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후계구도 확립 후 주목받던 인사들의 명암
입력 2020.11.19 07:00|수정 2020.11.19 10:04
    과거 신사업 이끌던 인사들 거취 관심
    그룹 방향성 맞춘 새 얼굴에 주목
    •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들의 후계 구도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명확해졌고 그들만의 리그는 더욱 공고해졌다. 새로운 오너, 그리고 이어질 사업재편 과정에서 경영자에 힘을 실어줄 새로운 인사들은 관심 대상이다. 반면 과거 후계자의 치적을 위해 발벗고 나섰던 인사들의 명암은 엇갈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고 2016년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선임된 이후 신사업분야 가장 큰 투자 성과는 미국 하만인터내셔널 인수였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전장사업 진출에 대한 기대감, 반도체·모바일에 집중된 삼성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만 인수를 주도한 인사들 가운데 핵심은 인텔코리아 초대사장을 지낸 손영권 사장(최고전략책임자; CSO)이었다. 2012년 삼성전략혁신센터(SSIC)에 합류한 손 사장은 삼성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와 함께 삼성전자 스타트업·벤처기업 M&A와 관련한 전권을 부여 받았다. 하만 경영권 인수 이후 손 사장은 이사회 의장 자리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확장 전략은 2017년 빅딜 이후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회사 NXP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며 빅딜에 대한 기대감을 커졌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그룹 내부적으론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지속하면서 대대적인 외부 투자를 자제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과거 신사업을 주도하며 삼성그룹 혁신의 아이콘으로 주목받던 인사들의 영향력도 예년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영권 사장의 대외 행보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하만의 실적도 주춤하고 당초 기대와 달리 삼성전자와의 시너지도 가시화하지 않으면서 손 사장의 입지도 과거와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M&A의 핵심으로 손꼽혔던 안중현 사업지원TF 부사장은 지난해 유력한 승진 대상자 중 한명이었으나 사장단 인사에선 배제됐다.

      지난 2018년 이재용의 젊은피로 분류되며 신사업을 이끈 데이비드 은 사장은 삼성전자가 신설한 최고혁신책임자(CIO)자리에 처음으로 오른 인사가 됐다. 또 한명의 이재용 부회장 측근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분야 최고 권위자 세바스찬 승 교수는 올해 6월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에 선임되며 과거 주력 인사들의 행보와 배치됐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 60~70년대생 임원들이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56년생인 손영권 사장이 과거와 같은 활약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이재용 ‘회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앞서 진행할 정기 인사는 삼성의 미래 지향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활동 반경은 늘어났다. 과거의 폐쇄적인 조직과 보수적인 투자 문화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타트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톱티어(Top-tier) 기업과의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이끌었다.

      현대차 신사업의 핵심은 2017년 신설된 전략기술본부였다. 삼성전자 출신의 지영조 사장이 이끄는 전략기술본부는 동남아 그랩(Grab), 인도의 올라(Ola) 등 크고 작은 신사업에 투자하는 조직이다.

      전략기술본부가 현대차 신사업의 주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최근엔 그 위상이 조금씩 흔들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룹의 역대 최대 규모 투자인 앱티브(Aptiv)와  JV설립은 김걸 사장이 이끄는 기획조정실에서 담당했다. 최근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인수 검토 건도 전략기술본부의 성과는 아니다.

      사실 지영조 사장은 지난 3년간 투자 성과를 요구 받고 있다. 전략기술본부 내에서도 차량공유서비스, 자율주행 등 과거의 투자가 이제는 사업적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코로나 사태로 비용절감과 현금확보가 재계 제1 과제로 떠올랐는데 현대차도 예외는 아니다. 투자 성과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하는 전략기술본부와 지 사장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투자건에서는 전략기술본부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그룹에서도 신사업과 관련한 내년 투자 예산을 크게 줄였고, 과거 투자에 대한 성과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전략기술본부의 부담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의 외국인 측근 인사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각별하다. 최근 보유 주식을 모두 매도하며 신변의 변화를 예고한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 사장(연구개발본부장)은 정 회장의 계속된 만류로 그룹에 잔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올해 3월 회사를 떠난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 부사장을 재차 영입하기 위해 올 11월 CCO(Chief Creative Officer) 자리를 신설하기도 했다.

      10조원이 넘는 인텔 반도체 사업부 인수를 성사한 SK그룹의 방향성은 명확해졌다. 해당 거래뿐 아니라 SK그룹이 추가적인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미래차 시장을 겨냥해 배터리 부문의 확장을 꾀함과 동시에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나설 채비를 할 것이란 평가도 있다. SK그룹 또 하나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분야는 ‘바이오’이다. SK바이오팜의 증시 데뷔와 더불어 M&A를 통한 사업 확장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SK그룹이 수년전부터 글로벌 컨설팅 업체, 회계법인, IB 등을 비롯해 M&A 전문 임원 및 실무진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며 “배터리, 반도체, 바이오 분야 등 그룹의 중심 축의 핵심 M&A를 담당하는 인사를 중심으로 인력 구성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후계구도 정립까지 아직 갈길이 먼 그룹들도 있다. 김동관 사장을 중심으로 한 한화그룹, 이선호 부장의 승계가 점쳐지는 CJ그룹이 대표적이다.

      한화그룹 내부적으론 김동관 사장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에 김 사장의 최측근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약진이 점쳐진다. 다만 김동원, 김동선 두 형제 또한 각각 대내외적으로 그들만의 인적풀(POOL)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후계 구도의 방향성에 따른 다양한 조직의 변화를 예상해 볼 수 있다.

      CJ그룹의 올해 인사 키워드는 이선호 부장의 경영 복귀, 허민회 CJ ENM 대표의 거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허 대표는 과거 2013년 이재현 회장이 구속될 시점에 ㈜CJ의 경영총괄을 맡았다. 이 회장이 CJ CGV 등 주요 계열사에서 물러났을 당시 등기이사직을 물려받았을 정도로 오너가의 신임이 두터운 인사이지만 이번 정기인사에서는 사실상 교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허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추후 이선호 부장의 경영 승계를 보좌하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부여받을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