 '주식 단타'치는 보험사들
입력 2020.11.18 07:00|수정 2020.11.18 11:45
    채권·부동산 매각으로 위기 넘겼지만 단기처방 그쳐
    건전성 지표 악화 우려해 꺼렸던 주식투자가 마지막 대안
    킥스 도입 시 높은 위험계수 책정....단타 불가피
    • #1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상장한 지난달 15일, 한 국내 보험사는 배정받은 공모주를 상장 직후 2분간 전량 매도했다. 상장 직후 주가가 최고점이 될 거라 예상하고 내린 판단이었다. 이 거래로 이 보험사는 수억원대 차익을 거뒀다.

      #2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 바이든 후보 당선이 유력해지며 전기자동차 테마가 주목받았던 이달 초, 보험사 창구로 LG화학에 3일간 130억원이 넘는 순매수가 들어왔다. 10월 이후 줄기차게 매도만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10일 LG화학 주가가 약세로 돌아서자 보험사들도 순매도로 돌아섰다. 증권가에는 "보험사들이 '테마주 모멘텀 투자'에 빠져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3 "그간 장기국채 위주로 자산을 운용해왔지만 금리가 너무 낮아 수익이 사실상 제로다. 지금 같은 장엔 결국 주식 투자인데 그렇다고 주식을 장기 보유하자니 각종 건전성 지표에 걸려 빨리 치고 빠질 수밖에 없다" (한 국내 보험사 자산운용 담당자)

      국내 보험사들이 '주식 단타 운용'에 손을 대고 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장기 국채 위주의 보수적인 운용 전략은 매력이 떨어졌고, 전체적인 자산운용 수익률이 낮아지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험 부담이 큰 주식을 오래 들고 있을 순 없기에, 자연스럽게 짧게 수익실현을 반복하는 단기 투자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채권투자 전문가라고 불려온 운용 책임자들도 휴일까지 반납하고 주식 공부에 열을 올리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의 주식 자산은 총 41조93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9조6000억원, 29.8% 증가했다. 생보사 주식 자산이 40조원을 돌파한 건 올해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기간 전체 유가증권 자산 성장률이 13%임을 고려하면, 주식 비중이 두 배 이상 많이 늘어난 셈이다.

      그간 보험사들에게 주식 투자는 일반적인 운용 전략이 아니었다. 대체로 운용자산의 5% 수준으로 그 비중이 작은 편이다. 주가 변동에 따라 자기자본이 타격을 입으면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비율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저금리가 지속되며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1.5% 안팎을 오가는 상황에서 보험사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주식 투자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주식을 장기로 보유하긴 어렵다. 신지급여력제도(K-ICS) 우려 때문이다.

      신지급여력제도를 적용하면, 보험사가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면 높은 위험계수가 책정돼 쌓아야 할 준비금이 더 늘어난다. 주식 장기 보유가 자본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변동성을 줄이고 빠르게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단기 투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때문에 보험사들은 '장기손익 안정성을 고려한 운용 전략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단타성 주식 투자로 내몰리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보험사들은 생명보험 손해보험 가릴 것 없이 최근 수년 간 채권 매각으로 줄어든 수익을 보충해왔다. 채권은 금리가 낮아질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안전자산 금리가 1%인 시점에 3~5년전 발행된 표면금리 3~4%대 채권을 매각하면 그만큼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단기처방에 그친다는 우려가 많다. 금융자산을 많이 처분할수록 안정적인 이자수익 확보가 어려운데다 국고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경신한 상황에서 수익률 낮은 채권 매입이 이차역마진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용평가사들도 채권을 매각해 수익을 보전하는 보험사들의 행태에 경고등을 켠 지 오래다.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 결국 '주식 단타'인 셈이다.

      한 손해보험사 재무 담당자는 "매일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라며 "원래도 어려웠지만 최근엔 성과보다도 하루하루 회사의 존폐 위기를 넘겼다는 데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라 토로했다. 이어 "어쩌다 단타 투자로 대박이 나면 다행이지만 매번 대규모로 수익을 낼 수도 없고 주가 변동 위험도 커 매 시간 긴장 상태다. 영업환경도 쉽지 않아 나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임원들에겐 매일이 생존 각축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